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서머스의 이메일 스캔들
권력 네트워크와 '도덕적 실명'
전 미국 재무장관이자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래리 서머스(로렌스 헨리 서머스·71)가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8월10일 옥중 자살)과 7년간 주고받은 이메일이 공개되면서,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던 최고위 경제 엘리트의 경력과 명성이 순식간에 붕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들 이메일은 래리 서머스가 제프리 엡스타인을 사적인 '고문'이자 '윙맨(편대장의 오른쪽 날개를 지원하는 조종사·서포터)'으로 삼았으며 , 심지어 그의 아내와 관련된 하버드 프로젝트의 기금 모금까지 요청했던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래리 서머스(Lawrence Summers·71)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공직자다.
1954년생으로 하버드대 교수 출신이며, 클린턴 행정부 재무부 장관(1999~2001), 하버드대 총장(2001~2006), 오바마 행정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2009~2010)을 역임했다. 2025년 엡스타인 문건 공개로 제프리 엡스타인과 장기간 밀접한 관계(연애 상담 등)가 드러나 오픈AI 이사직 사임, 하버드 강의 중단 등 공적 활동을 접었다. 그는 인플레이션 강경론자로 유명하며, 최근 트럼프 정책 비판과 AI 경제 영향 분석으로 활동 중이었다.
7년간의 은밀한 관계: 도덕적 오염을 무시한 '경제 대통령'
래리 서머스는 제프리 엡스타인이 2008년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최소 2013년부터 2019년 7월 그의 연방 체포 직전까지도 긴밀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두 사람의 교신이 제프리 엡스타인이 연방 성매매 혐의로 체포되기 불과 하루 전인 2019년 7월 5일까지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래리 서머스는 당시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케이프 코드( 미국 매사추세츠 주 남동쪽에 위치한 갈고리 모양의 반도)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적인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는 래리 서머스가 제프리 엡스타인의 명백한 도덕적 오염 리스크를 무시하고 그와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지속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유죄 판결 이후에도 학계, 언론계, 정계 인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네트워크를 유지했고 , 래리 서머스 역시 이러한 인맥을 통해 데이트 조언부터 트럼프 정책 논의까지 , 다양한 사적, 공적 조언을 구하는 대상으로 제프리 엡스타인을 이용하려 했다. 래리 서머스가 하버드 대학의 내부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를 지속했다는 사실은, 그의 공적인 명망이 개인적인 도덕적 오판(judgement)을 상쇄하지 못했음을 입증했다.
'윙맨'에게 구한 불륜 조언: 사적인 취약성의 노출
공개된 이메일 중 가장 논란이 된 내용은 래리 서머스가 자신이 '멘티'라고 칭한 여성과의 로맨틱한 관계 추구에 대해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구한 내용이었다. 래리 서머스는 2018년 말부터 2019년 7월까지 일련의 메시지에서 이 여성과의 관계 발전에 대해 엡스타인에게 보고했다. 그는 여성이 자신과의 만남을 피하자 자신이 '경제 멘토' 이상으로는 나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혜택 없는 친구(friend without benefits)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프리 엡스타인은 래리 서머스의 '윙맨' 역할을 자처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그 여성에 대해 "그녀는 똑똑하다. 당신이 과거의 실수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하는 중"이라고 조언했고 , "당신이 화를 낸 것은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징징거리지 않은 것은 강함을 보여줬다"며 래리 서머스를 독려했다. 그는 당시 하버드 교수인 엘리사 뉴와 결혼 상태였다는 점에서 , 그가 자신의 사적이고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성범죄자에게 조언을 구한 것은 그의 윤리적 판단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드러냈다.
사적인 문제 외에도, 래리 서머스는 하버드 교수이자 아내인 엘리사 뉴의 'Poetry in America' 프로젝트 기금 모금 및 자문을 위해 엡스타인과 접촉했다 .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는 2016년에 엡스타인으로부터 110,000달러 (약 1억 4,000만 원)를 기부받았고, 래리 서머스는 제프리 엡스타인이 추가로 500,000달러 (약 6억 4,000만 원)를 기부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래리 서머스가 아내의 학술 프로젝트를 위해 제프리 엡스타인의 재정적 영향력을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은 기관 거버넌스 규정 위반의 소지를 남겼다.
"깊이 수치스럽다" 공개 사과
이메일 공개 후 래리 서머스는 즉각적인 '공적 활동 탈퇴 도미노 현상'을 겪었다. 그는 2025년 11월 (보도 시점 기준) 성명을 통해 "깊이 수치스럽다(deeply ashamed)"고 사과하며,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하기로 한 잘못된 결정에 전적인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 그는 이 성명과 함께 모든 '공적 활동'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고, 그 결과 그가 속했던 주요 기관들은 일제히 그와 거리를 두었다.
서머스는 불과 며칠 만에 OpenAI 이사회 이사직에서 사임했고 , <뉴욕타임스> 는 그의 컬럼 기고에 대해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이외에도 브루킹스 연구소 해밀턴 프로젝트, 미국진보센터(CAP), 예일대 예산 연구소 등 7개 이상의 주요 정책 싱크탱크 및 미디어 기관과의 관계가 모두 단절되었다. 특히 래리 서머스는 불과 1년 전 OpenAI의 거버넌스 위기 이후 이사회에 합류했던 인물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사임해야 했다. 이는 첨단 기술 시대의 거버넌스 환경에서 도덕적 리스크 관리가 전문 지식의 가치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뉴욕타임스>
하버드의 재조사 착수와 정치권의 냉대
래리 서머스의 행동은 정치권과 학계의 최고위층으로부터 냉정한 비판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당)은 그의 행동이 "기념비적인 오판(monumentally bad judgement)"이었음을 지적하며 공개적으로 대학 측에 래리 서머스와의 관계 단절을 촉구했다 . 워런 의원은 래리 서머스가 "미성년자 성범죄자 엡스타인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능력이 그토록 부족했다면, 그는 더 이상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조언하거나 하버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
하버드 대학교 역시 여론의 압박에 직면했다. 하버드대 대변인은 새로 공개된 문서를 바탕으로 래리 서머스를 포함한 교내 인사들의 제프리 엡스타인 연관성 정보를 재검토하기 위해 조사를 재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 한 하버드 학생은 서머스가 이 사건에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고 , 일부 교수진은 서머스가 대학의 모금 중단 권고를 위반했다면 캠퍼스 접근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래리 서머스는 공적 활동에서 물러나면서도 하버드에서의 강의 의무는 계속 이행하겠다고 밝혔으나 , 학내에서는 그의 교수직 유지에 대한 논쟁이 첨예하게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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