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통합돌봄제도 시행을 앞둔 가운데 간병 부담을 구조적으로 덜어줄 제도적 대안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간병 부담을 개인·가정 문제로 방치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사회가 간병 부담을 나눌 체계 확충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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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붙잡았지만, 어머니는 놓았다
A씨는 장기간의 돌봄과 생계의 무게가 스스로를 짓누르는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22년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일을 그만둔 A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두 달가량 집에 머물며 증상이 다소 완화되자 재취업을 결심했지만, 그 무렵 아들의 상태가 악화하며 또다시 입원이 불가피해졌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전에도 간병에 지쳐 아들과 함께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아들은 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베란다 난간을 꼭 붙잡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의지는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가족에게 떠넘겨진 돌봄…‘사회가 부담 나눠야’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간병살인범죄 발생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6~2023년 17년간 동안 간병살인범죄는 2010년 이후 크게 늘었다. 17년간 집계된 간병살인은 총 228건으로, 2006~2012년까지 연평균 6.1건이 발생하다 2013~2023년까지 연평균 16.8건으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간병살인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특히 치매 등 만성질환을 앓는 가족을 부양하는 경우 시간이 갈수록 부양부담이 오히려 누적 및 가중되는 현실이 간병살인의 핵심 원인이라는 공통된 지적이 나왔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간병 기간이 길어지면 보호자가 번아웃(소진) 상태에 놓인다”며 “(간병을 하다 보니) 경제활동을 못하는 경우가 있고, 이로 인해 경제적·체력적으로 어려워져 간병인이 정신질환 등 여러 문제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은 간병인의 돌봄 노력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건강검진, 연금 크레딧, 현금 급여 지급 등 다수의 정책적 지원을 한다”며 “우리나라는 공적 제도가 무늬만 있고 실질적으로 작동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출산으로 인해 가족을 돌볼 수 있는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고, 부양의식이 약화해 앞으로 간병살인 및 간병자살은 분명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간병살인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환경이 몰아붙인 극단적 결과”라며 “복지국가는 간병을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해 의료 인력이 담당하지만, 우리나라는 왜곡된 가족 간병 문화로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맡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사회 돌봄서비스를 확충해 부양부담을 우리 사회가 나눠갖고, 제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간병살인은 간병기간이 장기화하며 타인돌봄으로 자기돌봄을 상실해 정신적·신체적·정서적·경제적으로 스스로 인간다움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다”며 “사회가 가족돌봄자의 부담을 적극적으로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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