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금융당국이 GA(보험대리점)에 대한 내부통제 평가와 제3자 리스크관리 강화를 본격화하면서 GA 시장의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규제가 현장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보험사들이 통제 가능한 계열 GA 중심으로 영업 구조를 재편하면서, 독립·중소형 GA와의 격차가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에 소비자 보호라는 정책 목표와는 달리, 규제가 GA 시장의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대형 GA 내부통제 실태평가’는 GA 업계의 구조적 격차를 여실히 보여줬다. 평가 대상 75개사의 평균 등급은 ‘3등급(보통)’이었지만, 규모와 지배구조에 따라 결과는 뚜렷하게 갈렸다.
설계사 3000명 이상 초대형 GA의 80%는 우수·양호 등급을 받은 반면, 1000명 미만 GA에서는 절반 이상이 취약·위험 등급(4~5등급)에 속했다. 지사형 GA 역시 본사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구조가 반영되며 47%가 낮은 등급을 받았다.
부문별로 보면 통제환경과 소비자보호 조직은 비교적 양호했으나, 전산시스템 구축·운영, 빈발 위규 점검, 준법감시 활동 등 실질적인 통제활동은 평균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내부통제 규제가 동일하게 적용되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력·IT·모니터링 기반을 갖춘 GA와 그렇지 못한 GA 간 격차가 제도적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권 관계자는 “평가 결과는 규모가 클수록 통제 인프라를 갖출 여력이 크다는 점을 반영한다”며 “중소형 GA일수록 동일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사 주도 ‘질적 정비’ 가속…계열 GA 중심 재편 신호
GA를 둘러싼 변화는 내부통제 평가에 그치지 않는다. 이달부터 시행된 보험사의 ‘제3자 리스크관리 가이드라인’까지 더해지며, 보험사 역시 GA를 단순 판매 채널이 아닌 관리해야 할 리스크 주체로 인식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내년 영업을 앞두고 GA 자회사의 내부통제와 지배구조를 선제적으로 정비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보험업권에 따르면 ABL생명은 최근 GA 자회사인 ABA금융서비스의 법인 형태를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사업 규모가 확대되면서 보다 전문적인 지배구조와 내부통제가 필요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주식회사 전환에 따라 이사회 구성과 정기 감사가 의무화되며 통제 체계 역시 한층 고도화될 전망이다.
지배력 강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한화생명은 지난달 GA 자회사 한화생명금융서비스의 지분을 추가 취득해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2023년 한국투자금융지주가 1000억원을 투자하며 전환우선주를 확보했지만, 고속 성장과 수익성이 확인되면서 한화생명이 지분을 정리했다. 완전 자회사 전환으로 의사결정 일원화와 영업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평가다.
자본 확충을 통한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손해보험은 GA 계열사 하나금융파인드에 150억원을 증자하며 대면 영업 채널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설계사 교육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팀(TFT)을 신설하는 등 판매 역량 제고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을 규제 강화에 대한 보험사의 방어적 대응이자, 장기적으로는 ‘통제 가능한 계열 GA 중심의 영업 구조’를 고착화하는 흐름으로 해석한다. 제3자 리스크관리에 따라 보험사 이사회 차원에서 GA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만큼, 지배력과 통제력이 확보된 GA에 영업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GA가 금융소비자와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는 채널인 만큼 보험사 차원의 리스크 관리 요구가 구조적으로 커졌다”며 “결국 보험사 입장에서는 계열 GA 중심으로 영업 전략을 가져갈 유인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는 필연…양극화 완화 위한 ‘설계 정교화’가 관건
GA 규제 강화는 소비자 피해 예방과 판매 품질 제고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데 업계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GA협회 역시 이번 제도가 내부통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GA의 기업평가·상장·보험판매전문회사 전환 등 중장기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산업 전체의 지속성과 균형을 고려하면 규제 설계 단계에서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보험사의 자본·조직 지원을 받는 계열 GA와 그렇지 않은 독립·중소형 GA 간 대응 여력이 크게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규제가 동일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내부통제 평가 결과 역시 GA 규모별 대응력 격차가 이미 상당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한 보험업계 전문가는 “감독체계 강화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보험사 전략과 결합될 경우 GA 시장의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고착시킬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규제의 실효성을 유지하면서도 GA 규모와 구조를 감안한 단계적·차등적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규제 강화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도와 방식”이라며 “보험사·GA·당국 간 지속적인 조율 없이는 규제가 시장 균형을 해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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