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1년이 훌쩍 지났으나 정치권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청산'을 명분 삼아 다수 의석을 앞세워 내란전담재판부, 법 왜곡죄 도입, 2차 종합특검 등을 추진하며 야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민의힘도 계엄과 대통령 탄핵에 대한 사과나 반성 보다 이재명 정부를 겨냥한 대여투쟁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약 6개월 뒤에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현재의 갈등 양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이석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장은 최근 여야 대표를 찾아 쓴소리를 내 놓으며 타협의 정치를 주문했다.
이석연, 정청래 만나 "법 왜곡죄, 문명국가 수치" "국회가 국론 분열 진원지"
이석연 위원장은 지난 11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만나 법 왜곡죄 재고와 더불어 내란전담재판부법에 '대법관 회의 동의'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위원장은 헌법재판소 1호 헌법연구관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냈다.
이날 이 위원장은 "국민, 국론 분열과 국민 갈등 진원지가 바로 정치, 국회"라며 "아무리 다른 분야에서 노력해도 국회가 협조를 안 해주면 부차적인 것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차원에서 국회 협조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이 좀더 지혜를 발휘해서 국민들이 기대를 걸 수 있는 것들을 해주면 좋겠다"며 "정치적 갈등이 참 어렵지만 국민들이 볼 때는 참된 갈등이 아니라 당리당략에 입각한 걸로 비춰져 실망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헌법이 마련한 궤도를 따라 운항하는 위성의 역할"이라며 "헌법이 마련한 궤도를 벗어난 정치는 이미 헌법적 상황이 아니다. 비법적 상황이자 헌법 정신을 이탈한 정치는 타협의 폭력"이라고 했다.
이석연 위원장은 접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법 왜곡죄, 이것만은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법 왜곡죄는 검찰과 경찰 등 수사 기관이나 법관이 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적용할 경우 이를 처벌하는 법안이다.
이 위원장은 "위헌 소지가 있는 건 있다, 없는 건 어쨌다는 취지로 제가 하나 하나 다 설명을 했다"며 "위헌 소지를 제거하든지 (처리 시점을) 미뤄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법왜곡죄는 문명국가의 수치다. 판사가 재판 잘못했다고 처벌하는 건 재판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는 강경한 표현도 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법과 관련해서는 '대법관 회의 동의' 내용이 포함되어야만 위헌 소지를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헌법 104조3항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정청래 "헌법으로 국민 통합…당 부족하면 정문일침 해달라"
이 위원장의 쓴소리를 접한 정청래 대표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도입에 신중을 기하겠다며 추진할 뜻을 굽히지는 않았다.
정 대표는 이 위원장에게 "헌법으로 국민 통합하면 가장 좋은 것 아니겠나"라며 "당도 부족하거나 잘 못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정문일침을 좀 내려 달라"고 말했다.
이어 "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헌법이 때로는 악용되기도 한다"며 "그럴 때마다 이석연 위원장께서 명쾌하게 헌법적 해석을 해주시고는 해서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된 부분에 대해서 저는 평소에 굉장히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 정신대로 나아가는 것, 헌법으로 국민 통합하면 가장 좋은 것 아니겠나. 그런 부분에서 아주 명쾌하게 역시 말씀을 잘해주신 부분을 새겨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정치가 국민 불안의 진원지다' 하는 말씀은 저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국민을 편하게 할 것인가' 잘 새기고 '앞으로 국회와 정치를 잘 운영해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석연, 장동혁에 "헌정파괴·내란세력과 단절해야…正道 가달라"
이석연 위원장은 16일에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 "헌정 파괴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라며 "다수 국민의 뜻을 좇아 정도(正道)를 가 달라"고 당부했다.
이 위원장은 "내란 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분들께 말씀드린다. 정의를 외면한 자에게 정의를 말할 수 없다"라며 "장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도 이런 헌법적 상황과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장 대표를 향해 "집토끼가 달아날까 봐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된다. (다수 국민의 뜻을 좇는다면) 새로운 보수 지지층이 두텁게 형성되리라 확신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야당이 헌법 파괴 세력과 단절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 강하게 다시 태어날 때, 여당과 정부도 반사이익에 기대지 않고 헌법정신을 존중하면서 정도를 갈 것"이라며 "그때 비로소 새는 좌우 날갯짓을 힘차게 하면서 비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극단적 진영논리와 확증편향, 국민 편 가르기는 국가를 멍들게 하고 국민의 정서를 황폐하게 한다"라며 "이것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국민 통합은 요원하고, 설사 일시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장동혁 "발전미래 보여주는 게 사과·절연"
이 위원장의 내란에 대한 단절 요구에 장 대표는 "저는 작년 12·3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했던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 한 명이다. 계엄에 대한 저의 입장은 그것으로 충분히 갈음될 수 있다"고 답했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이 부족했던 것을 돌아보고 국민께서 가라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하겠다. 진영논리와 극단적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돌아보겠다"라며 "진정한 사과와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하다면, 과거와 다른 현재 더 발전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사과이고 절연"이라며 사과의 뜻은 없음을 밝혔다.
이어 민주당을 겨냥해 "특정 사건을 위해 정치권이 특정 법관을 임명하는 '특별재판부'를 만들겠다고 한다. 법관과 검사를 향한 '법 왜곡죄'를 만들겠다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가"라며 "헌법 파괴는 물리력으로도 나타날 수 있지만, 입법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며 화살을 돌렸다.
그러면서 "국민 통합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쪽은 많은 것을 가진 다수 집권여당"이라며 "통일교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야당에는 무서운 칼을, 여당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통합을 깨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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