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김병조 기자] 일본 중앙은행이 12월 19일 기준금리를 발표한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의 최근 발언과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일본이 금리 인상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일본의 금리 인상이 몰고 올 파장, 특히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과 대응 전략을 짚어본다.
▲일본 금리 인상의 의미
일본의 금리 인상은 단순한 통화정책 조정이 아니다. ‘저성장·저물가·초저금리’라는 일본식 경제 모델이 마침내 변곡점에 들어섰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지난 30여 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하나의 축이 흔들리는 사건이다. 일본의 금리는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구조적 영향을 미쳐 왔다. 일본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 경제가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번 변화는 특히 한국 경제에 중층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융, 환율, 수출, 기업 전략까지 연쇄 반응이 불가피하다. 일본 금리 인상은 한국에 위기일까, 기회일까. 그 답은 준비된 대응에 달려 있다.
▲숫자가 말해주는 구조적 변화, 한·미·일 기준금리의 20년
지난 20년간 한·미·일 기준금리 추이를 비교하면 세 나라의 통화 철학은 극명하게 갈린다. 미국은 위기 시 급격히 내리고, 회복 국면에서는 빠르게 올리는 전형적인 경기 대응형 정책을 유지해왔다. 한국은 미국의 방향을 참고하되, 성장률·가계부채·환율이라는 복합 변수를 함께 고려하는 중간 경로를 택해왔다.
반면 일본은 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은 금리를 정책 수단에서 사실상 제외했다. 2016년부터 시작된 마이너스 금리는 2023년까지 이어졌고, 이는 일본 경제가 구조적 저물가와 저성장에 얼마나 깊게 묶여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2024년 이후 흐름이 바뀌었다.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고, 점진적인 정상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변화는 일본 경제의 체질 변화 신호이자, 글로벌 통화 환경의 구조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시대, 그 끝을 향해
일본 금리의 역사적 의미는 ‘세계의 자금 창고’였다는 점에 있다. 일본은 장기간 제로금리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자금 공급원 역할을 해왔다. 투자자들은 엔화로 자금을 조달해 미국, 신흥국, 고금리 자산에 투자했다.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는 세계 자산 가격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었다.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면 이 구조는 흔들린다.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은 감소하고, 일부 자금은 일본으로 되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불가피하게 변동성을 겪게 된다. 주식, 채권, 신흥국 통화 시장 모두 일본의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제는 속도다. 일본의 금리 인상이 완만하게 진행될 경우 충격은 관리 가능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상보다 강해질 경우 정책 전환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은 단기적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엔화 강세와 교역 질서의 재편
금리 인상은 엔화 강세 압력으로 이어진다. 이는 일본 경제 내부에서는 수입 물가 안정과 실질 구매력 회복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일본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 기업들은 엔저에 따른 이중 압박을 받아왔다. 일본 기업들은 환율을 무기로 가격을 낮췄고, 한국 기업은 원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불리한 경쟁 구도에 놓였다. 엔화 강세는 이 구도를 일정 부분 되돌릴 수 있다.
자동차, 기계, 전자부품, 정밀소재 등 한·일 간 직접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 한국 기업은 단기적으로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는 자동적으로 수익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고금리 환경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리 환경, 더 이상 내려가기 어려운 구조
일본은 오랫동안 ‘마지막 완화 국가’였다. 미국과 유럽이 긴축과 완화를 반복하는 동안, 일본은 완화의 최전선에 남아 있었다. 일본이 금리 정상화에 나선다면 글로벌 금리는 구조적으로 하방 경직성을 갖게 된다.
이는 세계 경제 전반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금리는 단순히 금융 비용 상승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투자, 소비, 부동산, 기술 혁신의 속도까지 영향을 미친다. 특히 부채 의존도가 높은 경제일수록 충격은 크다.
한국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정부부채 모두 높은 수준에 있으며, 외부 금리 환경에 민감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일본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에 ‘금리 인하의 출구’를 더욱 좁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 환율과 금리 사이의 딜레마
일본 금리 인상 국면에서 한국이 직면하는 가장 큰 과제는 통화정책의 딜레마다. 미국이 고금리를 유지하고, 일본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원화 약세와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이는 한국은행의 정책 운신 폭을 제한한다. 경기 둔화 신호가 뚜렷해지더라도 금리 인하를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기 대응의 부담은 재정 정책과 구조 개혁으로 이전될 수밖에 없다.
외환시장 역시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엔화 강세, 달러 고금리, 글로벌 자금 이동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원화 변동성은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수출기업과 금융시장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 기업,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지점
기업 차원에서 일본 금리 인상은 명확한 이중 신호다.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제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자금 조달과 투자 환경은 더 어려워진다.
특히 차입 비중이 높고 단기 자금 의존도가 큰 기업은 금리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글로벌 금리가 쉽게 내려오지 않는 구조가 형성될 경우, 재무 구조의 안정성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반면 일본 기업의 해외 투자 여력이 줄어들 가능성은 한국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일본 기업이 전략적 선택과 집중에 나설 경우, 일부 사업과 기술은 협력 또는 인수합병 대상으로 시장에 나올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일본 내 설비 투자 확대는 부품·소재 분야에서 한국 기업에게 새로운 거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경쟁과 협력의 경계가 다시 그려지는 국면이다.
▲전략적 대응, 선택의 문제다
일본 금리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외부 변수다. 문제는 대응 방식이다. 정책 차원에서는 외환시장 안정, 재정 정책의 적극적 활용, 산업 구조 고도화가 병행돼야 한다. 통화정책에 모든 부담을 지우는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
기업 역시 단기 환율 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고금리·저성장 환경을 전제로 한 중장기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 가격경쟁력 중심의 전략은 한계에 봉착했고, 기술, 브랜드, 서비스 역량이 성패를 가르는 시대다.
일본의 금리 인상은 위기가 아니라 경고다. 세계 경제가 저금리의 안락한 시기를 지나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한국 경제와 기업이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번 충격은 위험이 될 수도,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선택의 시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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