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과 캄보디아 분쟁지역 지도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충돌은 동남아 지역의 오래된 분쟁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이 갈등이 한국 사회에서 갑자기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전선 한복판에 ‘한국산 무기’라는 이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측이 태국군이 한국산 KGGB를 장착한 항공기를 활용해 자국 실권자 부자를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한국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게 됐다. 한국산 무기는 이 분쟁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 그리고 한국은 무엇을 가장 조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먼저 KGGB가 무엇인지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KGGB, 즉 Korean GPS Guided Bomb는 흔히 떠올리는 ‘폭탄 한 발’이라기보다 기존의 일반 항공폭탄에 장착하는 유도·활공 키트에 가깝다.
주로 Mk-82급 범용폭탄에 결합해 사용되며, GPS와 관성항법 장치를 통해 목표 좌표를 정확히 추적한다. 여기에 접이식 날개가 더해져, 항공기가 방공망 바깥에서 폭탄을 투하해도 장거리 활공을 통해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든다.
이 때문에 KGGB는 ‘날개 달린 폭탄’ 혹은 ‘정밀타격 키트’로 불린다. 투하 고도와 속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공개 자료에서는 수십 킬로미터에서 100킬로미터 안팎의 활공 능력을 갖춘 무기로 소개돼 왔다.
태국 공군은 F-16 전투기 등에 이 체계를 통합해 시험과 도입을 진행했고, 2022년 한국으로부터 소량을 도입한 사실도 여러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제 시선을 분쟁의 근본으로 돌려보자. 태국과 캄보디아의 충돌은 결코 최근에 생겨난 감정 대립이 아니다.
이 갈등의 뿌리는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국경 설정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4년과 1907년 체결된 조약은 국경선을 ‘유역 분수선’ 기준으로 정하도록 규정했지만, 이후 프랑스가 제작한 지도는 이 원칙을 일관되게 반영하지 않았다. 문서상의 기준과 실제 지도의 경계가 어긋나면서, 어느 쪽 영토인지 해석이 엇갈리는 지역들이 남게 됐다.
그 상징적 공간이 바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다. 이 사원은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캄보디아 영토로 인정됐지만, 사원 주변 지역의 경계 문제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이 ‘미완의 경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민족주의와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번역돼 왔다.
2008년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억눌려 있던 갈등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군사적 충돌과 정치적 공방이 반복됐고, ‘땅 몇백 미터’의 문제가 ‘국가의 자존심’이라는 언어로 재구성됐다. 이 기억은 양국 사회에 깊이 각인돼, 이후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빠르게 확산되는 감정적 연료로 작용해 왔다.
최근 교전이 유독 격화된 이유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2025년 여름, 양국은 전면 충돌을 겪은 뒤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는 전투를 잠시 멈추는 합의였을 뿐, 분쟁의 원인을 해결하는 정치적 합의는 아니었다.
▲ 태-캄 전쟁에서 피해입은 세계문화유산
관리와 감시, 분쟁 재발을 막기 위한 이행 메커니즘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12월 들어 다시 충돌이 발생했다. 국제 언론들은 태국의 공습과 이에 대한 캄보디아의 반발, 그리고 서로가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는 공방을 전했다. 포격과 공습이 이어지며 민간인 피해와 대피가 확대됐고, 휴전의 취약함은 여실히 드러났다. 휴전은 있었지만,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이런 국면에서 캄보디아 측이 제기한 ‘KGGB 암살 계획’ 주장은 한국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태국과 한국은 이 주장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한국이 느끼는 민감함은 사실 확인 이후에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사실 여부가 확정되기 전부터 이미 부담은 시작된다.
첫째는 방산 수출의 평판 리스크다. 한국산 무기가 정밀성과 기술력을 강점으로 내세워 수출되는 만큼, 그 이름이 ‘암살’이라는 프레임과 함께 언급되는 순간 수출국의 이미지도 함께 흔들린다. 설령 구매국이 부인하고 한국 정부가 선을 그어도, 의혹의 제목은 오래 남는다. 방산 산업에서 평판은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자산이기 때문에, 이런 연루 자체가 부담이 된다.
둘째는 종단사용 관리 문제다. KGGB는 국제법상 불법 무기가 아니고, 정식 계약을 통해 수출된 체계다. 그럼에도 분쟁 지역에서 실전 사용됐다는 주장, 혹은 그럴 가능성만으로도 수출 통제, 후속 계약, 추가 도입 논의에는 정치적 비용이 붙는다. 특히 ‘어디까지 사용될 수 있는가’, ‘재이전이나 목적 외 사용은 없었는가’라는 질문은 수출국인 한국에 계속 따라붙는다.
셋째는 외교적 중립의 균형이다. 한국은 태국과도, 캄보디아와도 외교·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주장에 휘말리거나, 방산 수출이 특정 국가 편들기로 오해받을 경우 외교적 공간은 급격히 좁아진다. 국방 분야의 기술·수출 논리와 외교적 메시지가 따로 움직일수록 위험은 커진다.
▲ KGGB는 ‘날개 달린 폭탄’ 혹은 ‘정밀타격 키트’
그래서 지금 한국이 가장 민감하게 점검해야 할 것은 무기의 성능이 아니라 관리와 메시지다. 종단사용과 재이전 금지 조항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위반 징후가 있다면 어떤 절차로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공식 메시지는 사실관계 확인을 전제로 하면서도 긴장 완화와 분쟁 당사국 간 대화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 한쪽의 주장만을 인용해 확정적으로 말하는 순간, 외교적 역풍은 피하기 어렵다.
나아가 후속 방산 수출과 군사기술 협력에서 이 지역의 분쟁 리스크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보험과 금융, 납기와 평판까지 포함한 종합적 평가도 업데이트돼야 한다.태국과 캄보디아의 충돌은 한국이 시작한 분쟁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산 KGGB’라는 이름이 거론된 순간, 이 갈등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밀무기 수출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국제 분쟁의 언저리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번 사안은 그 질문을 분명하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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