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토록 가방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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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토록 가방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

엘르 2025-12-16 08:32:30 신고

여성에게 가방은 어떤 의미일까. “그 안에는 내 인생이 들어 있어요.” 우리가 숱하게 듣는 이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가방은 패션 소품의 얼굴을 한 채, 여성의 인생· 정체성· 욕망을 드러내는 강력한 정치 도구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단단하거나 부드럽거나, 절제로 보이거나 화려하게 보이거나, 그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완벽하게 보이고 싶어 하고, 동시에 주변을 챙기려는 마음에 ‘전투용 가방’을 들고 매일을 버틴다.

샤넬의 2025 F/W 시즌 오트 쿠튀르 미노디에르 백.

샤넬의 2025 F/W 시즌 오트 쿠튀르 미노디에르 백.

임상심리학자 파트리샤 세랭(Patricia Serin)은 “오늘날 핸드백은 끊임없이 능동적이며 우아해야 한다는,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기대를 그대로 사물화한 존재”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여성들은 신성한 가방을 찾아 헤매지만, 사실 그런 가방은 존재하지 않죠.” 극도로 실험적인 가방은 현실에선 여전히 소수의 전유물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은 ‘일상적 범위’에서 균형을 찾는다. 그리고 균형을 찾는 과정은 놀랄 만큼 복잡하다. 자전거를 탈 때 쓸 힙색, 런웨이에 등장하는 XXL 사이즈의 가방, 여분으로 접어 넣는 가벼운 쇼퍼백 그리고 다시 필요한 것만 담고 싶은 토트백과 백팩까지. 하나로 부족해 세컨드 백을 드는 것도 일상이 됐다.

미우미우의 2024 F/W 시즌 백.

미우미우의 2024 F/W 시즌 백.

한편 우리는 때로 기능이 아닌 ‘순간의 욕망’에 사로잡혀 반짝이는 가방을 집어들기도 한다. 가방을 드는 행위 자체가 사회에 대한 은근한 저항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여성이 가방으로 취향과 미적 감각을 드러내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19세기 말 근대적 핸드백이 등장하기 전, 여성의 풍성한 치마 속에는 작고 비밀스러운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드레스가 몸에 밀착되자 주머니는 안쪽이 아닌 바깥으로 이동했고, 손목에 걸려 장식 기능을 갖춘 ‘레티큘’로 자리 잡았다. 1920년대의 배니티 케이스, 1930년대의 미노디에르(Minaudie‵re)에 이르기까지 이 계보는 당시 여성들이 사회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이자 시대 변화를 흡수한 스타일적 언어였다. 반클리프 아펠의 샤를 아르펠(Charles Arpels)이 우연히 한 여성이 담배 케이스에 소지품을 담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딱딱한 미노디에르 역시 그 변주 속의 한 장면이다.

그레이스 켈리가 들어 화제가 된 에르메스 켈리 백.

그레이스 켈리가 들어 화제가 된 에르메스 켈리 백.

20세기 여행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가방은 더욱 커지고 강해졌다. 남성적인 실루엣의 가죽 가방이 유행하면서 ‘여성의 이동’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사회적 독립의 상징이 됐다. 양산과 장갑은 사라졌지만, 가방만은 여전히 옷장 속에 남아 여성의 공적· 사적 영역에 동행했다. 패션 산업 역시 이 흐름을 포착했다. 가방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오래 지속되며 목적이 분명한 아이템이기에, 브랜드에 새로운 고객을 불러 모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가 됐다.

보테가 베네타의 백을 든 제이콥 엘로디.

보테가 베네타의 백을 든 제이콥 엘로디.

1800년대 ‘레티큘’을 든 여인.

1800년대 ‘레티큘’을 든 여인.

주머니에 손잡이가 달린 백의 초기 모습 ‘레티큘’.

주머니에 손잡이가 달린 백의 초기 모습 ‘레티큘’.

1950년대, 영화 촬영 중 그레이스 켈리가 에르메스 가방으로 임신한 배를 가려 파파라치의 시선을 피했을 때, 그 사진은 ‘켈리(Kelly)’ 백이라는 이름을 탄생시켰으며, 7년 뒤 또 다른 아이콘 ‘버킨(Birkin)’이 탄생하며 가방은 완전히 시대의 얼굴이 됐다. 이렇게 가방은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여성과 함께 전설적인 순간을 남기곤 했다. 한편, 가방이 성별을 넘어 ‘자기표현의 무기’가 되자 이제는 남자들도 이를 탐하는 시대가 됐다. 남성 셀럽들 역시 심심치 않게 예쁜 가방을 든다. 딱딱한 브리프케이스뿐 아니라 여성들의 전유물 같았던 예쁘고 화려한 가방을 탐하는 남성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자신을 돌보고 표현하는 ‘셀프 케어(Self-care)’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루이 비통의 2025 F/W 시즌 백.

루이 비통의 2025 F/W 시즌 백.

파트리샤 세랭은 “핸드백은 자유와 통제, 규범과 정체성 사이의 긴장을 담은 아이콘이에요.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가방 없는 미래를 상상해 보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또 다른 형태의 자유. 그 변화는 단순한 패션의 진화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패러다임이 뒤바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룩’과 ‘행동하기 위한 룩’ 사이 어디쯤에서 가방을 든다. 그 선택은 여전히 시대의 욕망을 품은 채, 우리 삶을 움직인다. 그게 여성이든 남성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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