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서 숙원 푸는 첫발 디뎌…정부, TF 구성해 대미 실무협상 준비
美 일각 '비확산 원칙론' 불식하고 의회 승인 등 관문 넘어야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김지헌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일 외신 기자회견에서 올해 두 차례 열린 한미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원자력(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꼽으면서 "전략적 유연성과 자율성 측면에서 볼 때 우리로서는 매우 유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핵잠수함 확보의 길이 열린 결정적 장면은 지난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이 대통령의 과감한 공개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이 핵잠수함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게 결단해달라고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30년 묵은 안보 과제로 미국의 동의를 얻지 못해 번번이 좌절됐던 핵잠 도입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됐다.
한미정상회담의 또 다른 성과는 우리 정부가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원자력발전소용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연료봉 재처리 권한 확보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국가안보실은 '핵잠수함 TF'와 '농축 우라늄 관련 TF'를 구성해 대미 실무 협상에 대비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국방부, 외교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유관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핵잠 TF도 출범할 예정이다.
다만, 미국 조야 일각에선 핵 비확산 원칙론을 주장하는 기류가 여전해 핵잠 도입과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연료봉 재처리 실현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도입하려는 핵잠은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를 탑재하며,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도 효율적인 원자력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분명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전략자산 핵잠수함 확보로 30년 숙원 푼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물로 지난달 14일 발표된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며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은 이미 잠수함 선체와 소형 원자로 건조 능력은 상당 부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원자로 가동에 쓰이는 연료인 농축 우라늄 확보가 관건이었는데 팩트시트에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명문화한 것이다.
핵잠을 어디서 건조할지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지만, 우리 정부는 한국에서 건조한다는 전제하에 미국과 협의를 진행해왔다는 입장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장소로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를 지목한 적이 있어 이 문제가 완전히 정리되는 데는 추가 협의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
핵잠 연료인 농축 우라늄 확보 문제를 놓고도 한미 간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
기존 한미 원자력협정은 평화적 목적에 국한됐기 때문에 핵잠 원료용 농축 우라늄 조달을 위해선 별도의 협정을 체결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있으니 미 정부내에 일부 반대 기류가 있더라도 큰 문제는 안 될 것으로 보이지만, 미 의회의 승인이라는 관문도 넘어야 한다.
특히 미국의 집권 여당인 공화당이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질 경우 의회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트럼프 대통령도 조기에 레임덕이 올 수도 있어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잠수함에 사용될 핵물질 관련 안전조치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특별약정도 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발전용 핵연료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에 한 걸음
팩트시트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당장은 '지지한다'는 수준의 다소 모호한 표현이지만, 향후 국내 원자력 발전의 진전을 담보하는 첫발이 될 수 있는 문장이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는 원자력 발전에 들어가는 핵연료인 우라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의 요소다. 전기 생산 전체 공정을 '핵연료주기'라고 부르며 여기서 농축은 전기 생산 전의 선행주기, 재처리는 생산 후의 후행주기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천연 상태의 우라늄은 원자력 발전에 쓸 수 없으므로 일정한 수준으로 농축해야 하고, 발전에 사용한 뒤 남는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를 통해 재활용할 수 있다.
그간 한국은 2015년 개정돼 2035년까지 적용되는 현행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에 따라 미국과 서면 합의를 통해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농축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합의가 이뤄진 바가 없고, 재처리는 금지돼 있다.
팩트시트는 이런 제약을 넘어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에 다가서는 방향으로 한미가 앞으로 협의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담은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 방안으로는 기존 협정을 개정해 새로운 협정을 만드는 방법과 기존 협정에 추가 조항을 집어넣거나 한미 간 합의를 원활하게 만드는 방식 등이 있다.
한국은 협정 개정, 미측은 기존 틀 유지를 선호한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한미 당국의 추후 협상 과정에 변수가 많은 만큼 예단할 필요는 없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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