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생중계' 정부부처 업무보고가 2주차에 접어든다.
지난 두 차례의 생중계 업무보고는 국민들이 국정운영 방향을 가감없이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특정 기관장에 대한 질타나 지나치게 구체적인 내용까지 여과없이 모두 생중계가 되면서 다소 논란이 일고 있다.
당장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을 의도적으로 면박을 주고 있다며 '갑질' 비판을 내놓고 있다. 또한, 업무보고 과정에서 외화밀반출 방식이 알려진 점이나 '위서'로 평가받는 환단고기를 역사로 다뤄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온 것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실은 필요한 부분은 보완하되 현재의 생중계 기조는 앞으로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李 대통령, 16일부터 부처별 업무보고 2주차 돌입…남은 일정도 생중계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16일부터 부처별 업무보고 2주차 일정을 이어간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16일을 시작으로 복지·문화·산업·안보·외교 등 주요 국정 분야 전반을 점검한다.
16일에는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다.
17일엔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지식재산청과 함께 기후에너지부·기상청, 원자력안전위원회, 행정안전부 소속 경찰청·소방청, 인사혁신처의 보고도 예정돼 있다.
이 대통령은 18일에는 국방부와 병무청, 방위사업청, 국가보훈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관련 정책 전반을 살필 예정이다.
19일에는 외교부와 재외동포청, 통일부,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와 검찰청, 성평등부가 차례로 업무보고에 나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부터 19부·5처·18청·7위원회를 포함한 228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등의 보고가 진행됐다.
남은 부처 업무보고 역시 실시간 생중계 방식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외화밀반출 방식 공개부터 환단고기까지…연일 논란
이번 업무보고가 전국인에 생중계되면서 관료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공직사회 기강을 잡는다는 긍정 평가가 나오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즉흥 질문과 논쟁적 사안에 대한 언급이 증폭되면서 연일 논란도 일고 있다.
먼저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대상으로 "수만 달러를 100달러짜리로 책갈피처럼 책에 끼워서 나가면 안 걸린다는데 실제 가능하냐"는 물었지만 명확한 답을 듣지 못하자 "참 말이 길다""나보다 업무를 더 모른다"며 공개 질책했다.
이 사장은 전임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다. 이에 이 대통령이 전임 정부 임명 인사를 의도적으로 질책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외화밀반출 방식이 대중에 공개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후 이 사장도 14일 SNS에 "걱정스러운 건 이 일로 온 세상에 '책갈피에 달러를 숨기면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또한 '환단고기' 논란도 불거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 관련해서, 무슨 '환빠' 논쟁 있죠?"라고 물었다. 박 이사장이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그 있잖아요,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고대 역사 부분에 대한 연구를 놓고 지금 다툼이 벌어지는 거잖아요"라며 "동북아 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 이사장은 "대통령님 말씀은 소위 재야 사학자들이라고 하는 그분들 얘기인 것 같은데, 그분들보다는 전문 연구자들의 이론이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전문 연구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환단고기는 단군 고조선 시대의 상고사(上古史)를 다룬 책으로 1911년 계연수라는 인물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한민족이 한반도를 넘어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했다는 주장을 담은 역사서로 전해졌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인용 문헌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들어 환단고기를 위서로 보고 있다.
이에 이 대통령의 발언이 '환단고기도 고대 역사 연구 자료'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실 "업무보고 생중계, 국정운영 청사진 보여드리는 것"
이처럼 업무보고 후 이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14일 해명에 나섰다.
대통령실 김남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업무보고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이번 업무보고는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이 된 시점에서 내각의 속도감 있는 정책 이행을 위해 마련됐다"며 "국민주권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을 국민께 직접 보여드리기 위해 역대 최초로 생중계됐다"고 밝혔다.
이어 김 대변인은 이번 업무보고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책임지는 행정 △공정한 국정운영 △관료 편의주의 타파 △지역 균형 발전과 양극화 해소 △공직자에 대한 신뢰 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전체 생중계로 인해 불거지고 있는 각종 논란에 대해서는 "야당 출신(인사)이어서 고압적이거나 공세적인 자세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있으신 것 같은데, 야당이 그렇게 바라보니까 그렇게만 보이는 것 같다"며 "정상적인 정부 부처 혹은 소속 기관 사이의 질의응답 과정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국방이라든지 외교 관련된 사안들은 분명히 보안이 필요한 내용들도 있을 것"이라며 "공개할 부분은 공개를 하고 보안이 필요한 사항들을 논의할 때는 이제 비공개로 전환해서 하게 되는 경우들도 차후에 부처에 따라서는 업무보고 때 그런 방식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에 대해서는 "국가의 역사관을 수립해야 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은 그 역할을 다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질문이었다"며 "그 주장에 동의하거나 그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를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볼지가 중요하고, 그 가운데 입장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결론이었다"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인지하는지, 역사관을 어떻게 수립할 것이냐의 질문 과정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환단고기의 역사관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역사관이 필요한 지점과 관련해 엄밀한 논리가 세워져 있는지를 물어봤던 것이라는 취지다.
이른바 '책갈피 달러 밀반입' 수법이 알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엔 "이런 수법이 있다는 것을 공개하고, 이를 막겠다는 담당 기관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기에 오히려 예방 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與 "신선한 충격" "알박기, 낙하산 공공기관 민낯 드러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이 대통령 엄호에 나섰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알박기와 낙하산으로 얼룩진 일부 공공기관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대통령의 공개 질타는 더 이상 무능과 안일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경고"라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2026년도 부처 업무보고를 전 국민께 생중계로 공개하고 있는데, 이는 윤석열식 밀실 국정을 단호히 벗어나 국정 전 과정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분명한 결단과 의지"라며 "맡겨진 권한을 오롯이 공적으로 사용하고 그 결과에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무보고 방식과 내용 모두 이전과 달랐다. 대통령이 직접 묻고 부처와 공공기관이 즉각 답하는 방식으로 그 과정 자체가 책임행정의 출발선"이라며 "추상적인 말잔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성과를 분명히 요구한 자리였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국민께 보고된 계획과 대통령의 지시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 꼼꼼히 점검하겠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잘못된 지점은 과감히 바로잡겠다"며 "정부의 계획이 예산과 입법으로 완성되도록 책임있게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황명선 최고위원도 "단순히 형식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지평의 전 과정을 국민 앞에 공개하고 책임지겠다는 선택"이라며 "문답과 토론 중심의 업무보고는 국민 여러분께는 신선한 충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힘 "보여주기식 소통" 오세훈 "李, 골목대장 마냥 호통"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일하는 기분을 내기 위한 쇼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기본부터 다시 챙겨보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송 원내대표는 "무엇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모욕을 주는 모습에서 대통령의 품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정책 점검이 아니라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게 '더 이상 버티지 말고 나가라'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임 정부 시절 임명된 산하 기관장들을 향해 골목대장 마냥 호통치고, 모멸감을 주는 모습으로 변질된 업무보고를 보며 많은 국민들이 깊은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대통령의 질타가 향했어야 할 곳은 10·15 대책 이후 더욱 혼란스러워진 부동산 시장과 그 부작용을 외면하고 있는 정책의 책임자들이어야 했다"면서 "과도한 규제로 전월세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내 집 마련 한번 해보겠다는 실수요자들은 대출 규제에 막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의 무게는 말의 크기에 있지 않다. 문제를 정확히 짚고, 얼마나 책임 있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 재건축의 속도를 앞당기는 일이야 말로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가시적인 성과가 손에 잡히기 시작하면 시장이 반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석 "李 업무보고, 팥쥐엄마도 울고 갈 갑질"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비판에 동참했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벌인 촌극을 보며 기시감이 들었다. 바로 팥쥐엄마의 모습이었다"며 "팥쥐엄마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강요했던 것처럼,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본인 업무 범위도 아닌 것을 물어보고 제대로 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낙인찍어 괴롭히는 모습은 팥쥐엄마도 울고 갈 갑질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재혼가정에서 많은 부모가 의붓자식을 마음으로 키우지만, 그렇지 못한 일부의 행태를 꼬집고 아이들에게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보여주고자 우리는 콩쥐팥쥐를 들려준다"며 "이번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어렸을 때 절대 그렇게 살지 말라고 배웠던 팥쥐엄마의 모습 그 자체였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민간기업에서도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잡도리하려고 자신의 업무 범위도 아닌 내용을 마구 물어보고 모른다고 타박하면 바로 언론에 제보되고 커뮤니티에서 이슈화된다"며 "역설적이게도, 그랬다면 이 대통령께서 가장 먼저 숟가락을 얹으며 질타하셨을 거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직접 하시면서 생중계로 국민에게 자랑하셨으니, 옳고 그름조차 분간하지 못하시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지금 대통령께서 기관장들에게 보여주시는 기괴한 자신감은 더 많이 알고 더 자세히 알아서 생기는 게 아니다. 시험 문제를 범위 밖에서 내고도 욕먹지 않는 특수한 위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농림부 장관에게 '일본인인 척하고 바나나를 수입해오면 안 되냐'고 묻던 때부터 시작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대통령에게 충언하고자 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은유적으로 전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며 "주지스님은 조폭과 자신의 제자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시합을 할 때, 자신의 제자들을 섭섭하게 하면서까지 조폭을 부처님의 길로 인도하려 했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기원한다"며 "이 사장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표할 용기가 있다면, 대통령께서는 팥쥐엄마가 아니라 '달마야 놀자'의 주지스님의 길을 가시는 것. 개혁신당은 그 행보를 응원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직장 내 갑질 같은 업무 보고, 민망·유치"
한겨레 "호통치는 대통령 면모만 부각"
언론들도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공개된 자리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질책할 때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며 "일반 직장에서도 상급자가 모욕적 말로 꾸짖으면 '갑질'로 징계 대상이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일선 기관장을 생방송에서 면박하는 모습은 국민 보기에 민망하다"며 "만약 앞 정부 인사를 내쫓으려는 의도가 있다면 유치한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생중계 업무보고가 공직자 추궁 과정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매체는 "이 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를 생중계하며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것 자체는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정말 국민이 알아야 할 정책 콘텐트에 집중돼야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다"며 "대통령의 질문이 불필요한 갈등과 논란을 부르는 정치적 추궁이 돼선 곤란하다"고 했다.
아울러 "특히 전임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에 대한 과한 힐난은 조기 퇴진하라는 압박으로 비쳐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정부 업무 보고는 국정의 투명성과 동력을 높이고, 대통령과 일선 부처 간에 갈등이 아니라 소통을 증진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 역시 "이 대통령은 장관 등을 향해 구체적 정책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송곳 질문을 던졌고 직설적인 질타도 서슴지 않았다"며 "다만 '만기친람하는 대통령', '호통치는 대통령'의 면모만 부각되면서 오히려 대통령 눈치 보느라 관료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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