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의 수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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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의 수집가들

엘르 2025-12-16 00:00:07 신고

모로코 청동상

모로코 청동상

김도훈

작가, 영화평론가, 맥시멀리스트.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낯선 사람〉,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 등을 썼다.


모로코는 꿈도 꾼 적 없었다. 나는 사대주의적 인간이다. 여행의 목적지는 언제나 유럽이었다. 나는 콘크리트를 디뎌야 안심이 된다. 영어가 통해야 안정감을 찾는다. 무엇보다 어딜 가든 물건을 사는 인간이다. 유럽 어디나 있는 벼룩시장에서 쓸모없는 예쁜 것들을 빳빳한 유로화로 사는 것이 여행의 낙이다. 그렇게 사들인 물건 중 에스닉하거나 트라이벌하거나 포크로어한 건 없다. 민속적이거나 토속적인 건 내 취향이 아니라는 소리다. 대충 스스로 모던 보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모로코에 갈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럼에도 친구가 “모로코에 갈래?” 했을 때 단숨에 “가자”고 했던 이유가 뭘까. 당시 나는 약간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몇 년간 여행도 가지 않았다.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은데 어디라도 가고는 싶었다. 덜 익숙한 곳이면 마음이 좀 나아질 것도 같았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 깨달았다. 덜 익숙한 정도가 아니었다. 낯선 곳이었다. 46℃. 나는 그런 온도가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다. 이 여행은 망했다. 일론 머스크만 믿고 화성으로 갈 첫 인간들도 나처럼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인간은 화성 따위에 갈 이유가 없다. 같은 이유로 나 같은 인간은 모로코에 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간사한 인간이다. 차를 타고 항구 도시 에사우이라로 가는 길에 지나치게 빨리 모로코가 좋아졌다. 사막 때문이다. 끝없는 사막이 거기에 있었다. 황홀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왜 이런 즐거움을 포기하고 그 놈의 유럽만 갔을까. 인간은 나이가 들면 모험과 멀어진다. 안정적으로 지루해진다. 모로코는 지루한 구석이라곤 올리브나무 아래 염소똥만큼도 없었다. 시내 구경을 간다고 하니 호텔 직원이 경고했다. “구시가는 복잡하고 사기꾼도 많으니 조심해.” 더 기뻤다. 40대가 된 이후로 위험하다는 경고를 듣는 곳은 가본 적도 없다. 10분 간격으로 마약상들이 “하시시 살래?”라며 접근했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마약상들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걷다 작은 가게에 도망치듯 들어갔다. 터번을 두른 영감이 에스닉하고 트라이벌하고 포크로어한 조각상을 늘어놓고 있었다. 뜨거운 모래바람을 너무 삼켜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던 민속 조각들이 꽤 근사하게 보였다. 고양잇과 동물 같은 조각상을 들어올리자 영감은 신이 났다. 억양이 강해 잘 모르겠지만 오래되고 귀한 거라는 소리 같았다. 그럴 리가. 영감은 낯선 동양인이 들어서자마자 ‘오늘 장사는 얘가 다 했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의 30만 원을 불렀다. 가격이 좀 있을 법한 물건이긴 했다. 산화된 흔적은 오래된 물건이라는 의미다. 다른 손님이 있었다. 프랑스인이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런 물건을 잘 아는 양반이다. 제대로 된 가게다. 나는 크기가 작은 다른 청동상 두 개를 더 골랐다. “이거 두 개까지 해서 30만 원에 주쇼.” 프랑스인이 ‘흥정할 줄 아는데?’라는 표정으로 봤다. 영감도 빠르게 납득했다. ‘역시 중국인들은 독해’라는 표정 같았다. 굳이 한국인이라는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낯선 물건을 사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다음 여행지를 결정했다. 이집트다. 나는 항상 피라미드가 보고 싶었다. 카이로 시내에는 뭔가 또 낯선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독하게 흥정할 준비도 끝났다.



멕시코 십자가

멕시코 십자가

하예진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YZA’ 대표.


새로운 물건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편이다. 언젠가부터 집 안 구석마다 무언가 쌓이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며 그 자체가 내 성향이 됐다. 나에게 수집은 계획적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웠다. 한 번 시선이 닿으면 그 사물은 이미 내 일상에 들어와 있었다. 그 무렵 친구 사이에서 멕시코 오브제가 화제가 됐다. 과장된 색채와 투박한 텍스처, 정교한 상징이 공존하는 그들의 수집품은 강한 자극이 됐다. 덕분에 내 취향의 지평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갔다. 쓸모를 따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그래서 오히려 더 갖고 싶은 것들. 나는 늘 그런 사물에 약했다. 멕시코 십자가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즐겨 찾는 빈티지 가구 숍에서 이 십자가를 발견했을 때 단번에 손에 쥘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건 내가 두 번째로 수집한 멕시코 십자가다. 누군가는 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서 그렇지 않냐고 묻지만, 신앙심은 이끌림의 전부가 아니었다. 특유의 색감과 텍스처,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감이 밀려온 순간 이유를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매력은 디테일에 있다. 중앙에는 성스러운 얼굴이 자리하고, 십자가의 팔과 기둥에는 태양, 달, 주사위, 손, 잔과 같은 기호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종교적 신앙과 민중의 일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심상들이다. 그래서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한 사회의 신념과 감각을 고스란히 압축한 기록물처럼 다가온다. 성스러움과 장인의 정성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더욱 매혹적이다. 컬렉팅을 하다 보면 특정 물건이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순간이 있다. 예전엔 가구가 그랬다면 최근엔 이 십자가다. 흥미로운 건 가구와 오브제의 차이다. 가구는 생활을 지탱하는 큰 구조물이지만 오브제는 작아도 공간 전체의 공기를 바꾼다. 손바닥만 한 이 십자가 하나로 내 사무실 풍경은 이전보다 단단해지고 균형감이 생겼다. 마치 일상의 무대에 또 다른 질서를 부여한 것 같다. 오래 볼수록 이 십자가는 종교적 상징을 넘어선다. 태양과 달은 삶의 순환을, 주사위는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손과 잔은 인간의 희망과 기도를 품고 있다. 보는 이마다 다를 테지만 내게 이 십자가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은유다.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여전히 시선을 붙잡고 오늘도 묵묵히 내 곁을 지킨다. 지금도 사무실 한 켠에 놓인 십자가는 수집이라는 여정을 이어가게 만드는 조용한 동력이다. 수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세계를 읽는 방식이다. 이 오브제는 그 방식이 얼마나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지 일깨워준다.



몬스터 오브제

몬스터 오브제

김민

홈 앤 아트 오브제, 레어 빈티지 의류를 소개하는 ‘발그보겔’ 대표.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 작은 숟가락이 멋진 비행기가 돼 입 속으로 날아오듯, 순수하고 자유로운 마음가짐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에 꿈꿨던 세계는 무성한 잡초 사이로 작은 요정들이 고개를 내밀고, 널브러진 택배 상자가 만드는 잔잔한 그림자 속에서 털북숭이 고래들이 빛났다. 이 아름답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어느샌가 잊고 살았다. 그러다 도시를 산책하다 뜻밖의 좋은 전시를 관람하거나, 한가로운 주말 벼룩시장에서 나이 지긋한 수집가가 늘어놓은 물건을 구경하다 종종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 파랗고 복슬복슬한 오브제는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아티스트 타쿠마 후지사키(Takuma Fujisaki)의 전시에서 발견했다. 가는 철사에 섬유를 꼬아 만든 모고(Mogol)를 이용해 작가가 한 올 한 올 엮은 생명체들이 저마다 개성을 뽐내며 덤덤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전시장에 서 있었다. 작품을 바라보며 깊은 숲속에 사는 정령들의 모임이 떠올랐다. 웅얼거리는 듯하면서도 근엄한 노래소리가 머릿속을 맴돌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결국 가장 거대한 덩치를 가진 푸른색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왔다갔다하며 자주 마주칠 수 있는, 볕이 좋은 자리를 그 친구에게 내줬다. 간혹 덤벙거리지만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오브제를 지나칠 때마다 찰나의 상상이 펼쳐졌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면 푸른 털 사이로 꽃이 한가득 피어나기도 하고, 울적하고 불안한 날이면 이불 속에 웅크린 나를 방이 가득 찰 만큼 거대한 몸으로 감싸주기도 하며, 무심하게 대하는 날은 온몸이 뾰쪽한 가시로 변해 있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소장품은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장식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정성 어린 손길과 그것을 거쳐간 다양한 이들의 흥미로운 상상이 흔적으로 남은 사물이라면 오브제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록 사물이지만 온기를 간직한 채, 위로와 용기를 주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동심을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물건이 된다. 오늘도 나는 추억이 깃든 이 물건을 바라보며 언젠가 운명처럼 마주칠 꿈의 조각을 기대한다. 현실 속에서 자유롭게 상상을 펼쳐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잊지 않으면서.



오리 집게

오리 집게

김재윤

한국적 헤리티지와 내러티브가 깃든 수공예품을 소개하는 ‘내러티브오브젝트’ 대표.


이 오리 집게를 처음 만난 건 남해에서다. 아직 가게를 준비하기 전이었고, 귀촌을 꿈꾸며 친구들과 함께 이곳저곳에서 한 달 살이를 하던 때였다. 근처에 남이세일 목수의 작업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골에서 작업자로 사는 삶이 궁금해 찾아갔다. 말수가 적고 야생의 기운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거친 동시에 수줍은 기색도 묻어났다. 그의 손길이 닿은 물건은 하나같이 어떤 기운을 지녔는데, 옷차림마저 독특했다. 티셔츠를 거꾸로 입어 어깨 솔기가 밖으로 드러나 있어 이유를 묻자, “여기선 남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어 내 몸이 편한 방식으로 입는다”고 했다. 남 목수는 매일 주변의 나무를 깎아 숟가락이나 주걱 같은 생활 도구를 만들었다. 그날도 본인이 직접 만든 작업용 벤치에 앉아 나무를 다듬고 있었고 우리가 찾아오자 드립 커피를 내려주었다. 손수 깎은 나무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릴 때 원두 봉투에 꽂혀 있던 것이 바로 이 집게다. 한눈에 봐도 잘 만든 물건이었다. 탄성이 있는 나무 덕분에 별도의 잠금장치가 필요 없고 가운데 구멍이 있어 부러질 걱정도 없었다. 손잡이 부분은 나무껍질이 그대로 남아 쉽게 때가 탈 염려가 적고 입구는 부리처럼 넓게 벌어져 다양한 두께의 물건을 손쉽게 집을 수 있었다. 귀엽지만 과하지 않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남부 지방에서 흔한 사스레피나무를 땔감이 아닌 목재로 쓰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나무 자체가 가볍고 가늘어 가구나 집의 재목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 목수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쓰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오리 집게가 나왔다고 했다. 그 말에 탄식과 함께 눈이 맑아졌다. 용도를 정하고 재료를 고르는 대신 나무를 보고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한 것이다. 단순하지만 올바르고, 아름다운 방향이었다.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며 방황하던 시기에 그 사물에 깃든 생각은 내 마음을 단단히 잡아줬다. 오리 집게는 우리 가게의 개업 아이템이 됐고, 이 독특한 물건은 예상 외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어째서일까? 남이세일 목수에 대한 내 특별한 기억을 일일이 공유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궁금증은 고객과의 대화에서 풀렸다. 오리 집게를 소장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귀촌을 꿈꾸거나 전원에 거주하거나, 자연을 가까이 두고 싶어 했다. 물건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각과 마음, 삶의 태도를 주고받는 매개체다. 손으로 만든 물건에는 그런 힘이 있다. 만든 이의 손길과 세계를 내 삶에 들이고 싶은 마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조금은 남다른 사물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마리아 향초

마리아 향초

하정호

전 세계 다양한 생활양식의 원류가 되는 사물을 소개하는 ‘아세티크’ 공동대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 어딘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아 잊히거나 외면받은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주목받지 못했던 것, 그러나 그 안에 묘한 아름다움이 숨은 것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아세티크를 준비했고, 그렇게 찾은 대상 중 하나가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 ‘100ml’의 향초다. 뉴욕 여행 중 우연히 들어간 빈티지 가구 매장 한 켠. 나무 선반 위에서 짙은 푸른빛의 성모 마리아 초가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왁스 표면이 부드럽게 흐르며 눈물을 흘리듯 변해가는 모습이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인에게 초에 대해 묻자, 판매용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가 만든 브랜드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결국 그가 알려준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고,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향초를 구입했다. 브랜드 ‘100ml’는 향초를 시작으로 코스메틱 브랜드로 확장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잠정 중단되면서 이 향초는 의도치 않게 그 브랜드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됐다. 알고 보니 애당초 판매용이 아닌, 브랜드 오너가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소량으로 만든 것이었다. 한국에 들여온 20개가 모두 판매되고, 지금은 내 곁에 남은 피스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이 향초는 단순 제품이 아니라 인연처럼 느껴진다. ‘왜 우리는 독특한 것에 끌리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먼저 ‘무엇이 내게 독특한가?’를 떠올린다. 그 답은 늘 개인의 경험과 무의식, 기억의 결과 닿아 있다. 나에게 이 향초가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기억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무신론자였던 나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막내 고모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고모는 매일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고, 잠들기 전에는 서랍 위의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성모 마리아상은 내게 종교적 상징을 넘어 설명할 수 없는 위안과 평화를 준다. 그 기억의 잔향이 이 향초에서 되살아났다. 성모 마리아의 형태를 한 왁스가 천천히 녹아내릴 때마다 불빛 속에서 오래된 기억이나 감각과 마주한다. 어쩌면 독특함이란 새로움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다시 느끼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이 향초를 볼 때마다 내 오랜 시절의 한 조각이 내 안에서 다시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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