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공직자 재취업을 막기 위한 취업심사 제도가 ‘통과 절차’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6일 5개 정부 부처 관피아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취업심사 대상의 10명 중 9명이 재취업 승인을 받았고 상당수가 ‘전문성’ 등 추상적 예외사유에 기대 재취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이번 조사가 앞서 발표한 경제 관련 8개 부처,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관피아 실태조사의 연장선에 있다며, 관경유착과 취업시장 공정성 저해 등 관피아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5개 부처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승인율은 평균 89.4%에 달했다. 전체 취업심사 대상 180건 가운데 161건이 ‘취업 가능’ 또는 ‘취업 승인’ 결정을 받은 것이다. 부처별 승인율은 고용노동부가 96.2%로 가장 높았고, 법무부 94.9%, 환경부 89.7%, 행정안전부 85.7%, 교육부 82.4% 순으로 나타났다.
퇴직공직자들의 재취업 경로를 보면 민간기업 진출이 가장 많았다. 전체 취업심사 사례 중 민간기업이 56건으로 최다였고, 공공기관 36건, 기타 30건, 협회·조합 20건, 법무·회계·세무법인 19건이 뒤를 이었다.
취업 승인 결정의 근거를 분석한 결과, ‘특별한 사유’로 분류되는 추상적 기준이 폭넓게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승인을 받은 59건 가운데 53회(60.9%)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34조 제3항 9호, 즉 ‘전문성이 증명되고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은 경우’에 해당했다. 이어 8호(퇴직 전 담당 업무와 취업 예정 업무의 관련성이 낮아 영향력 행사가 작은 경우)가 24회(27.6%), 1호(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이익상 필요)가 5회로 집계됐다. 경실련은 이 같은 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사실상 재취업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이번 조사에서 몇 가지 반복적인 특징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법률 개정을 통해 신설된 기관에 퇴직공무원이 재취업하는 사례, 동일 기업·동일 직위에 같은 직급의 공직자가 지원했음에도 심사 결과가 엇갈린 사례, 퇴직공직자가 비슷한 시기에 여러 기업에 연속 지원해 모두 취업 가능 또는 승인 결정을 받은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산하단체 기관장이나 유관 협회 자리의 ‘대물림’, 부처 권한을 활용한 산하 공공기관 재취업, 민관 유착에 따른 민간기업·단체 재취업 관행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경실련은 관피아 문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생 기관에 대한 재취업 금지 명문화 ▲취업심사 대상기관 규모의 재정비 ▲취업승인 예외사유의 구체화 ▲취업제한 여부 및 승인 심사 대상 기간을 퇴직 전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 ▲퇴직 후 취업제한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확대 ▲이해충돌방지법상 사적 접촉 요건 강화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명단과 회의록, 심사결과 공개 ▲공무원연금과 재취업 보수의 이중수급 방지 등을 제안했다.
경실련은 “관피아 문제는 일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실효성 있는 법·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면 관경유착과 불공정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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