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이 러시아와 전쟁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거의 매주 내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유럽의 정부 지도자, 군 수뇌부, 안보 책임자들이 불과 10년 전만 해도 거의 상상하기 어려웠던 메시지를 내고 있다.
유럽이 러시아와 전쟁을 향해 가고 있다는 암울한 내용이다.
1,2차 세계 대전을 치른 뒤 조화와 공동의 경제 번역을 기치로 내걸고 재건된 유럽 대륙에서 매우 중대한 심리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독일 총리 "푸틴은 히틀러와 마찬가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주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략을 1938년 히틀러의 행보에 비유했다.
당시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점령한 뒤, 대륙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메르츠 총리는 토요일 당 대회에서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1938년에 주데텐란트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보다 며칠 전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이 “전쟁이 우리 문 앞에 와 있다”며 “우리의 할아버지나 증조부모 세대가 견뎌야 했던 규모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뤼터는 러시아가 5년 안에 나토를 상대로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군 최고 책임자도 최근 프랑스가 “자신들의 자녀를 잃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긴장감은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을 중재하면서 더욱 증폭됐다.
유럽 각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평화 협정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것이 푸틴을 대담하게 만들 것으로 우려한다.
특히 휴전이 이뤄질 경우 러시아 군사 자원이 해방돼 유럽에 집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동유럽 국가들 공격이 가능해질 것으로 우려한다.
나아가 러시아가 유럽을 공격해도 트럼프 정부가 유럽을 돕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달에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은 러시아를 적으로 명시하는 언급이 전혀 없다.
이에 비해, 지난 15일 발표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연례 위협 평가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블레이즈 메트러웰리 MI6 국장 은 러시아가 “생각을 바꿔야 할 정도로 압박을 받지 않으면” 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MI6 국장 "러 강하게 압박해야"
리처드 나이턴 영국군 총사령관도 “내 평생 경험한 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라며 영국 국민이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가정이 국가를 위한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20세기 동안 유럽 대륙을 황폐화시킨 세계대전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연합(EU)을 설립하도록 권유했다.
유럽인들은 냉전 이후 군사비를 줄이고 그 재원을 사회 지출에 투입함으로써 얻어진 혜택을 누려 왔다. 이른바 ‘평화 배당금’이다.
이에 따라 유럽의 정치인들이 유럽인들에게 전쟁을 각오하도록 각성시키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제기돼 왔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약 3분의 1만이 자국 방어를 위한 싸움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미국민은 41%다.
롭 바우어 네덜란드 예비역 제독은 유럽이 전쟁에 대비해야 푸틴을 억제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 군산복합체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는 생산을 하고 있다는 자료에 유럽 당국자들이 경각심을 느끼고 있으며 러시아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재정비해 유럽을 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당국자들은 유럽인들이 실제로 러시아가 공격할 것임을 믿어야 군사비 증액, 징병제 재도입 등 전쟁 대비에 필요한 희생에 찬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러, '회색지대' 공격 이미 시작"
유럽 안보 책임자들은 러시아가 이미 유럽의 경제를 훼손하고 혼란을 퍼뜨리기 위해 은밀한 ‘회색지대’ 공격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유럽의 핵심 기반시설과 군사 시설을 겨냥한 일련의 사보타주, 기업들을 상대로 한 사이버 공격, 창고와 쇼핑센터에 대한 방화 공격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다. 러시아 드론은 폴란드 영공을 교란했고, 전투기들은 에스토니아 상공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지난주 독일은 2024년에 자국 항공 교통 관제 시스템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의 배후가 러시아이며, 온라인에서 허위 정보를 퍼뜨려 연방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고 러시아를 비난했다.
최근 몇 달 동안에는 러시아로 의심되는 드론들이 여러 유럽 공항에서 항공편 운항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독일 당국자들은 모스크바의 이러한 사보타주와 첩보 활동이, 폴란드나 발트 국가들을 겨냥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동유럽으로 병력을 전개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물류 경로를 지연시키기 위한 사전 준비의 일환일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이 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에 이어 프랑스가 자발적 군 복무 제도를 재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러시아의 공격이 있을 경우 병력을 전선으로 신속히 이동시키는 시나리오를 실행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영국은 러시아에 집중하기 위해 유럽 밖에서의 군사 훈련을 축소하고 있다.
유럽 전역의 군사비 지출도 증가하고 있다. 나토 유럽 회원국들은 올해 오는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또 인프라를 강화하는 등 러시아의 복합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관련 조치에 추가로 1.5%를 쓰기로 합의했다.
독일은 10년 동안 군사력과 인프라에 1조 달러가 넘는 금액을 투입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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