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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도시는 빗물을 자원이 아닌 배출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왔다. 이로 인해 도시의 빗물 관리 목표는 여전히 ‘신속 배제’에 머물러 있다. 개발 이전의 자연 유역에서는 빗물이 토양과 식생을 거쳐 흡수·저류되고 지하수로 스며들었지만 도시 개발 과정에서 도로와 건축물 등 불투수 면적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순환은 대부분 끊어졌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지표면은 빗물이 스며들 틈을 없애고 결국 빗물은 도시 내부에 머무르지 못한 채 우수관을 따라 빠르게 외부로 흘러나가는 구조가 형성됐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물은 본성대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흡수와 지연이라는 자연의 완충 장치가 사라진 도시에서는 빗물을 분산시킬 여력이 없다. 그 결과 빗물은 한꺼번에 저지대로 몰리며 상류에서 흡수됐어야 할 유량까지 더해져 하류 지역의 침수가 되풀이된다. 물을 빨리 내보내려는 효율 중심의 접근이 오히려 저지대로 물을 집중시켜 범람을 불러온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물의 이동’ 문제가 아니라 물을 흡수하고 조절해야 할 도시의 완충 능력이 구조적으로 약화한 데서 비롯된 실패다. 결국 기존 방식의 물 관리로는 더 이상 도시를 안전하게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다행히 정부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도시 물순환 회복을 위한 대응에 나섰다. 지난 7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물순환 촉진구역’(물순환 활력도시) 공모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는 ‘물순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른 것으로 내년 상반기 중 홍수와 가뭄에 취약한 네 곳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개별 시설 설치에 머물렀던 기존 방식을 넘어 지역 단위로 투수·저류·재이용을 통합 설계해 물순환 기능을 체계적으로 개선하는 데 있다.
‘물순환 촉진구역’ 지정은 단순히 개별 시설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 물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려는 정책적 시도다. 이 제도는 배수 중심으로 경직돼 있던 기존 인프라 운영 방식을 지역 단위에서 물이 흡수·저류·재이용될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극한 기후가 일상이 된 지금 빗물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체계를 갖추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도시의 지속성을 좌우하는 필수 전략이다. 이번 사업은 도시 물관리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순환 촉진구역이 현장에서 실질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 도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순환 기능은 회복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지역 특성에 맞는 계획과 꾸준한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투수·저류·재이용 시설이 도시계획과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설치 이후의 유지관리 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 비로소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의 지속적 추진력뿐 아니라 생활 공간이 바뀌는 과정에 대한 시민의 이해와 참여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이러한 실행 기반이 자리 잡을 때 제도는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전역에서 눈에 보이는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도시계획의 관점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해답은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스며드는 자연의 질서를 도시 안에 다시 자리 잡게 하는 데 있다. 노자가 말한 물의 겸허함과 이로움이 도시 물관리의 철학으로 자리 잡을 때 도시는 기후 변화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스스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물순환 회복 정책이 그러한 전환을 시작하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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