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기자 피라미드 공원은 그저 오래된 돌무덤이 아니다. 이곳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가장 웅장한 영원불멸의 예술 작품이 펼쳐지는 거대한 무대다. 이 사막을 걷는 순간, 피라미드들은 당신이 발을 옮길 때마다 자세를 바꾸는 살아있는 조형물처럼 다가온다. 미술이나 건축을 몰라도 상관없다. 누구나 이곳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이집트 제4왕조의 파라오들이 영생을 꿈꾸며 쌓아 올린 세 개의 거대한 삼각형이 바로 이 예술의 핵심이다.
(1)쿠푸의 대 피라미드 (Great Pyramid of Khufu): 세 피라미드 중 가장 크고 높다. 수백만 개의 돌덩이가 정교하게 맞물려 만들어 낸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는, 고대인이 추구했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2)카프레의 피라미드 (Pyramid of Khafre): 쿠푸의 아들이 지었으며, 높은 지형 덕분에 시각적으로는 더 커 보이기도 한다. 꼭대기에 남아있는 하얀 마감재 흔적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을 피라미드의 원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3)멘카우레의 피라미드 (Pyramid of Menkaure): 가장 작지만, 밑부분에 사용된 붉은 화강암은 건축 재료를 통한 색감의 차이와 섬세한 장식미를 추구했던 고대인의 감각을 보여준다.
이 세 피라미드를 설계한 이들은 태양의 궤적을 따라 사막 위에 나란히 놓여, 완벽한 파노라마를 이루도록 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배열과 명암, 배경이 끊임없이 바뀌며 수많은 회화적 장면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곳. 피라미드 단지에서의 여정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시선을 옮기는 행위 자체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1. 웅장함 속으로: 첫 만남의 경이와 사막의 침묵
사막을 가로질러 피라미드 공원으로 들어서는 첫 순간은 현실이 아닌, 아주 오래된 꿈속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발은 뜨거운 모래를 밟고, 멀리 보이던 거대한 건축물들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순간, 인간의 힘으로 빚어낸 거대한 신념과 마주친다.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본 세 피라미드는 그저 크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옆의 작은 피라미드가 장난감처럼 느껴질 만큼, 세 개의 거대한 봉우리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완벽한 삼각형이 주는 조형은 모두에게 충격을 준다. 하늘을 찌르는 수직선과 땅에 단단히 박힌 수평선이 만들어 내는 이 단순한 형태는 불변의 아름다움 자체다. 햇빛을 받은 면과 깊은 그늘이 진 면의 대비는 피라미드의 입체감을 극대화하며, 태양이 움직이는 내내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예술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사막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주변의 소음은 희미해지고, 오직 내 발밑 모래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머리 위 구름의 움직임만이 남는다. 시선이 뒤로 물러나면서 세 피라미드가 이루는 배열은 훨씬 넓은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세 개의 피라미드가 사막 위에 놓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자연주의 조각군을 보는 듯하다.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이들의 상대적인 크기와 배치가 미묘하게 달라지면서 내 움직임에 따라 풍경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유동적인 건축 경험을 하게 된다.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황토색의 피라미드와 사막은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이루며, 피라미드가 사막 속에서 얼마나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지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이제 시선은 사막 능선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한다. 모래 언덕을 내려가자 피라미드 밑부분은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광활한 사막 지형에 피라미드의 윗부분이 드러난다. 이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피라미드의 웅장함만큼이나 강렬한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거대한 건축물이 사라진 순간, 오히려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모래 능선 너머로 보이는 피라미드의 위 모습, 끝없는 사막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영원한 이정표처럼 느껴진다.
2. 시선의 이동: 현대와의 마주침과 시간의 질감
사막의 광활함에서 시선은 인간의 흔적, 즉 움직이는 풍경으로 향한다. 뜨거운 모래 능선을 따라 피라미드를 향해 느릿하게 나아가는 낙타 행렬이 시야에 들어온다. 수천 년 전 파라오의 시대부터 이어져 온 듯한 이 풍경은 피라미드 단지의 시간 감각을 더욱 깊게 만든다. 묵묵히 걷는 낙타와 그 위에 앉은 순례자들의 모습은 이 거대한 건축물을 찾는 이들의 고독하고도 숭고한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윽고 걷기를 멈추고 시선을 멀리 돌리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장엄한 사막의 모래 빛 뒤편으로 아주 선명하게 현대 도시 기자(Giza)의 도시가 가느다란 윤곽으로 아득히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를 상징하는 가장 위대한 고대 건축물과 21세기의 무질서한 도시 문명이 한 장의 사진처럼 마주 보는 순간이다. 이 극적인 대비는 마치 파라오의 영혼이 현대의 소음과 빛 속에서 조용히 서 있는 듯한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피라미드는 수많은 고층 건물을 뒤로하고도 여전히 압도적인 수직성을 자랑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건축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고대와 현대의 시각적 충돌은 이곳이 단순한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공간임을 깨닫게 한다.
다시 피라미드 가까이 다가서서 돌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제는 질감의 예술이 시선을 붙잡는다. 태양이 피라미드의 측면을 강하게 비출 때, 수많은 거친 석회암 블록들이 질서정연하게 쌓아 올려진 모습이 보인다. 이 돌들은 매끈하게 연마된 현대 건축물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의 풍파가 그대로 새겨진 투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과 숭고한 믿음이 빚어낸 ‘휴먼 스케일’의 예술임을 깨닫게 한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강한 명암은 돌 하나하나의 질감을 살아있는 듯 표현하며, 고대 건축의 조형미가 현대 조각품보다 더 깊은 생명력을 가진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3. 시간의 무게와 여운: 완성된 시야와 평화로운 마무리
피라미드 주변을 완전히 돌고 여정의 막바지에 이르러, 시선은 다시 가장 위대한 걸작인 쿠푸의 대 피라미드에 멈춘다. 피라미드 표면에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그 높이와 엄청난 무게를 시각적으로 가늠하게 해준다. 거대한 돌덩이 아래 움직이는 작은 사람들과 낙타 행렬은 이 건축물이 가진 역사의 무게감을 더욱 명확히 강조한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우주의 질서와 영생을 건축으로 표현하려 했던 가장 순수한 예술 행위의 결과이다.
이제 사막을 떠나 되돌아가는 길이다. 나는 피라미드를 완전히 등지지 않고, 여전히 시야에 담은 채 발걸음을 옮긴다. 나의 시야 속에서 피라미드들은 점점 멀어지지만, 결코 지평선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걷는 동안 느꼈던 경이로움과 고독의 감정들이 서서히 평화롭고도 숭고한 여운으로 바뀐다.
피라미드를 구성하던 돌들의 세밀한 모습은 희미해지고, 오직 세 개의 완벽한 삼각형 실루엣만이 푸른 하늘 아래 영원히 정지된 이미지처럼 남는다.
이 모습은 피라미드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모든 시대와 문명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영원한 ‘형태’의 개념임을 증명한다. 건조한 사막 공기와 강렬한 햇빛이 탄생시킨 미세한 대기층은 피라미드를 더욱 신비롭고 아련하게 보이게 하는 자연적인 회화 효과를 더한다. 멀어지는 시선 속에서도 피라미드는 거대한 사막 위에 새겨진 세 점의 완벽한 고요한 점묘화처럼 시야에 머무른다.
피라미드를 둘러싼 사막의 풍경은 수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이 세 건축물은 마치 거대한 시간의 닻처럼 그 자리에 변함없이 머물러 있다. 완벽한 비례와 단순함의 미학을 추구했던 고대인들의 예술혼은 오늘날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잊고 있던 영속(永續)의 가치를 조용히 전한다. 기자 피라미드 공원에서의 여정은 단순히 유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성과 신념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설 때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를 목격하는 가장 감각적인 예술 체험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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