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닭고기 시장의 강자 하림이 '테크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선언했다. 단순히 닭을 키워 파는 1차원적 비즈니스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팜 솔루션을 통해 산업 전체의 판을 흔들겠다는 전략이다.
종합식품기업 ㈜하림은 15일 전북 익산 본사에서 AI 기술 스타트업 ㈜유니아이와 '스마트팜 플랫폼 공동개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현장에는 정호석 하림 대표와 백승환 유니아이 대표를 비롯해 KAIST 김만기 교수 등 양사 관계자 및 자문단 20여 명이 자리해 머리를 맞댔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약을 두고 '디지털 전환(DX)'을 넘어선 '인공지능 전환(AX)'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축산업계의 스마트팜 논의가 단순히 온·습도 조절이나 CCTV 모니터링 수준의 자동화에 그쳤다면, 이번 하림의 행보는 AI가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단계로 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양사가 개발하기로 한 플랫폼은 크게 두 가지다. ▲농장의 생산성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농장 운영 관리 플랫폼'과 ▲현장 인력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농장 지원 운영 플랫폼'이다.
핵심은 역할 분담에 있다. 하림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사양관리 노하우와 실제 농장 데이터를 유니아이에 제공한다. AI 학습에 필수적인 '양질의 데이터'를 하림이 공급하는 셈이다. 유니아이는 이를 바탕으로 AI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로보틱스와 IoT 센서 기술을 현장에 심는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팜 스타트업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실제 농장의 방대하고 정제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하림이라는 확실한 테스트베드와 데이터 공급처를 확보한 유니아이와, 기술 파트너를 얻은 하림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사례"라고 분석했다.
하림이 그리는 큰 그림은 내수 시장 방어에 그치지 않는다. 정호석 대표는 이날 협약식에서 "단순 기술 협력을 넘어 K-양계가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전략적 출발점"이라고 규정했다. 닭고기라는 '물성 제품'뿐만 아니라, 양계 시스템과 운영 노하우라는 '솔루션' 자체를 수출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양사는 개발된 플랫폼을 국내 농장에 우선 적용해 실증 데이터를 쌓은 뒤, 이를 표준화해 해외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KAIST 김만기 교수가 자문단으로 참여해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보태기로 한 점도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백승환 유니아이 대표 역시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기술 구현에 집중하겠다"며 "한국 양계 산업의 새로운 기술 표준을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간 수많은 애그테크(AgTech) 기업들이 스마트팜 솔루션을 내놓았지만, 높은 도입 비용과 현장 인력의 숙련도 문제로 정착에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하림과 유니아이의 합작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첨단 기술의 나열'이 아닌, 농가 소득 증대와 직결되는 확실한 생산성 지표를 증명해야 한다.
하림 측은 개발된 시스템의 시범 농장 테스트와 검증을 전폭 지원하며 시행착오를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양사는 즉각 플랫폼 구조 설계에 착수하며, 실증 테스트를 거쳐 순차적으로 농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국내 대표 식품기업과 유망 스타트업의 만남이 정체된 축산업계에 실질적인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익산으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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