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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스트라이트>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우리 삶의 비극과 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 대신 상실과 고립에 갇힌 한 가족의 내면을 조용히 파고들며, 예술을 통한 치유가 어떻게 한 인간을 구원하고 가족을 다시 하나로 묶어내는지를 섬세하게 증명한다.
주인공 댄(키스 쿠퍼러)은 아들을 잃은 후 슬픔을 분노와 침묵으로 억누르는 중년의 건설 노동자다. 그의 집은 해체 직전의 공사 현장과 다름없다.
아내 샤론과 딸 데이지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의 외면 속에서 고통 받는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지역 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에 합류하게 되면서, 닫혔던 그의 삶에 새로운 막이 오른다.
댄이 연기하는 역할 그 자체는 중요치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가 두 어린 연인의 비극적인 죽음을 담은 대본을 읽고 연기하는 행위 자체다.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는 댄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상실’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들이민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절망적인 결말은 댄이 겪은 아들의 비극적인 상실과 정확하게 겹친다.
댄은 무대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연기하며, 자신의 고통이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도 반복됨을 깨닫는다.
그는 타인의 슬픔을 빌려 비로소 자신이 겪은 아픔을 마주하고, 억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릴 용기를 얻는다.
이 영화는 상실의 슬픔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그 사실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연극이라는 가상의 틀 안에서 댄은 자신이 회피했던 가장 아픈 진실을 받아들이고, 아들에게 진정한 애도를 표할 준비를 한다.
더욱이, 이 과정은 실제 영화 속 배우들이 진짜 가족 관계라는 사실과 맞물려, 그 연기에 더욱 강력하고 절실한 진정성을 부여한다.
고스트라이트(Ghostlight)는 극장의 무대 한가운데에 홀로 켜 두는 불빛이다.
이는 댄의 어두운 삶과 가족의 단절된 관계를 비추는 희망의 빛으로 작용한다.
댄은 연극을 통해 슬픔을 공유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운 후, 마침내 무대 밖 현실에서 아내와 딸에게 용기를 내어 다가간다.
가족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비극을 함께 기억하면서, 그때야말로 그들의 삶에도 진정한 치유의 빛이 스며든다.
영화 <고스트라이트>는 가족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깊숙이 보듬어줄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증명하는 작품이다. 17일 개봉.
/디컬쳐 박선영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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