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복지재단 구연경(47) 대표의 남편이자 LG그룹 맏사위인 윤관(50) 블루런벤처스(BRV) 대표가 대한민국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123억 원 규모의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 소송의 핵심 쟁점은 윤관 대표가 한국 세법상 전 세계 소득에 대해 납세 의무를 지는 '거주자'인지 여부다. 항소심 재판정에서 터져 나온 재판부의 날카로운 질문(단순히 체류 기간이나 국적이라는 외형적 기준을 넘어, 한 개인의 '생활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실질적으로 파고드는)은 국제 조세 분쟁의 새로운 법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인적 이해관계의 중심: '생활비'와 '학비' 사이의 모순
지난 12일 서울고법 행정1-1부(재판장 윤승은 부장판사 외) 심리로 열린 변론(2025누6340)에서 재판부는 윤관 대표 측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일관성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재판부가 던진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윤관 대표가 집에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자녀 학비는 왜 지급했는가?"
이 질문은 원고 측의 비거주자 주장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법리적 공격이었다. 윤 대표 측은 미국 국적자로서 과세 기간(2016년~2020년) 동안 법적 기준인 한국에 183일(1년 365일중 절반) 이상 거소(居所)를 두지 않았으며, 심지어 국내 가족에게 일반적인 생활비 지급을 중단해 경제적 관계를 단절하려 했다는 논리를 폈다. 이는 소득세법상 '거주자' 판단 요소 중 '국내에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과 '자산상태'를 약화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자녀 학비 지급'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지적하며 이 방어 논리의 모순을 정확히 꿰뚫었다. 자녀의 교육비 지원은 단순한 소비적 '생활비'와는 성격이 다르다. 학비는 자녀의 장기적인 삶의 기반과 미래를 국내에 두겠다는 의도, 즉 가족 부양 의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장기적인 이행 행위로 간주된다.
만약 윤관 대표가 진정으로 한국과의 생활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경제적 중심지를 해외로 이전하려 했다면, 국내 가족의 생활비는 물론 국내 교육 비용 지급 또한 중단하거나 해외 교육으로 전환했어야 논리적으로 일관됐다. 지속적인 학비 지급은 윤관 대표의 인적 이해관계의 중심이 한국 가족에게 확고히 남아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객관적 증거로 작용했다.
1심 판결의 두 가지 기준: 실질 과세 원칙의 확립
이번 항소심이 주목받는 이유는 1심(서울행정법원)에서 이미 국제 조세 분야의 중요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1심 법원은 윤관 대표가 과세 거주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때, 국내 세법과 한미조세조약의 두 가지 기준을 모두 활용해 판결의 견고성을 확보했다.
첫째, 소득세법상 '생활의 근거' 기준이다.
소득세법상 거주자는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의 거소를 둔 개인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주소'는 단순히 주민등록상 주소뿐만 아니라 '생활의 근거'가 되는 객관적 사실에 따라 판정된다. 법원은 윤관 대표가 2011년 12월부터 국내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고 봤으며, 국내에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과 자산의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비록 해외에서 직업을 가졌을지라도 생활의 근거는 국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둘째, 한미조세조약상 '이해관계의 중심지' 기준다. 미국 국적자인 윤관 대표가 양국에 항구적 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는 조세조약의 이중 거주자 판정 규칙(Tie-breaker Rule)이 적용된다. 이 규칙의 첫 번째 기준이 '인적 및 경제적 이해관계의 중심지'다. 1심 법원은 윤관 대표가 한국이 인적·경제적으로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해관계의 중심지라고 봤다. 인적 관계 측면에서는 배우자(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자녀들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윤관 대표가 LG가 상속재산 분할 소송 재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실 등이 인적 관계의 중심이 한국에 있음을 입증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경제적 관계 역시 국내 투자 회사인 블루런벤처스를 이끌고 국내 자산 관리를 활발히 펼쳤다는 점에서 한국에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1심은 단순한 체류 기간이나 국적이 아닌 '실질적인 생활과 경제활동의 중심지'를 기준으로 제시하며, 해외 국적을 이용한 조세 회피 시도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해석 기준을 확립했다.
법적 괴리: 증여세 비과세와 소득세 거주자 판단
원고 측은 자녀 학비 지원을 두고, 그것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상 피부양자의 생활비나 교육비로서 증여세 비과세 대상이라는 점을 들어 소득세법상 거주자 판단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증여세법과 소득세법의 법적 목적을 엄격히 분리한다. 상속증여세법이 재산 무상 이전에 대한 과세 목적을 갖는다면, 소득세법은 납세 의무자의 지위를 실질적으로 판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정 행위가 증여세법상 비과세라고 해서, 그 행위가 소득세법상 '국내 생활의 근거'를 유지하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법적 해석을 뒤집을 수는 없다.
지속적인 학비 지원은 윤관 대표가 국내 가족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객관적인 증거다. 이는 소득세법상 '거주자' 정의의 핵심 요소인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 및 '생활의 근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인적 이해관계의 중심을 판단하는 데 있어 그 어떤 요소보다 강력한 무게를 갖는다. 해외에 직업을 가지고 출국한 경우에도 국내에 가족이나 자산이 남아있어 생활의 근거가 국내에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거주자로 보는 것이 세무 당국과 법원의 일관된 해석 기조였다.
이 판결 뒤: 4,500억 원 규모의 잠재적 과세 위험
항소심 재판부가 원고 측 주장의 모순을 이토록 날카롭게 지적한 것은, 1심 판결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객관적 증거가 미흡하다고 판단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법조계는 윤관 대표의 1심 패소 판결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 판결은 단순히 현재 다투고 있는 2016년부터 2020년 귀속분 종합소득세 123억 원의 부과 처분 확정 문제를 넘어선다. 법원이 윤관 대표의 거주자 지위를 확정할 경우, 이는 후속 과세 기간에 대한 판단의 강력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윤관 대표가 이끄는 블루런벤처스는 2020년 이후에도 국내에서 활발한 투자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에코프로머티리얼즈에 930억 원을 투자했으며, 지난해 두 차례의 블록딜을 통해 약 4,5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시세차익을 실현했다. 거주자 지위가 최종 확정될 경우, 국세청은 이 4,500억 원 규모의 투자 수익을 포함하여 윤관 대표의 전 세계 소득에 대한 추가적인 과세를 진행할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현재 소송 금액을 크게 상회하는 초대형 조세 쟁송으로 확대될 수 있어 재계 및 국제 조세 시장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국제적 활동을 하는 고액 자산가들에게 중요한 경고음을 보낸 신호다. 비거주자 지위를 주장해 국내 납세 의무를 축소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해외 체류 일수를 맞추거나 형식적인 주거 단절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가족에 대한 교육비 지원과 같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재정적 지원 행위가 인적 이해관계의 중심을 한국에 유지하는 강력한 증거로 작용하며, 실질 과세 원칙에 따라 이 객관적인 생활 관계의 사실이 거주자 지위를 결정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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