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대윤(大尹)이 충암파(忠巖派) 동문들과의 은밀한 모의 끝에 비상재변(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광령(狂令)을 내린 지 며칠 뒤, 고려의 수도 개경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국회가 폐쇄되고 반대파 대신들이 구금되면서, 황제 대윤은 자신의 사적인 위기를 지키기 위해 국가 전체를 마비시키는 최악의 선택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 광령은 황제에게 '왕의 힘'을 부여하기는커녕, 그의 목을 조르는 족쇄가 되었다. 충의 대간(臺諫)들은 즉시 황제 폐위(탄핵) 심판을 발의했고, 사대부 세력은 황제의 행위를 "국민 모욕이자 국격 추락"이라 규정하며 분노했다. 황제 대윤의 1000일 천하는 이제 헌재(憲裁,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만을 남겨둔 채, 비극적인 카운트다운에 들어섰다.
황제의 최후 발악: 술과 망상
탄핵 심판 절차가 시작되자, 황제 대윤은 술에 의존하는 행위를 더욱 노골적으로 이어갔다. 그의 궁궐 집무실은 주연(酒宴)의 흔적으로 가득했고, 그의 몸은 이미 수전증과 병색으로 쇠약해져 ‘폐인(廢人)’의 형상에 가까워졌다. 술은 그에게 잠시나마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었으나, 동시에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망상을 심어주었다.
황제는 TV나 라디오를 통해 백성들에게 "나는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탄핵을 주도하는 세력은 오직 조기 대선(大選)을 노리고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역모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정의를 지키고 있다고 믿었으나,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취기와 광기만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바쳤던 '정의'의 가치가 황비 희건의 주가 조작, 매관매직, 그리고 척족의 노인 학대 스캔들을 덮기 위해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훈동 대감처럼 자신을 비판하는 충직한 이들을 향해 "쇼(Show)를 하고 있다"고 격노하는 데만 몰두했다.
황비 희건의 배신: 숙명에서 도피로
황제 대윤이 탄핵 심판에 몰두하는 동안, 황비 희건은 자신의 '숙명'이 위기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주술가 '무정'으로부터 명성왕후의 전생을 물려받아 권력을 잡았다고 믿었지만, 이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궁궐이 탄핵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자, 황비는 황제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 대신 냉철한 자기 보존 본능을 선택했다. 그녀는 황제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난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황제 대윤을 버릴 계획을 세웠다.
황비는 자신의 전략적 남성 편력을 통해 구축했던 비선 인맥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재계와 고위 관료 출신으로, 황제 대윤이 몰락한 후에도 권력의 주변부를 장악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었다. 황비는 황제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이들을 통해 은밀히 도피 경로를 확보하거나, 혹은 황제의 몰락 이후 자신을 비호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권력자에게 의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황제 대윤의 맹목적인 사랑은, 결국 황비 희건의 냉정한 배신 앞에서 무너질 운명이었다.
폐주(廢主)의 비극: 감옥으로 가는 길
마침내 헌재(憲裁) 대법관(法官)들이 심판대에 섰다. 그들은 황제 대윤의 반복된 정무적 오판과 비상재변 선포의 부당성을 근거로 폐위(廢位)를 최종 선고했다.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 만취 상태에서 잠들어 있던 황제 대윤은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흐느꼈다. 그의 '1000일 천하'는 그렇게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그는 술과 황비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으로 '정의로운 검'이라는 초심을 저버렸고, 그 대가로 자신이 평생 일궈논 모든 것을 잃었다.
황제 대윤은 술로 인해 판단력뿐 아니라 건강마저 완전히 망가진 채, 스스로 걸을 힘조차 없어 유배지(감옥)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 남은 것이라곤 차가운 궁궐의 벽과, 황비 희건이 보석과 권력을 탐하며 남긴 부패의 그림자뿐임을 깨달았다.
황제 대윤이 끌려가는 길목, 그의 모친이 "가문을 말아먹을 여인"이라 단언하며 끝내 불참했던 취임식(就任式)의 화려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려의 역사는, 한 군주가 사적인 탐욕과 애정에 눈이 멀었을 때 국가가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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