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소녀의 편지가 세상을 바꾸다
1897년, 뉴욕에 살던 여덟 살 소녀 버지니아가 신문사 'The New York Sun'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정말 존재하나요?" 친구들이 “산타클로스는 없다”고 놀리자, 버지니아는 “아빠가 신문에 나오면 진실이라고 했다”며 산타의 존재 여부를 물었습니다.
이에 신문 기자 프랜시스 퍼셀러스 처치가 미국의 저널리즘 역사상 가장 널리 회자되는 사설을 남겼습니다. 이 사설이 바로 그 유명한 ‘Yes, Virginia, there is a Santa Claus’입니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 문장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한 곳은 언론사가 아니라 뉴욕 맨해튼의 백화점 메이시스(Macy’s)입니다.
메이시스는 매년 이 사설의 정신을 이어 받아 크리스마스 시즌에 ‘Believe’ 캠페인을 진행하며, 아이들이 산타에게 쓴 편지 한 통당 특정 금액을 난치병 아동을 위한 재단에 기부하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99회 '메이시스 퍼레이드'의 주인공 더피
뉴욕 맨해튼의 연말 풍경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메이시스(Macy’s)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떠올립니다. 1924년 시작해 올해로 99회째를 맞은 이 퍼레이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미국 대중문화의 역사이자 뉴욕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죠.
퍼레이드는 원래 메이시스의 연말 쇼핑 시즌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마케팅 행사였습니다. 초창기에는 직원들이 직접 행진했고,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동물들까지 등장하며 진짜 축제 분위기를 냈죠. 첫 행사에는 약 25만 명이 모였고, 퍼레이드 마지막에 산타클로스가 등장해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성공을 계기로 메이시스는 이를 연례 행사로 선언했고, 이후 퍼레이드는 뉴욕의 연말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27년에는 퍼레이드의 상징인 대형 풍선이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고무와 헬륨 수요 증가로 인해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풍선은 바람을 빼서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해 정부에 기증되었다고 합니다.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거대 풍선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별 트렌드 지도입니다. 올해는 케이팝데몬헌터스의 ‘더피’ 풍선이 새롭게 합류해 주목을 받았는데요. 풍선이 떠 오르는 순간마다 영상이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면서 맨해튼 거리가 하나의 ‘라이브 플랫폼’처럼 움직였습니다.
시청률도 역대급이었습니다. NBC와 피콕 채널에서 3430만명의 시청자를 모으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닐슨 데이터에 따르면 18~49세 성인 시청률도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뉴욕에서 “풍선 라인업을 보면 올해의 소비 트렌드가 보인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메이시스 퍼레이드는 단순한 즐길 거리 뿐만 아니라,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블랙프라이데이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연말 소비 대목’을 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피날레는 언제나 산타클로스가 등장합니다. 퍼레이드가 끝나는 순간,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장면이죠. 퍼레이드가 끝나면, 메이시스 헤럴드 스퀘어 매장 8층에 ‘산타랜드(Santaland)’가 문을 엽니다.
산타랜드의 뿌리는 1862년 메이시스가 백화점 안에 산타클로스를 처음 앉힌 데서 출발합니다. 당시 아이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며 ‘산타를 직접 만나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고, 이후 1970년대에 지금의 ‘북극 마을’ 콘셉트로 발전했습니다.
뉴욕 거리를 '크리스마스 쇼윈도'로 만들다
오늘날 뉴욕의 연말 문화를 이끄는 메이시스도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창립자 롤런드 허시는 고래잡이 배에서 일하던 선원이었는데요. 무려 네 번의 사업 실패 끝에 1858년 뉴욕에 작은 상점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가 선원 시절 몸에 새겼던 붉은 별은 항해를 인도하는 ‘길잡이 별’이자 ‘행운’을 뜻했고, 훗날 이 별은 실패를 딛고 일어선 메이시스의 로고가 됐습니다.
메이시스가 ‘미국의 백화점’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흥정이 일상이었던 시대에 과감하게 정가제를 처음으로 도입했습니다. 또 상품에 가격표를 붙이고, 신문광고를 활용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을 선도했습니다.
특히 쇼윈도를 하나의 예술 무대로 만든 것도 메이시스였어요. 화려한 ‘크리스마스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해 윈도우 쇼핑 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19세기 말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선보이며 수십만 명이 쇼윈도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거리의 극장’을 만들었습니다.
메이시스 헤럴드 스퀘어 매장은 한때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합니다. 특히 1930년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상징적인 목재 에스컬레이터가 아직도 운행 중인데, 이는 메이시스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닌 뉴욕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살아있는 건축물’임을 보여줍니다.
산타클로스는 정말 존재하냐고요?
적어도 뉴욕에서는, 그리고 메이시스 안에서는 그 믿음이 매년 현실이 되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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