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는 해마다 진화하고 있으며 그 수법은 점점 교묘하고 정교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고령층이 주된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새로운 표적이 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피해를 입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에 가담해 중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A는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다. 취업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실 속에서 A는 온라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했고 며칠 뒤 한 회사로부터 채용 연락을 받았다. 정식 출근 전 간단한 리서치 업무를 맡기겠다는 설명과 함께 인턴 형태로 실비 수준의 급여가 지급된다는 말에 A는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근로계약서도 온라인으로 작성됐고 모든 절차는 그럴듯해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회사 측은 자금부 업무의 일환이라며 회사 자금이 A의 계좌로 입금되면 지정된 다른 계좌로 다시 송금해 달라고 요청했다. 회원 관리와 내부 정산을 위한 절차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A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본인 계좌로 들어온 돈을 그대로 송금했다. 금액이 적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막 취업했다는 기대감과 회사에 대한 신뢰가 경계심을 누르고 말았다.
그러나 불과 사흘 만에 A의 계좌는 은행에 의해 지급 정지됐다. 확인 결과 해당 계좌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된 계좌였고 A는 범죄수익금을 송금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라고 믿었던 곳은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취업 자체가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단 3일 동안 수억원의 자금이 A의 계좌를 거쳐 갔고 A는 수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졌다. 결국 A는 전자통신금융사기죄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A가 실제로 받은 대가는 40만원이 전부였다.
이 사례는 여러 실제 사건을 종합해 구성한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취업한 줄로만 알았던 청년들이 하루아침에 중범죄자가 돼 법정에 서고 실형을 선고받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들은 흉악범도, 사기 의도를 가진 범죄자도 아니다. 우리 이웃의 자녀이자 동료의 가족이며 평범한 시민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순식간에 보이스피싱 범죄의 가담자가 되고 말았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시대에 따라 수법을 바꿔 왔다. 과거에는 현금인출기를 통해 돈을 인출하는 ‘수거책’을 이용했고 이후에는 통장 제공이나 매입 방식으로 범죄수익금을 관리했다. 그러나 통장 제공 행위 자체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되자 제공자가 줄었고 이에 범죄자들은 취업을 미끼로 한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정상적인 회사 업무를 가장해 젊은이들의 계좌를 범죄에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보이스피싱 범죄는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된다. 과거 사기죄에 비해 형량이 대폭 강화돼 법정형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규정돼 있으며 실제로 2, 3년의 무거운 형벌이 내려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실제 취득한 이익이 미미하더라도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제 보이스피싱의 위험성과 그에 따른 법적 책임에 대해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특히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예방 교육이 절실하다. 정부와 공공기관, 학교가 나서 취업을 빙자한 금융 범죄의 실태를 알리고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에 절대 관여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전화 사기나 스팸 메시지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며 선량한 청년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조직적 범죄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패는 개인의 경각심과 사회 전체의 단호한 인식이다.
보이스피싱, 이 범죄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 모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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