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이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 자금을 채권시장에서 조달했다. 발행 규모는 총 67억5000만 달러(약 10조원)로, 만기별로 나눈 다중 트랜치 구조다. 이번 거래에는 골드만삭스·도이치방크·씨티·JP모건이 대표 주관사로 참여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HSBC·BNP파리바·SMBC닛코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공동 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 발행을 두고 국내에서는 ‘AI 투자 확대에 따른 부담’과 ‘단기 변동성’에 초점을 둔 해석이 나왔다. 반면 글로벌 채권시장의 평가는 결이 다르다. 같은 거래를 놓고 시각이 엇갈린 이유는 뚜렷하다. 주식시장은 가격을 보고, 채권시장은 상환 구조를 본다. 이번 발행은 주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오라클이 장기간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용 판단의 결과다.
골드만삭스, 도이치방크, 씨티, JP모건 등 대표 주관사가 회사채 발행 당시 투자자에게 제시한 프라이싱 자료에 따르면, 오라클의 이번 채권 발행에서 3년물은 미 국채 대비 가산금리가 57bp, 10년물은 97bp, 40년물은 135bp로 형성됐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가산금리가 높아진 것은 장기 불확실성을 반영해서다. 반면 3년물 등 단기물의 가산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게 형성됐다는 점은, 채권시장이 오라클의 단기적인 현금흐름과 상환 능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 프리미엄을 적용했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장기물에는 분명한 프리미엄이 붙었다. 이는 장기 사업의 불확실성을 반영한 결과다. 그럼에도 40년 만기 채권까지 수요가 형성됐다는 점은, 채권시장이 오라클의 AI 투자를 단기 실험이 아니라 장기간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인프라 사업으로 평가했음을 보여준다.
자금 배분 역시 이러한 평가와 맞닿아 있다. 2028년 만기 3년물 20억 달러(약 3조원), 2032년 만기 7년물 12억5000만 달러(약 1조8433억원), 2035년 만기 10년물 17억5000만 달러(약 2조5806억원), 2065년 만기 40년물 10억 달러(약 1조 4746억원)로 구성됐다. 전체 물량 가운데 상당 부분이 10년 이상 장기물에 배정되며, 상환 부담을 미래로 분산시키는 구조를 택했다.
자금 사용처도 명확하다. GPU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구축 등 설비투자(Capex)다. 데이터센터와 GPU 설비처럼 회수 기간이 긴 투자에 대해, 오라클은 단기 차입이 아니라 10년 이상 장기 채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력과 연산능력을 확보하는 AI 인프라는 단기간에 수익을 회수하는 사업이 아니다. 채권시장은 이러한 사업 구조와 현금흐름의 지속성을 전제로 만기별 금리와 가산금리를 형성했다.
이 같은 흐름은 오라클만의 사례로 보기도 어렵다. 시장 집계 기준으로 글로벌 기술기업의 투자등급 채권 발행 규모는 2023년 1200억 달러(약 177조)에서 2024년 1400억 달러(약 206조4720억원)로 늘었고, 2025년에는 현재까지 2100억 달러(약 310조원)로 급증했다. AI 인프라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기술기업들이 주식이 아닌 채권을 통해 장기 자본을 확보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내에서 제기되는 ‘AI 투자 부담’ 논란과 이번 채권 발행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주식시장 관점에서는 투자 확대가 단기 부담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채권시장 관점에서는 그 부담을 어떤 구조로 흡수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번 발행은 오라클이 그 부담을 장기 자본으로 분산시켰다는 점을 숫자로 보여준 사례다.
결국 이번 거래가 보여주는 것은 주식시장은 변동성을 살피고, 채권시장은 상환 가능성을 따진다는 사실이다. 오라클의 이번 AI 인프라 채권 발행은, 글로벌 채권시장이 내놓은 '성공조건'에 대한 해답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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