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지영 기자 | 올해 보험업계는 유상증자와 후순위채 등 자본성증권 발행을 총동원하며 선제적 자본 확충에 나섰다. 연간 발행액은 사상 처음 9조원을 넘어설 전망이지만, 금리 변동성과 보완자본 의존 한계로 질적 자본 확충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17일 예탁결제원·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보험사들이 발행한 자본성증권 규모는 현재까지 8조8370억원(후순위 외화채 포함)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연간 발행액(8조6650억원)을 이미 상회한 수치다. 연말까지 예정된 흥국생명의 2000억원 후순위채 발행까지 포함하면 연간 발행액은 9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자본성증권 발행 확대는 제도적 구조 변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주요 보험사들은 새 보험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보험 부채를 결산 시점의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면서 늘어난 자본 부담에 대응해 자본성증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발행 확대를 개별사의 재무 부담이 아닌 제도 전환에 따른 업계 전반의 공통 현상으로 보고 있다. 연말 결산을 앞둔 시점에서 보험사들은 유상증자와 신존자본증권 등 채권 발행을 병행하며 자본 확충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 3월 국내에서 6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데 이어, 6월에는 미화 10억달러(약 1조3638억원)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추가로 발행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이는 단일 보험사 기준 최대 규모의 자본성증권을 발행한 셈이다.
보험업계 최초로 기본자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DB손해보험도 국내에서만 1조6670억원 규모 자본성증권을 발행했다. 동양생명은 약 7000억원(5억 달러) 외화채권과 2000억원 규모 후순위채를, 미래에셋생명과 메리츠화재도 최근 후순위채 발행에 나섰다.
하나손보는 지난 10월 이사회를 열고 구주주 배정방식으로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는 기본자본 킥스 도입에 대응한 선제적 자본 확충으로 평가된다. 하나손보의 상반기 말 킥스비율은 141.3%로 전 분기 대비 8.9%포인트(p) 하락했으며, 기본자본 비율은 22.66%에 그친다. 이에 따라 추가 자본 확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푸본현대생명은 지난 10일 최대주주인 대만 푸본생명이 참여한 7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완료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단순한 자본 총량의 확대보다 자본의 질을 재고했다는 분석이다.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보완자본으로 인정되고 이자 비용이 발생해 기본자본 규제를 충족시키기 어렵지만, 유상증자는 상환 의무 없는 기본자본으로 인정돼 규제 충족에 유용하기 떄문이다. 이를 통해 푸본현대생명은 연말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은 230%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흥국생명 역시 지난 9일 11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이번에 발행되는 후순위사채는 일반 채권보다 변제 순위가 낮다. 상환 순위가 뒤에 서는 대신 감독 규제상 자본으로 인정돼 보험사의 자기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번 후순위사채 발행으로 흥국생명의 경과조치 후 킥스 비율이 2025년 3분기 말 기준 208.6%에서 5.9%p 상승한 214.5%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일회성 자금 조달이 아니라 킥스 체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자본 관리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 보험사 자본성증권 발행 확대 불구...비용 부담·금리 변동성 리스크 동반
업계에서는 자본성증권 발행 확대만으로는 구조적 자본 부담 해소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금리 변동성이 큰 환경에서는 신용등급 대비 높은 금리 밴드가 요구돼 조달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평가다.
보험사 자본성증권 발행금리는 국고채 5년물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산출되며, 국고채 금리는 3월 2.65%에서 최근 2.72%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흥국생명이 이달 2000억원 규모 후순위채 발행 계획을 다음달로 연기했는데, 이는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을 고려한 조치로 분석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보험사들의 자본성증권 평균 발행금리는 5.59%로 운용자산 평균이익률 3.16%를 크게 웃돌았다. 올해는 금리 하락으로 평균 발행금리가 4.41%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금리 변동성과 불확실성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년부터 기본자본 킥스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자본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 등 손실흡수력이 높은 항목만 지급여력 비율에 반영된다. 이에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 등 보완자본에 의존해온 보험사들은 지표 개선 효과가 제한돼 자본 확충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기본자본비율 기준을 70%로 설정할 경우 국내 26개 생명·손해보험사 중 절반 이상인 14개사가 당국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푸본현대생명, KDB생명, IM라이프, 롯데손해보험 등 4개사는 부채가 자본을 초과하는 마이너스(-) 상태였다.
IBK연금보험, ABL생명, DB생명, 하나손해보험, 흥국화재 등 5개사는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아가 한화생명, 현대해상, 농협손해보험 등 대형사도 기준인 70%를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 다. 이에 일부 보험사들은 공동재보험 출재 등 부채 이전 방식까지 병행하며 대응하고 있다.
◆ 업계 "보험사, 자본성증권 의존 한계…다양한 조달 수단 필요성 커져"
업계는 최근 자본성증권 발행 확대만으로는 근본적 해법이 어렵다며, 영업이익 확대와 증자 등 질적 자본 확충으로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보험업계가 발행한 자본성증권 평균 금리는 5.6%로, 연간 이자 부담만 약 4850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금리 하락으로 조달 비용이 다소 낮아졌지만, 발행 규모가 확대되면서 총 이자 부담은 오히려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금리 민감도가 높은 생명보험사의 경우, 부채 증가와 함께 기본자본 K-ICS 비율 하락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업계에서는 제도 적응 기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단기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해, 기본자본 규제의 유예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신사업 추진, 해외 진출, 인수·합병(M&A) 등 중장기 경영 전략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자본성증권 외에도 다양한 자본조달 수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법률상 채권,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 기업어음 발행 등 다양한 조달 방식이 허용돼 있음에도, 보험사들은 상대적으로 조달 비용이 높은 자본성증권 의존도가 높다는 분석이다.
보험연구원은 현행법상 채권 발행 목적이 엄격히 제한돼 있어, 보험사들이 중장기 자금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데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이러한 규제 환경이 보험사들의 해외 진출과 신사업 확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자본조달 방식의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고 평가한다.
한 중견 손보사 관계자는 "기본자본비율이 낮은 회사들은 만기 도래 시 상환을 연기하거나 신규 발행으로 교체해야 하지만, 시장금리가 높아 조달 부담이 크다"며 "자본성증권 중심의 양적 확충에 그치지 않고, 영구적이고 손실흡수력이 높은 질적 자본으로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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