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물류의 향후 10년을 좌우할 '제6차 국가물류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쓴소리가 나왔다. 거대 인프라와 대기업 위주로 흘러가던 기존 논의 틀을 깨고, 당장 5년 뒤 닥쳐올 '인구 절벽'에 대비해 실질적인 AI(인공지능) 지원책을 내놓으라는 현장의 목소리다.
지난 10일 서울창업허브에서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가 공동 개최한 공청회 현장. 쟁쟁한 학계 전문가와 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스타트업 대표로 단상에 오른 박찬재 두핸즈 대표의 발언은 꽤나 묵직했다. 그는 장밋빛 미래 대신 '생존'을 이야기했다.
이날 박 대표가 꺼내 든 핵심 키워드는 '2030년'이다. 그는 일본과 미국, 호주, 유럽 등 선진 물류 시장이 이미 겪고 있는 극심한 구인난을 사례로 들었다. 이커머스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 물건을 나르고 분류할 사람은 줄어드는 이른바 '물류 병목' 현상이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가속화되는 2030년부터 국내 물류 현장은 심각한 인력 공백에 직면한다. 박 대표는 "지금처럼 단순한 설비 자동화나 단발성 기술 지원으로는 다가올 파고를 넘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력 부족분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의 고도화된 '물류 AI'가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도구라는 주장이다.
이는 그동안 하드웨어(창고, 트럭, 항만) 중심이었던 정부의 물류 지원 정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특히 AI 기반의 운영 효율화로 급선회해야 함을 시사한다.
현행 중소기업 기술 지원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 물류사들이 정부 과제를 수행하거나 지원을 받으려 해도, 현장의 니즈와 동떨어진 요건들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물류 AI 수요의 본질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보여주기식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소프트웨어 주권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예산과 정책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중소 물류 스타트업이 보다 수월하게 정부의 R&D(연구개발) 지원을 받아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는 '진입로 확장'을 주문했다.
이번 공청회는 향후 10년(2026~2035) 국가 물류 정책의 최상위 계획을 다듬는 자리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육상, 항공, 해운 등 기간산업을 쥐고 있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이런 가운데 풀필먼트 서비스 '품고'를 운영하며 바닥부터 성장해온 스타트업 대표가 패널로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업계에서는 박 대표의 참석이 구색 맞추기에 그쳐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토론에서는 글로벌 물류기업 육성, 항만 인프라 등 굵직한 거대 담론이 오갔지만, 결국 물류의 모세혈관을 담당하는 것은 수많은 중소 물류사와 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두핸즈 측은 지난 10월 출범한 '물류 AI 대전환 혁신랩'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의견을 개진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K-물류가 특정 대기업에 편중되지 않고 생태계 전반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스타트업의 현장 목소리가 정책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공청회에서 수렴된 산학연의 의견을 검토해 최종 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인구 소멸이라는 정해진 미래 앞에서, 정부가 스타트업이 제안한 'AI 중심의 체질 개선'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물류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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