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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후 원코칭 대표코치] 많은 팀원들이 여전히 리더에게서 멘토를 기대합니다. 회사 안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잡아주고, 일의 기술뿐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가르쳐주는 존재 말입니다. 때로는 힘들 때 감정까지 보듬어주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든 지금, 이 기대는 점점 현실과 어긋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리더는 더 이상 ‘완성형 멘토’가 아닙니다.
리더는 여전히 바쁩니다. 아니, 과거보다 더 바쁩니다. 의사결정의 속도는 빨라졌고, 고려해야 할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기술 변화, 세대 변화, 시장 변화가 동시에 밀려옵니다. 이런 환경에서 리더가 팀원 개개인의 고민을 세심히 들어주고, 인생 전반을 지도하는 멘토 역할까지 수행하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리더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리더 곁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배움이었습니다. 경험과 정보, 노하우가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스를 멘토로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달랐습니다. 직장은 원래 도제의 공간이었습니다. 장인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아도, 곁에서 보고 따라 하며 익히는 관계. 존경의 대상이기보다 배움의 대상이 되는 관계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AI 시대에 이 도제 관계는 더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기술과 정보의 상당 부분은 리더가 아니라 AI가 제공합니다. 보고서 초안, 데이터 분석, 아이디어 발산, 심지어 말의 구조화까지 AI가 돕습니다. 그렇다면 팀원은 질문해야 합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리더에게서 배워야 하는가, 무엇을 AI에게 맡겨야 하는가.”
이 구분이 되지 않으면 실망이 커집니다. 리더에게서 모든 답을 얻으려 하면 리더는 부족해 보이고, 조직은 답답해집니다. 반대로 AI에 모든 것을 의존하면 방향을 잃습니다. AI는 도구이지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리더의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리더는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AI시대에 리더는 정보를 줄 것이 아니라 판단을 해줘야 하고, 기술이 아니라 맥락을 잘 알려줘야 하며, 속도만 재촉할 게 아니라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팀원이 리더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선택이 우리 조직에 맞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이 상황에서 책임져야 할 결정은 무엇인지에 대한 태도와 기준 말입니다. 이것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반면,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고, 시뮬레이션하는 일은 AI의 영역입니다. 리더에게 이런 것까지 기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비목석(人非木石)입니다. 리더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리더에게도 감정이 있고, 편향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완벽한 스승을 기대하는 순간 실망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불완전함을 전제로 하면 전략이 달라집니다. 흠은 흠대로 두고, 배울 수 있는 장점만 취하는 실사구시의 자세가 가능해집니다.
AI 시대의 팀원은 더 영리해져야 합니다. 리더에게서 배울 것은 선별하고, AI를 활용할 것은 과감히 활용해야 합니다. 리더를 인격적 이상형으로 세워두는 순간, 관계는 왜곡됩니다. 리더는 도제 관계의 장인이지, 인생 상담사가 아닙니다.
이 구분이 분명한 조직은 빠릅니다. 기대가 정확하고, 실망이 적습니다. 리더는 리더의 역할에 집중하고, 팀원은 학습의 효율을 높입니다. AI는 그 사이에서 생산성을 증폭시키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결국 성과는 태도에서 갈립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를 정확히 아는 태도, 이것이 AI 시대 직장인의 기본기입니다.
리더의 역할은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해졌습니다. 모든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팀원 역시 달라져야 합니다. 배울 상대와 활용할 도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 시대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AI 시대의 도제 관계이며, 오늘날 조직에서 통하는 새로운 직장병법입니다.
■문성후 대표 △경영학박사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 △연세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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