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위상이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반도체 전쟁의 생존 전략과 미래 전망을 짚은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이병철 삼성전자 전 부사장이 쓴 ‘K-반도체 초격차 전략’(더봄)과 글로벌 투자자들이 집필한 ‘AI 로봇 반도체 BIG3 투자 트렌드’(한스미디어)다. 두 책은 반도체 시장을 면밀히 분석하는 동시에 기술·시장·전략 측면에서 한국 반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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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경쟁 중심에 선 반도체
AI 시대가 열리며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또렷해졌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서버용 반도체는 2024년 1530억 달러(약 225조)에서 2030년 4640억 달러(약 682조)로 늘어날 전망인데, 그 중심에는 AI가 있다.
‘K-반도체 초격차 전략’은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할 생존 전략을 제시한 종합 전략서다. 저자는 AI의 성능은 알고리즘보다 연산 능력에 의해 좌우되며, 그 연산 능력의 핵심이 바로 반도체라고 강조한다. 자율주행과 로봇, 우주개발, 양자컴퓨팅 등 미래 산업 역시 반도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반도체의 위상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AI 로봇 반도체 BIG3 투자 트렌드’는 AI 시대 반도체 산업 재편을 투자 시각에서 분석한 책이다. 저자들은 AI 반도체 경쟁의 본질을 ‘칩’이 아닌 ‘생태계’에서 찾는다. 엔비디아의 급성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엔비디아는 GPU(그래픽·AI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 성능 우위에 소프트웨어와 NV링크(고성능 GPU를 직접 연결하는 네트워크 기술)를 결합한 ‘풀스택 전략’으로 고객을 자사 생태계에 묶어 경쟁력을 키웠다. 저자들은 이 같은 락인(lock-in) 구조를 장기적 시장 지배력의 핵심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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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둘러싼 미·중 패권전쟁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경쟁은 자연스럽게 미·중 패권전쟁의 최전선으로 옮겨갔다. ‘K-반도체 초격차 전략’에서는 미·중 갈등의 본질을 이념 대결이 아닌 기술 패권 경쟁으로 규정한다. 특히 반도체는 이 경쟁의 중심에 있다. 미국은 이미 칩 수출 통제, 장비 수출 제한 등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철저히 안보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반면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등 전략을 통해 기술·데이터·표준까지 장악하려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자유무역의 영역이 아니며, 정치·외교·안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산업이 됐다.
‘AI 로봇 반도체 BIG3 투자 트렌드’에서는 이 같은 미·중 반도체 경쟁을 단기간에 승부가 나는 싸움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기술과 자본, 인재, 시장을 모두 동원한 장기 소모전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규제를 통해 속도를 늦추려 하고, 중국은 수율(양품 비율)과 완성도를 희생하더라도 학습 효과와 기술 축적을 택하고 있다. 저자들은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이 단기 승부를 넘어, 지속력과 생태계 구축력을 겨루는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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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가 가야 할 길은
반도체를 둘러싼 이 격변의 판에서 한국 반도체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K-반도체 초격차 전략’에서는 한국이 미국·중국 모두와 깊게 얽힌 ‘낀 나라’의 현실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기술 초격차’와 ‘기업외교’를 함께 갖추는 것이 한국 반도체의 생존 조건”이라며 “한국의 반도체 전략이 연구개발(R&D)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반도체 기업은 스스로 외교 행위자가 돼야 한다. 투자 지역 조정과 현지 정부·사회와의 관계 구축, 글로벌 규범 관리까지 요구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삼성의 중국 철수 과정과 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통해 정치·문화·시장 환경이 기업 성패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그는 “압도적 기술 주도권과 전략적 사고가 맞물릴 때 한국은 세계 질서 재편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AI 로봇 반도체 BIG3 투자 트렌드’에서 저자들은 한국이 AI 시대에 필요한 핵심 분야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AI 가속기와 패키징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저자들은 “AI 인프라 투자는 단기 호황이 아닌 장기 흐름”이라며 “반도체의 성패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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