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최재혁 기자] 2025년의 끝자락, 전 세계 경제에 다시 한번 찬바람이 불고 있다. 팬데믹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지정학적 갈등과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다가오는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짙은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표한 '2026 무역 및 개발 보고서'는 이러한 우려를 수치로 확인시켜 주었다. UNCTAD는 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 10년 평균인 3.2%를 크게 밑도는 수치이며, 사실상 '저성장의 고착화(Secular Stagnation)'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보고서는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을 "벼랑 끝에 서 있다(teetering on the brink)"라고 표현했다.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다. 지난 30년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글로벌 경제의 규칙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초세계화'의 퇴조, 파편화된 세계로의 전환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무역 엔진'의 냉각이다. UNCTAD는 상품 무역 성장률이 경제 성장률을 하회하는 현상이 2026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시사한다. 원인은 명확하다. 보호무역주의와 공급망의 블록화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관세 장벽을 넘어 기술 통제와 금융 제재로 확전되었고, 글로벌 공급망은 효율성이 아닌 '안보' 논리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이른바 '무역의 무기화' 현상이다. 레베카 그린스판 UNCTAD 사무총장은 "우리는 지금 파편화된 세계(Fragmented World)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선진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은 개발도상국의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에게는 뼈아픈 지적이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GDP의 70%를 넘는 한국 경제에서, 글로벌 무역 질서의 재편은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3중고(三重苦), 부채·기후·디지털 격차
2026년 경제를 짓누를 악재는 무역 둔화만이 아니다. 보고서는 세 가지 구조적 리스크를 지목했다. 첫째, 부채 위기다.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개발도상국들의 부채 상환 부담이 한계치에 도달했다. 이는 신흥국 시장의 구매력 감소로 이어져 글로벌 기업들의 시장 확장에 제동을 걸 전망이다. 둘째, 기후 무역 장벽이다. 2026년부터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되는 등 환경 규제가 실질적인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준비되지 않은 기업에게 '친환경'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비용 폭탄이 될 수 있다. 셋째, 디지털 격차다.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기술 독점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소수의 빅테크 기업과 국가가 부가가치를 독식하는 구조 속에서, 전통 제조업 중심의 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2026년 CEO의 생존 전략 3가지
거대한 전환의 파도 앞에서 경영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UNCTAD의 경고를 역으로 해석하면 생존을 위한 나침반을 찾을 수 있다.
첫째, 효율성에서 회복탄력성으로의 전환이다. 지난 수십 년간 경영의 지상 과제는 '비용 절감'이었다. 가장 싼 곳에서 만들어 가장 비싼 곳에 파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러나 2026년에는 '끊어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특정 국가나 공급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재고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공급망의 이중화·삼중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낭비가 아닌 '보험'이다.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을 넘어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멀티쇼어링' 전략이 필수적이다.
둘째, 현금 흐름 중심의 보수적 재무 관리다. 성장률 2.6% 시대에 무리한 외형 확장은 독이 될 수 있다. 특히 고금리가 '뉴노멀'이 된 상황에서 부채 관리는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 2026년 사업 계획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수립해야 한다. 공격적 투자보다는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핵심 사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셋째, '글로벌 사우스'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선진국 시장의 성장판은 닫히고 있다. 그러나 UNCTAD는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자원 부국이자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이들 국가는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새로운 생산 기지이자 소비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선진국 시장의 둔화를 상쇄할 돌파구는 신흥국 시장에 대한 정교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
■위기 속에 기회는 있다
2026년, 세계 경제는 분명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항상 위기 속에서 새로운 승자가 탄생했음을 증명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일본 자동차의 부상을 이끌었고, 2008년 금융위기가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시대를 열었다. UNCTAD의 경고는 비관론이 아니라, 변화하라는 강력한 주문이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과 결별하고, 변화된 게임의 법칙을 먼저 읽어내는 기업만이 2026년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폭풍우를 피할 수 없다면,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금 CEO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담대한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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