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정지웅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고등학생의 학원 교습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의회는 의원 절반 이상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번 개정안이 의회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교육계 일각에서 나온다. 이에 학생, 학부모, 학원 관계자 등 교육 현장 당사자 10명이 조례 개정안 폐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서울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 <토끼풀>과 공동 게재한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일부 청소년·청년층에서 이를 옹호하거나 미화하는 담론이 확산되는 일이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필자는 올해 수험 생활을 마친 '고3' 청소년의 한 사람으로서, 직접 이 문제를 체감하며 이를 개인의 부도덕성보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 실패의 산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민주주의를 단순한 제도적 절차의 집합으로 보지 않았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기반한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시민들의 숙의가 있어야 비로소 성립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민주 사회의 시민은 이유를 묻고 근거를 교환하며 상호 주관적 합의를 형성하는 하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의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이러한 민주 사회를 유지·발전시킬 역량을 갖춘 민주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에 대해 교육이 지나치게 경제적 성공과 국가 경쟁력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며 교육의 본질은 비판적 사고력, 도덕적 상상력, 그리고 세계적 윤리관을 개발함으로써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 교육은 이 말에 비추어볼 때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교육은 입시 경쟁 속에서 획일적 체계의 논리에 완전히 종속되며 학생들의 생활세계를 잠식해 왔다.
지금의 한국 교육은 사유하는 시민을 기르는 대신 체제의 쓸모있는 부품을 양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주입식·경쟁 중심 교육은 사유하는 능력을 키우기보다, 체계가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을 양산한다. 사회 구조를 성찰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검증하는 비판적 사고력은 시험 점수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계엄과 같은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 역시 교실에서 밀려나 있다. 학생들은 우리 역사 속 내란과 쿠데타가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를 깊이 사유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그저 대학만을 바라보고 점수라는 획일적 기준에 점차 길들여져 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우적 서사가 청소년과 청년층에 침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스바움은 교육의 실패가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과 민주주의 체제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 불길한 예견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설명하고 자신들이 처한 문제의 원인을 특정 집단에게 전가하는 극우 담론은 비판적 사고를 훈련받지 못한 이들에게 강력한 매력을 발휘한다.
극우 담론은 어떠한 사유나 비판적 고찰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시험 문제를 풀듯이 틀린 답을 지목하고 자신들이 배운 정답을 확신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흔드는 내란을 옹호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사유하지 않는 교육이 결국 사유하지 않는 정치적 태도를 낳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의회에서는 고등학생 학원 교습시간을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연장하려는 조례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선택이다. 청소년들은 이미 과도한 경쟁과 강요된 주입식 학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보호막으로 작용하던 학원 교습시간제한을 완화한다는 것은, 청소년들의 삶에서 남아 있는 최소한의 사유와 성찰의 시간마저 빼앗는 일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그들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사실 말 잘 듣고 쓸모 있는 부품과 같은 청년들을 양산하는 교육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내란을 옹호하는 청년이 늘어났다면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사회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암기 과목이 아니고, 시민의식은 '더 긴 학원 수업'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학습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 전환이다. 경쟁과 복종을 주입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질문하고 토론하며 의심할 수 있는 교육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시대적 필요성에 역행해 경쟁과 복종을 주입하는 교육 기조를 강화하는 심야 교습 연장 조례안은 교육 실패 심화의 지름길이 될 뿐이다. 서울시의회가 그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해당 조례안 추진을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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