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조류라고 하면 흔히 펭귄이나 타조를 떠올린다. 하지만 앵무새 중에도 비행 능력이 없는 종이 존재한다. 바로 뉴질랜드의 토종 새 ‘카카포’다.
올빼미를 닮은 얼굴에 비대한 몸집을 가졌으며, 천적을 만나면 도망가는 대신 제자리에 멈춰버리는 독특한 방어 본능을 지녔다. 한때 멸종 직전까지 몰렸으나 집중적인 보호 관리로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는 카카포는, 전 세계 앵무새 중 가장 무겁고 유일하게 날지 못하는 희귀 조류다.
비행 능력 잃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앵무새
카카포는 현존하는 앵무새 가운데 가장 무겁다. 다 자란 수컷의 몸무게는 3~4kg에 이른다. 이는 먹이가 풍부하고 지상에 위협적인 포식자가 없는 뉴질랜드의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비행에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 날개 근육은 퇴화했고, 대신 몸집을 키워 지방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가슴뼈에 비행 근육이 붙을 공간이 거의 없는 것도 비행 불가의 원인이다.
나는 능력은 없지만 튼튼한 다리 근육을 이용해 숲속을 걸어 다닌다. 하루에 수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으며, 나무 위에 있는 열매를 먹을 때는 부리와 발톱을 이용해 등산하듯 기어오른다. 내려올 때는 날개를 펴서 활강을 시도하지만, 양력을 받지 못해 그대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다치기도 하지만, 지방층이 두터워 충격을 흡수한다. 수명은 평균 60년, 길게는 90년까지 사는 장수 조류다.
달콤한 꽃향기가 '생존의 적'으로
카카포는 야생 동물에게서 흔히 나는 비린내나 노린내가 나지 않는다. 대신 잘 익은 과일 향이나 꽃향기, 혹은 꿀 냄새와 유사한 달콤한 체취를 풍긴다. 이 향기는 시력이 좋지 않은 카카포끼리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짝을 찾는 화학적 신호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향기가 외부에서 유입된 포식자들에게 위치를 노출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 점이다. 과거 뉴질랜드에는 포유류 포식자가 없었으나, 인간의 이주와 함께 쥐, 족제비, 고양이 등 외래종이 유입됐다. 후각이 발달한 이들 포식자는 카카포의 냄새를 맡고 손쉽게 사냥에 나섰다. 위협을 느끼면 제자리에 멈춰 주변 이끼 색과 비슷하게 위장하는 카카포의 방어 방식은, 시각보다 후각에 의존하는 포유류 천적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뉴질랜드 정부가 보호 관리 중
과거 뉴질랜드 전역에 서식했던 카카포는 무분별한 사냥과 외래종의 침입으로 1990년대에는 50여 마리까지 줄어들어 절멸 위기에 처했다. 이에 뉴질랜드 정부는 남은 카카포를 천적이 없는 무인도로 옮기고 집중적인 보호 관리에 돌입했다.
현재 생존해 있는 250여 마리의 카카포는 일반적인 야생 동물과 관리 수준이 다르다. 연구진은 모든 개체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다리에 식별 띠와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했다. 이를 통해 24시간 활동 반경과 신체 상태, 번식 여부를 감시한다.
번식 조건이 까다로운 점도 개체 수 회복을 더디게 만든다. 카카포는 뉴질랜드 자생종인 '리무' 나무의 열매가 많이 열리는 해에만 짝짓기한다. 이 주기는 보통 2~4년에 한 번 돌아온다. 연구진은 인공 수정과 영양식 공급 등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개체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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