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질서의 중심축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유럽의 탄소 규범도, 미국의 기술 중심 전략도 아니다. 2026년 1월 인도 고아에서 열리는 ‘인도 에너지 위크(India Energy Week) 2026’가 보여주는 방향은 보다 직설적이다. 에너지는 전환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성장의 수단이라는 인식이다.
이번 행사의 핵심인 전략 콘퍼런스는 단순한 친환경 담론의 장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 공급 안정성, 접근성과 가격, 탈탄소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현실적 에너지 믹스’가 전면에 놓였다. 주최 측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모든 가용 에너지원의 최적 활용이 보편적 과제가 됐다”고 명시했다. 탈탄소를 부정하지 않되, 에너지 부족과 산업 공백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인도가 이 논의의 중심에 선 이유는 명확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에너지 수요국이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대표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번 콘퍼런스는 석유·가스, 재생에너지, 수소, 바이오연료, 원자력, 디지털·AI까지 전 에너지 스펙트럼을 포괄한다. ‘전환(Transition)’과 ‘추가(Addition)’를 동시에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 에너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 에너지를 더하는 방식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원자력과 천연가스, 그리고 디지털 에너지 기술의 위상이다. 소형모듈원전(SMR), 탄소포집·저장(CCUS), 메탄 감축 기술, 에너지 AI와 사이버 보안까지 전략 세션의 핵심 의제로 배치됐다. 이는 유럽식 급진적 탈탄소와 선을 긋는 동시에, 중국식 대규모 공급 중심 모델과도 차별화된 노선이다.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제3의 경로다.
이번 회의는 에너지 외교의 장이기도 하다. 장관급 회의, 최고경영자(CEO) 라운드테이블, 비공개 리더십 세션을 통해 정책·자본·기술이 한 테이블에 앉는다. 주최 측은 “2026년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서사를 정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선언이 아니라, 협약과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다.
전시도 메시지는 같다. 7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 참여해 기술을 과시하지만, 초점은 혁신 그 자체보다 상용화와 확장성에 맞춰질 예정이다. 인도는 ‘실험장’이 아니라 ‘시장’임을 분명히 했다. 에너지 전환이 이상이 아닌 산업으로 작동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인도 정부는 “가능하다”고 답하고 있다.
이 흐름은 한국에도 큰 의미를 가진다. 에너지 안보, 제조업 기반, 원전·수소·조선·플랜트 역량을 동시에 가진 국가라는 점에서, 인도가 그리는 에너지 지도는 한국 산업의 좌표와 겹친다. 글로벌 에너지 질서가 ‘속도 경쟁’에서 ‘지속 가능성 경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국 역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다음 국면은 더 이상 구호의 경쟁이 아니다. 누가 더 많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인도 에너지 위크 2026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Copyright ⓒ 뉴스로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