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더봄] 피해 갈 수 없는 확률, 3명 중 1명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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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더봄] 피해 갈 수 없는 확률, 3명 중 1명에 걸렸다

여성경제신문 2025-12-15 13:00:00 신고

손주를 키운 지 만 3년이 되어갈 무렵 건강검진을 받았다. 2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았었는데 코로나가 한창 창궐할 때라 1년을 미루다 3년 만에 받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웬만해선 병원을 안 드나들던 때라 검진을 위해 몇 시간 병원에 있기가 꺼려졌다.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수치가 나빠지고 물혹에다 폴립에 혹부리 영감처럼 몸속에 무언가 주렁주렁 자라지만 별 지병도 없었고, 먹는 약도 없어서 그만하면 건강한 몸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검진받는 날,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가끔 대기실에서 남편도 마주치며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어”

돌아다니다 유방초음파 방 차례가 되었다. 이리저리 보시던 선생님이 왠지 멈추지를 않고 유독 한 곳을 누르고, 찌르고, 밀면서 사진을 찍으신다.

“물혹 있다는 얘기는 들으셨지요? 조직검사를 한번 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조직검사는 지금 하나요?”

“아니요, 큰 병원 가서 하시는 겁니다.”

집에 돌아와 딸아이에게 ‘뭔 조직검사를 하라네?’ 했더니 딸아이가 부리나케 핸드폰을 집어 든다.

일주일 후, 큰 병원에서 마주한 의사 선생님은 화면을 보자마자 일언지하에

“이건 유방암입니다.”

단호하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진단이었다.

60여 년을 살며 대부분의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고 ‘추후를 지켜보자’였는데···.

암 진단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은 ‘왜 내가?’라고 생각한다지만 나는 ‘왜 하필 지금?’ 이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어떡하면 좋을까···

마침 둘째 애가 방학이라 손주를 맡겨놓고 수술 날짜를 잡으며 암 치료를 시작했다. 가족력은커녕 발병 요인이 하나도 없어 보여 ‘웬 암이지?’ 싶었지만 의사인 딸아이는 ‘운이 없으면 암’이란다.

할미가 아팠던 것도 모르는 서슬 퍼런 손주 /이수미
할미가 아팠던 것도 모르는 서슬 퍼런 손주 /이수미

입원, 검사, 수술, 퇴원, 통원··· 그렇게 춥고 스산한 겨울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좋은 운이 있어 항암치료는 면할 수 있었고 20여 번의 방사선 치료까지 마쳤다.

치료실은 지하 1층이었는데 첫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수많은, 지친 눈동자들과 마주쳤다. 웃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씩씩하게 걷는 사람도 없이 모두 그 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너무 힘들어하면 딸아이가 손주 보기를 그만하라 할까 봐 솔직히 내색도 못 했다. 어렵게 시작한 일이니 내 손으로 끝까지 키워내고 싶은 욕심에 치료받으면서도 등·하원 라이딩을 멈추지 않았다.

방사선 치료실의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자는 것은 아니다. 보고 싶은 것도 없겠지만 눈을 뜨고 있는 것에도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도 그때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치료를 마치고 지금은 약을 먹으며 6개월에 한 번씩 검진만 한다. 재발과 전이의 걱정은 있지만 그 또한 운이고, 병에 사로잡혀 전전긍긍 사는 것보다는 모른 체 사는 것이 맞는 태도이지 싶다.

발병 후 손주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더 애틋해졌다. 손을 잡아도 감촉이 남다르고, 가슴에 안으면 정수리 냄새까지 향기롭다.

모든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다. 원인을 추적해서 따져본들, 이런저런 가정을 하며 울고 웃은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걸어가던 길을 계속 갈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손주를 못 보게 되는 날까지 한 점 후회가 없도록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같이 눈에 담으며 살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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