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내림 칼럼] 늦깎이 만화학원 수강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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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내림 칼럼] 늦깎이 만화학원 수강생이 되다

문화매거진 2025-12-15 17:47: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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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 앞에 놓이다 / 사진: 벼내림 제공
▲ 백지 앞에 놓이다 / 사진: 벼내림 제공


[문화매거진=벼내림 작가] 3년 10개월의 근무를 끝으로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다. 일을 병행하며 결혼, 이사, 장례라는 굵직한 사건들을 겪고 나니 정말로 휴식이 필요했다. 무언가 그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에너지가 없어 방전된 상태였다고 할까. 거의 1년 동안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답답했다. 정체성이 무너진 것 같았으니까. 

원래 일을 그만두고 한 달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그만두면 뭐 할 거야?”라고 건넨 말에 나도 모르게 바로 “만화학원 다녀야지”라는 대답이 나왔다. 무의식 속에는 쉬더라도 더 늦기 전에 다시 연필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하필 만화학원이었던 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미지 보드와 상황 표현과 컷 만화를 배워보고 싶어서다. (내게는 만화와 영화가 종합예술처럼 느껴져 꼭 배워보고 싶은 분야다.)

퇴사 일주일 전 즈음에 상담을 받으러 다녀왔다. 메모장에 이것저것 적어 갔다. ‘좋아하는 만화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스크린톤 사용법도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아쉽게도 스크린톤은 사용하지 않지만, 기초부터 그려나가면 세 달 후부터는 컷 만화를 그려볼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정말 무지하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등록하자마자 컷 만화를 그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입시 미술을 거치긴 했지만 제대로 그림을 그린 지도 오래되었고, 기초를 생략하면 토대가 탄탄하지 못할 것 같아 기초부터 다지는 모든 커리큘럼을 따르겠다고 했다. 

서른을 앞두고 다시 학원에 들어가려고 하니 선생님들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그런 부분들이 괜찮냐 물어보셔서 “전 만학도가 꿈이어서 괜찮습니다. 똑같이 대해주세요!”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수능장에서 최고령 응시생으로 찍힌 사진을 보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죽기 전까지 많이 배우고 싶다. 그러니 지금도 그때도 늦은 건 없는 거다. 

12월 2일부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주 2회 4시간 수업이다. 10년 전 입시 미술학원을 다닐 때와 같은 시간이어서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만화학원이지만 처음에 소묘하는 점이 신기했고, 발가벗겨진 기분도 들었다. 기초 형태가 틀리면 ‘이것도 못 하는데 어떻게 대학에 들어간 거지’라 생각할 것 같아 괜히 전전긍긍했다.

▲ 명도, 기본도형, 이목구비 드로잉 / 사진: 벼내림 제공


명도 10단계를 그리고, 기본 도형을 그려보고, 이목구비를 따로 분리해서도 그려보았다. 영화 속 인물을 많이 그려봐서 비교적 눈은 쉬웠다. 코와 귀가 제일 어려웠고, 입술과 치아도 그리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손이 빠른 편이라고 칭찬을 들어 진도를 빨리 빼고 있다. 내일도 학원에 가는데 이제 두개골 구조 파악을 위해 해골을 그릴 차례다. 본격적으로 어려운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으악! 벌써 머리가 아프지만 동시에 즐겁기도 하다. 배움의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임해야지. 

▲ 뾰족한 연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 사진: 벼내림 제공
▲ 뾰족한 연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 사진: 벼내림 제공


오랜만에 칼로 연필도 깎아보고 제대로 마음을 다잡는 시간도 가졌다. 학원에 있는 연필깎이를 사용해도 되지만 처음엔 소묘를 하기도 했고, 준비가 갖춰진 상태로 가고 싶었다. 진솔한 이 마음 그대로 컷 만화까지 달려보자. 늦깎이 수강생? ‘오히려 좋아’ 모드 장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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