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도 총지출 728.0조 원 예산안 심의에서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전년 대비 20.4조 원 증가하며 가장 큰 폭의 증액을 기록했다. 이는 민생 회복과 사회 안정망 강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듯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2026년도 최종 예산은 137조 4,949억 원으로, 전년 대비 9.6% 증가한 역대급 규모였다.
그러나 이 거대한 복지 예산의 증가세 속에서도 예산안의 구조적 허점, 즉 법정 의무 비율이 지켜지지 않아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적 안전망인 '건강보험 국고지원 및 의료 복지 지출' 항목에 해당하며, 특히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이 항목에 대한 '국가 책임' 논쟁이 뜨거웠다.
14%의 역설: 지켜지지 않는 법정 지원
국민건강보험법은 국가가 건강보험 예상 수입액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국민 건강에 대한 국가 책임을 법으로 규정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러나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도 예산안은 이 법정 지원율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2026년 건강보험 예상 수입액(89조 5,875억 원)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법정 지원 기준 14%는 12조 원이 넘는 금액이지만, 실제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에는 10조 7,820억 원 규모가 편성되었으며, 이는 예상 수입액의 약 12% 수준에 불과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법률에서 지원율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취지를 존중해 상응하는 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은 건강보험료율을 동결로 계산해 국고 지원을 결정했기 때문에, 이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0.1%의 보험료율 인상이 결정되었음에도 예산안에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예산정책처는 국회 심사 과정에서 실제 2026년도 건강보험료율을 반영하여 정부 일반회계 지원 예산액을 더욱 정밀하게 산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누적된 미지급금 30조 원, 국가 책임 방기 논란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이 지켜지지 않는 법정 지원율이 단순히 당해 연도 예산의 문제를 넘어, 누적된 국가 책임 방기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건강세상네트워크(건세네) 등 시민사회 단체는 "정부가 국민 건강에 대한 국가 책임을 또다시 방기하려 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건세네 측은 역대 정부가 건강보험 예상 수입을 의도적으로 축소 계산하는 편법으로 법정 지원율을 지키지 않아, 그 결과 누적된 미지급금이 30조 원을 훌쩍 넘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 정부 역시 이러한 과오를 반복, 국고 지원 확대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국회와 정부에 누적된 국고 지원 미지급금 30조 원을 즉각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건강보험 국고 지원 일몰 조항을 즉각 폐지하고 당해 연도 총수입 기준 지원 비율을 명시하는 항구적인 법제화를 요구했다.
국회 심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 압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의 수년 내 고갈이 경고되고 있음에도 정부가 재정 건전성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국가 책임 확대를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은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의 고통을 전가하고 의료 보장성을 축소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법정 지원 미준수와 누적된 미지급금 논란은 728조 원 규모의 예산이 외형적으로는 확장적일지라도, 가장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 분야에서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728조 원 메가 예산안이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보건·복지·고용 분야에서 9.6%의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가장 중요한 항목인 건강보험 재정 지원에서는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은 재정 총량의 허와 실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정부와 국회는 국가채무 비율 51.6%에 달하는 재정 건전성 우려 속에서 확장적 재정을 운용하고 있지만, 국민 건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 책임마저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026년 예산안이 진정한 '모두의 성장, 기본이 튼튼한 사회' 를 목표로 한다면, 법정 지원율 준수와 누적 미지급금 해결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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