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말이 길다"며 질책을 들었던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이 대통령이 지시한 외화 밀반출 방지를 위한 '책 전체 개장 검색'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한 셈이다.
민주당은 이 사장을 향해 "자리를 내려 놓으라"고 사퇴를 압박했으며 국민의힘은 "업무보고가 전 정부 인사를 겨냥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며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학재 사장은 인천서구갑을 지역구로 뒀던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사장의 인천시장 출마 여부를 거론하는 등 지방선거 야권 후보군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2002년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바 있다. 이어 2008년과 새누리당 후보로 인천시 서구·강화군 갑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국회의원인 통합민주당 김교흥 후보를 꺾고 당선된 이후 2012년, 2016년에도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다.
16일 기자간담회서 "책 개장검색 시간 2배 소요된다"
"외화 밀반출 적발은 공항 아닌 세관 책임"
이학재 사장은 16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외화 밀반출 방지를 위한 책 전수조사에 대해 "책갈피 속 100달러 전수조사는 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공항 운영 부문에서 여객 짐을 전부 개장해 책을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서비스 측면에서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인천공항공사는 칼, 송곳 등 유해물품에 대한 보안 검색을 맡고 있고, 외화 밀반출은 적발되면 세관으로 이관해 처리한다"며 인천공항이 아닌 세관 책임이라고 재차 밝혔다.
특히 책 개장 검색이 내년 초 진행되면 여객들의 불편이 심화될 것을 우려했다. 이 사장은 "겨울철은 두터운 외투로 보안검색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내년 초에는 명절까지 있다. 책 개장 검사와 명절이 겹치면 (혼란을) 상상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대통령 업무 지시에 따를 의지도 없고, 공공기관장으로서 책임 있게 조직을 운영할 뜻이 없다면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비판했지만 이 사장은 조기 사퇴가능성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외화 밀반출 검색 문제를 거론하며 "(검색이)가능하냐고 제가 묻는 것이다. 걸리지 않고 책갈피에 끼어서 100달러짜리 한 묶음씩 책갈피에 끼어서 가져가는 게 가능하냐는 말"이라고 묻자 이 사장은 "저희가 검색을 해서 적발이 돼 세관으로 (넘겼다)"며 인천공항이 아닌 세관이 검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다시 "참 말이 기십니다. 가능하냐 안 하냐 묻는데 자꾸 옆으로 새요. 가능해요 안 해요"라고 물었고 이 사장은 "완벽하게 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업무 소관이 좀 다르다. 저희가 검색하는 건 주로 유해물질"이라고 답했다.
"李에게 힐난당해…당황했다" SNS에 '유감' 밝힌 이학재
이학재 사장은 국토부 업무보고를 마친 이틀 뒤인 1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업무보고를 마친 소감을 밝히며 이 대통령에게 "힐난 당했다"며 간접적으로 이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는 지난 금요일(12일) 이후 주말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저에 대한 힐난을 지켜보신 지인들에게는 아마도 '그만 나오라'는 의도로 읽힌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공항에는 세계 최고의 항공전문가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지난 금요일의 소란으로 국민들께 인천공항이 무능한 집단으로 오인될까 싶어 망설이다 글을 올린다"며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님으로부터 '써준 것만 읽는다' '임기가 언제까지냐?' '업무 파악도 못한다'는 등의 힐난을 당한 것은 두 가지"라고 언급했다.
이 사장은 "저는 당황했고 실제로 답변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불법외화 반출은 세관의 업무이고, 인천공항공사의 검색 업무는 칼, 송곳, 총기류, 라이터, 액체류 등 위해 품목"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인천공항은 위해물품 검색 과정에서 불법외화 반출이 발견되면 세관에 인계한다"며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인천공항을 30년 다닌 인천공항공사 직원들도 보안 검색 분야 종사자가 아니면 '책갈피 달러' 검색 여부는 모르는 내용이었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걱정스러운 것은 그 일로 온 세상에 '책갈피에 달러를 숨기면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께서 해법으로 제시하신 '100% 수화물 개장 검색'을 하면 공항이 마비될 것"이라며 "세관과 좋은 방안이 있는지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제시한 방안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했다.
李지시 사실상 거부 "임기 6개월 남아, 사퇴 생각 안 해"
이 사장은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윤석열 정부 때인 지난 2023년 6월 임명된 기관장이다. 임기는 6개월 남은 상태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 사장이 내년 국민의힘에서 인천시장 출마를 검토하고 있으며 조기사퇴 할 것이란 소문이 있는 것과 관련해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지방선거 출마 가능성과 조기사퇴에 대해 일축했다.
이 사장은 남은 6개월의 임기 동안 '패스트트랙 도입'과 '인천공항 5단계 확장 사업'을 제시하며 인천공항 사장으로 임기를 마무리 하겠다 뜻을 표명했다. 현재 인천공항은 세계 30대 공항 중 유일하게 '유료 패스트트랙' 도입하지 않고 있다.
그는 "프리미엄 비즈니스 패스트트랙은 세계 15위 공항 중 인천만 안 하고 있다. 공항에서는 상식인데 정부와 정치권에 이야기를 해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5단계 확장사업에 대해선 "2033년엔 4단계 확장 지역까지 포화될 전망이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인천공항의 혼잡과 여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며 확장 사업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단 취지로 말했다.
외화 밀반출과 관련해선 "공항은 외화 밀반출의 주요 루트가 아니며 공사의 주 업무도 아니다. 다만 관세청 세관과 협력해 예전보다 검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논하겠다"고 전했다.
이학재, 2023년 6월 윤석열 정권서 임명…국힘 3선 의원 출신
이학재 사장은 2002년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인물이다.
2008년과 새누리당 후보로 인천시 서구·강화군 갑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국회의원인 통합민주당 김교흥 후보를 꺾고 당선된 이후 2012년, 2016년에도 당선되며 3선에 성공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인천 서구청장의 경험을 살려 인천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됐으나 당시 바른미래당 지도부에서 현직 국회의원을 차출하는 것을 지양하면서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23년 5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직에 지원해 2023년 6월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내정돼 3년의 임기로 임명됐다. 내년 6월 3일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재도전 할 것이 유력하며, 인천시장에 재도전하기 위해선 내년 3월 인천공항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인천공항, 경영평가 이학재 취임 후 A등급→C등급 추락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의 질책을 경고성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사장이 2023년 6월 제10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각종 악재가 누적돼 왔다.
지난 3월엔 인천공항공사 소속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연속 야간근무와 인력 부족 문제를 둘러싼 노조와의 갈등은 총파업 경고로 이어졌다. 최근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2024년)서 2023년 A등급이었던 인천공항은 C등급으로 두 단계 하락해 이 사장 취임 이후 평가 점수가 낮아졌다.
지난 10월 30일 열린 국토위 국정감사에서는 자회사 노조가 요구하는 4조2교대제 전환 논의가 멈춰있는 상황에서 파업이 발생했지만 책임자인 이 사장이 조정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이 사장의 행정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인천공항 사장직을 둘러싼 정치 리스크 사례로 전 구본환 사장의 예를 들며 이 사장의 해임 통보를 추측하기도 했다. 구 전 사장은 2019년 4월 취임해 2020년 9월 해임 통보를 받았으며, 비정규직 인사 문제와 법인카드 사용 논란으로 정치적 공방이 본격화된 2020년 6월 이후 실제 해임까지는 세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실 "이학재 '뒤늦은 SNS' 공직자 맞나" 비판
이학재 사장이 이 대통령의 질책 후 이틀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논란을 자초한 데 대해 대통령실에서 "공직자가 맞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1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에 출연해 "당시에 이야기하지 않고 뒤에서 SNS에 글을 쓰는 건 공직자로서 맞는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김태현의>
이 수석은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잘하라고 얘기를 한 것"이라며 "엑스레이 검색대 등을 공항이 관리하는데 이 사장이 마치 이와 관련된 일에 대해 자신의 업무가 아닌 것처럼 얘기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 일각에서 이 대통령의 질타는 이 사장의 인천시장 출마 가능성을 감안한 '선거개입' 이라고 지적하는 것에 대해선 "오버를 해도 한참 오버를 하는 것"이라고 일축하며 '이후 이 대통령의 추가 언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고 답했다.
민주당 "대통령 업무지시 반박…자리 내려놓는 것이 도리"
민주당은 이학재 사장을 두고 "대통령의 공적 업무지시를 SNS로 반박하는 공공기관 사장, 인천공항의 안전을 맡길 수 있겠냐"면서 비판에 나섰다.
김지호 대변인은 15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사장이 '책갈피 달러 수법'과 관련해 '대통령 언급으로 온 세상에 알려졌다'는 취지의 SNS 게시글을 올린 사실이 언론 보도로 확인됐다"며 "문제의 본질은 외화 밀반출 수법의 공개 여부가 아니라 공공기관 사장으로서의 태도와 책임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장이 업무보고를 마친 지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해명성 글을 올린데 따른 비판을 제기한 것이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실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이 직접 질의하고 지시한 사안에 대해 당시에는 명확한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공공기관장이 사후에 SNS를 통해 대통령의 공적 업무지시를 공격하고 반박하는 모습이 과연 공공기관 사장으로서 적절한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어 "이 사장은 개선책 제시는커녕, 대통령의 문제 제기 자체를 문제 삼으며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 국민 안전과 국가 보안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공공기관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학재 사장의 SNS 논리라면 드라마 수사반장도 범죄교과서냐"고 반문하며 "대통령의 업무 지시에 따를 의지도 없고 공공기관장으로서 책임 있게 조직을 운영할 뜻도 없다면,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지시는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닌 국민 안전과 행정 책임을 강화하라는 공적 요구"라며 "이학재 사장은 자신의 언행이 공공기관의 신뢰를 훼손했는지 깊이 성찰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힘 "대통령 업무보고, '前정부 인사' 찍어내기 수단으로 변질"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가 사실상 전 정부의 인사를 겨냥한 수단이자 압박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6일 논평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생중계로 진행 중인 정부 부처 업무보고가 국정 현안을 점검하는 자리가 아닌 전 정부 인사를 겨냥한 '찍어내기'로 변질되고 있다"며 "특정 공직자를 공개 석상에 세워 추궁하고 힐난하는 장면이 반복되면서 공직사회 전반에 '본보기식 압박'이자 다음 대상에 대한 노골적인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외화 밀반출 문제의 1차 소관 기관은 관세청임에도 대통령은 공공기관장 개인 책임인 것처럼 몰아붙이며 '참 말이 기십니다', '다른 데 가서 노시냐'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며 "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를 향한 이러한 반복적인 공개 질타는 업무보고가 정책 점검이 아닌 전 정부 인사를 겨냥한 압박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반 직장에서도 상급자가 공개석상에서 모욕적인 언사로 하급자를 질책한다면 '직장 내 갑질'로 문제 될 수 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공개 추궁은 공직사회 전반에 긴장과 위축을 넘어 '다음 표적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확산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방식의 국정운영은 민생 현안에 집중해야 할 공직자들의 판단과 대응을 흐리게 하고 조직 전반의 동요와 눈치 보기만 키울 뿐"이라며 "공직사회 안팎에서 다음 찍어내기 대상은 누가 될지 뻔하다는 현실이 업무보고가 이미 국정 점검의 본래 취지를 상실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당 대표는 무보고 다음 날인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외화 밀반출을 예방하기 위해 공항에서 반출되는 책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라며 "뜬금없는 깨알 지시가 낯설다 싶었는데 외화를 책갈피처럼 끼워 밀반출하는 것은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때 쓰인 방식이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아무리 본인과는 무관하다고 시치미를 떼도 이미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을 무지성 깎아내리다가 자신의 범행 수법만 자백한 꼴"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일반 국민들 눈에는 신기하고 낯설겠지만 그것은 이재명 경기지사 방북비용을 쌍방울이 북한에 대신 준 대북송금 사건에서 외화 밀반출했던 방식"이라며 "이 대통령은 자기 사건이니 잘 아는 것이다. '자기 고백' 같은 건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자기 편 낙하산 보내려고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항공사 사장 내쫓기 위해 공개 면박 주는 과정에서 '내가 해봐서 잘 알아' 본능이 발동한 것 같은데 그거 해본 게 자랑인가"라며 이 대통령을 직격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