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왕피천 유역에서 멸종위기 박쥐 2종이 한꺼번에 확인됐다. 오랫동안 보전지역으로 관리돼 온 곳이지만, 서식 상황이 이처럼 구체적으로 파악된 사례는 드물다. 동굴·산림·하천 지형을 아우르는 조사를 통해 어떤 공간이 어떤 종을 품고 있는지 세밀하게 파악된 결과였다.
왕피천 일대는 오래전부터 작은관코박쥐가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올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이어진 조사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록에 없던 붉은박쥐(Ⅰ급)와 토끼박쥐(Ⅱ급)까지 새롭게 발견됐다. 멸종위기 박쥐 3종이 한 구역에서 모두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범위를 넓히자 드러난 추가 서식 흔적
지난 7월 무더위가 시작된 시점부터 기온이 내려간 이달 초까지 조사가 진행됐다. 동굴뿐 아니라 하천 주변, 숲, 인가 인근까지 지점을 확장해 서식 가능성을 세밀하게 살폈다. 직접 포획과 육안 관찰에서 14종이 확인됐고, 초음파 기록에서 2종이 더해져 총 16종이 기록됐다. 이전의 11종보다 5종이 늘어난 수치다.
박쥐는 먹이와 온도 변화에 민감해 환경 흐름을 판단하는 자료로 자주 활용된다. 한반도에서 23종이 확인돼 있으며, 남한에서는 약 18종이 꾸준히 관찰된다. 이 가운데 특정 지역에서 16종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 않아, 왕피천의 자연 구조가 오랜 기간 유지됐음을 보여준다.
황금빛 털색의 정체… '붉은박쥐'가 남긴 흔적
이번 조사에서 가장 관심을 끈 종은 붉은박쥐다. 털빛이 붉은색과 금색을 띠어 예전부터 '황금박쥐'로 불렸다. 겨울에는 습도와 온도가 일정한 폐광·동굴 깊은 곳에서 잠을 자고, 날이 풀리면 숲 주변에서 곤충을 사냥한다. 털빛이 선명해 발견 시 시각적으로 눈에 띄지만, 스스로 몸을 숨기는 능력이 뛰어나 실제 관찰 기록은 많지 않다.
토끼박쥐는 귀가 길어 형태가 독특하다. 작은 날벌레의 움직임을 매우 세밀하게 감지할 수 있으며, 울창한 숲을 선호한다. 작은관코박쥐는 국내 박쥐 가운데 크기가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오래된 나무 틈이나 얇은 공간을 은신처로 쓰며, 선택하는 공간 폭이 좁아 사람 활동이 많은 지역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왜 '왕피천'에서 박쥐가 다수 확인됐나
조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이번 결과가 단순한 종 목록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왕피천은 산림과 물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돌무더기·석회암 지대·폐광이 가까운 지역에 함께 있다. 박쥐가 먹이를 찾고 은신처를 이동하는 데 유리한 구조다. 숲에서 활동하다가 기온이 낮아지면 주변 동굴이나 폐광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무리 없이 이어질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조사 기간이 길지 않았는데도 여러 지점에서 다른 종이 확인됐다"라며 "보전지역이 유지한 환경 안정성이 그대로 나타난 사례"라고 설명했다. 박쥐는 서식 공간 변화에 민감해, 한 지역에서 여러 종이 동시에 관찰되는 일은 그 지역의 자연 구조가 큰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보전과 관리가 필요한 이유
환경 관련 기관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가 지역 생태 흐름을 평가하는 핵심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박쥐 서식 현황은 한 종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자연 구조 전체의 연결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왕피천은 이미 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제한이 적용되고 있으며, 이번 기록을 계기로 관리 기준이 더 세밀하게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동굴 접근 제한, 일부 산림 경로 조정, 서식지 주변 조명 관리 등 박쥐 활동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새롭게 검토될 수 있다.
이번 조사는 새로운 종 확인이라는 단순한 성과를 넘어, 왕피천이 멸종위기 박쥐가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됐다. 박쥐 2종이 안정적으로 공존하려면 서식 환경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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