고3 학생 이어 이번엔 10살 여아, 소아 응급 의료 붕괴 일상화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박성제 기자 = 부산에서 고등학생이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숨진 사건 이후 두 달 만에 또다시 10살 어린이가 '응급실 뺑뺑이'를 겪으면서 소아 응급환자 병원 수용 체계에 구조적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지난 15일 부산 사하구 장림동 한 소아과에서 감기 치료를 받던 10살 A양이 아낙필락시스(중증 알레르기 쇼크) 의심 증상을 보였다.
A양은 수액 치료(덱사메타손·페니라민·암브록솔)를 받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소아과 의사는 119구급대를 통해 대학병원 4곳을 포함해 13곳에 이송을 문의했지만, 모두 수용이 거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소아과는 동아대 병원, 고신대 복음병원, 부산대병원 등 3차 의료기관까지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지만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했다.
A양을 최초로 수용한 온종합병원 관계자는 "A양이 응급실 도착 직전 심정지에 빠졌고, 즉시 에피네프린을 투여하고 기관 삽관을 해 11시 4분 자발 순환을 회복시켰다"면서 "하지만 아이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호흡도 어려워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인근 백병원으로 옮겨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례는 오전 10시 1분부터 오전 11시 37분까지 96분 동안(병원 선정 시부터 기준으로는 81분) 평일 한낮에 발생했다는 점도 심각성을 더한다.
야간·새벽·주말 같은 취약 시간대도 아니어서 소아 응급 의료 공백이 이제 일상적인 문제로 굳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당시 구급차 안에 소아과 전문의가 동승하고 있었던 부분도 주목할만하다.
지난 10월 고교생 사망 때는 외상이 있었는데도 구급대원이 소아 뇌전증으로 오인했다며 의료계가 책임 전가를 했지만, 이번에는 전문의가 있어 단순히 현장 판단 미숙이나 초기 증상 인지 실패로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환자의 증상이나 투여한 약물도 전부 특정돼 있어 응급 의료 대응 지점도 더 명확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비록 드문 약물 반응이긴 하지만 발생 원인이 비교적 명확한 사례라 환자가 제때 병원에 수용되지 못한 점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의견을 냈다.
온병원 관계자는 "드문 약물 부작용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골든타임 속에 아이를 받아줄 병원이 없다는 현실"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소아응급의료 붕괴가 더 이상 예외적 비극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해당 소아과의 조치와 관련해서도 의료계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통상적으로 의사는 119에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직통라인이나 진료협력센터 번호로 바로 연락해 환자를 옮긴다"면서 "환아 상태를 가장 잘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아는 전문의가 전원 의뢰를 해야 상급병원에서도 적절히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환자가 치료받을 응급실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전전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부 산하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을 정비해 중증 응급 환자에 대한 이송과 병원 간 전원을 통합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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