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영화가 개봉할 때면 기자간담회나 인터뷰에서 감독과 배우에게 주어지는 단골 질문들이 있습니다. 해당 영화만의 매력, 관전 포인트, 연기와 연출에 있어 주안점을 둔 부분 등 다양하게 변형되지만 결국 질문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이 영화를 왜 봐야 하는가?". 물음이 좀 더 노골적으로 변한 건 팬데믹 이후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어떻게 다시 관객들을 극장으로 부를 수 있겠냐는 의문이 커진 다음이죠. 그래서 "이 영화를 왜 봐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단서가 하나 붙습니다. "이 영화를 왜 '극장에서' 봐야 하는가?"로요.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여기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 중 〈아바타〉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9년의 첫 〈아바타〉는 악명 높은 러닝타임과 대중에 익숙지 않은 특수 상영 포맷, 이에 따른 비싼 티켓 가격이라는 장벽을 코웃음치며 뛰어 넘었습니다. 판도라 행성이라는 완벽한 가상 세계를 탐욕스런 인간 세계와 대비시켜 만든 서사는 다소 도식적이지만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쉬워야 아예 처음 보는 세계관도 받아들일 수 있기 마련이죠. 이 모든 걸 '밑밥'으로 만들어 버린 엄청난 신기술들까지도요. 〈아바타〉를 '극장용 영화'의 정점이라고 부르고 싶은 건 이 때문입니다. 모두가 안경 초점이 안 맞아 멀미를 하더라도 3D로 보려던 영화였습니다.
〈아바타〉 시리즈가 13년의 공백을 두는 동안 영화계의 기술적 진보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습니다. 한편으론 넷플릭스가 팬데믹 특수로 급성장하며 극장 관객들을 TV 앞으로 빨아들였습니다. '극장용 영화'와 'OTT용 영화'가 더욱 극명히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스케일과 최신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영화는 "왜 극장에서 봐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게 됐죠.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은 이 장벽마저 뛰어 넘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글로벌 흥행 20억 달러를 넘긴 건 〈아바타: 물과 길〉입니다.
영화 〈아바타: 불과 재〉
그리고 3년 후인 2025년, 〈아바타: 불과 재〉가 개봉했습니다. '기술 맛집' 답게 무려 197분의 러닝타임이 VFX로 꽉 들어찼습니다. 그러나 서사의 단순함과 빈약함마저 여전합니다. 전작에서 설리 가족은 RDA로부터 오마티카야 부족을 지키기 위해 바다로 이주했죠. 멧카이나 부족의 터전에서 임시로 머물던 이들 앞에 RDA와 아바타가 된 마일스 쿼리치 대령이 다시 나타났고요. 당시에도 민폐 논란(?)을 벗어날 수 없던 설리 가족은 〈아바타: 불과 재〉에서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판도라 행성과 이곳을 식민지화하려는 RDA, 제이크와 그를 사살하는 데 집착하는 쿼리치의 대결 구도가 3편 연속으로 똑같은 갈등 구조를 형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멧카이나 부족이 인질이 되고, 쿼리치의 아들인 스파이더가 인질이 됐다가 또 제이크의 자식들이 인질이 되는 식입니다. 〈아바타: 불과 재〉에서는 특히 이 인질전이 지난하게 펼쳐집니다.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아바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반제국주의와 반전주의, 생태주의는 이제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신선하지 않은 것보다는 '아직도' 같은 이야기를 유사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듯해요. 시리즈 출범 이후 무려 16년 동안, 외부 환경은 개선되기는 커녕 더 심각해졌지만 〈아바타: 불과 재〉에서 그 경각심을 제공받긴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리즈의 주제의식이 전통적 형태의 가족 찬양으로 옮겨갔다는 인상까지 줍니다. 망콴 부족의 등장으로 세계관이 확장된 만큼 대놓고 '질문을 그만해야 하는' 설정도 적지 않아요. 그저 모든 것이 어머니 에이와의 뜻입니다.
그러나 〈아바타: 불과 재〉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서사적 지루함을 시청각적 즐거움으로 상쇄합니다. 그냥 2D로 보면 손해라고 느껴질 만큼 특수 상영 포맷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극장용 영화'예요. 확실히 제임스 카메론과 〈아바타〉는 '극장에서 볼 만한'이라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바꿨습니다. 이 반동으로 극장에서 탁월한 서사의 존재감이 축소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고요. 재밌는 건 이처럼 기술로 영화사 흐름을 바꾼 제임스 카메론이 인공지능(AI)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는 〈아바타: 불과 재〉 개봉 전부터 "단 1초도 생성형 AI를 쓰지 않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이 결코 독창적이지도, 일관적이지도 않다는 논리입니다.
영화는 플라톤주의를 찢고 태어난 발명품입니다. 원본 없이 원본이 되고, 무한히 복제 가능하며, 복제 자체도 원본이 될 수 있죠.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중 하나인 영화에는 미학적 의미의 '아우라'가 없습니다. 없다고 나쁜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숭배되던 예술이 이제는 전시됨으로서 가치를 얻게 된 거예요. 복제를 통해 민주화한 방식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대중은 능동적 비평가가 됐고요.
그런데 영화사에 기술적 전환기가 올 적마다,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 모종의 '이데아'나 '아우라' 같은 것에 대한 갈망이 조성됐습니다. 처음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들고 나왔을 때 '그저 CG빨(?)'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건 아날로그 제작 방식에 인위적으로 아우라성이 부여된 탓입니다. 극장의 기능이 안방으로, 나아가 모두의 스마트 기기로 옮겨가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극장 관람이 영화를 즐기는 가장 영화다운 방식이라는 믿음은 아직 존재합니다. 이 역설적 흐름이 스노비즘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바탕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의 가치가 더 이상 소멸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겁니다.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제임스 카메론은 가상의 나비족과 현실의 인간, 두 종족의 DNA를 섞어 '아바타'를 만들었습니다. 거의 모든 장면에 VFX를 쓰지만 실제 배우의 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요. 막상 최근 디즈니가 자사 IP를 오픈AI 학습에 제공한 마당이라 이런 그의 그의 작업이 '올드스쿨' 취급 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첨단 기술의 선두주자로서 AI를 생산자나 창조자가 아닌 도구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제임스 카메론의 주장이 마냥 모순적으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작품 자체로 응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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