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턴 창(Overton window)은 특정 시기에 대다수 국민이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의 범위를 설명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지금 어떤 정책이, 주류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혹은 그때는 그 정책이, 왜 주류 대중에게 외면 받았는가를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오버턴 창은 정치학자 조셉 오버턴이 1990년대에 고안한 개념이다. 원래는 '정치적 가능성의 창'이라 불렸지만, 이후 그의 이름을 따 '오버턴 창'으로 불린다. 다음 그림을 보면 이 창을 이해하기 쉽다. '정책 실현'이 창에 붙은 계기판의 바늘이라면, 스펙트럼의 왼쪽, 오른쪽 방향으로 각각 5개의 상태가 존재한다. 네모난 창이 있고 그 안에 스펙트럼이 있는 계기판을 생각하면 된다.
왼쪽으로 보면, 맨끝에 '상상할 수 없는'부터 시작해 '급진적인', '수용 가능한', '합리적인', '인기 있는'의 단계가 있고, 중간 지점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인기 있는', '합리적인', '수용 가능한', '급진적인', '상상할 수 없는'이 이어진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창'의 위치다. '창'만이 유동적으로 움직인다. 계기판 중심(정책 실현)의 좌우로 창이 움직이면서 어떤 정책이나 정치인의 스탠스는 '수용 가능한' 범주 안에 들기도 하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오늘 떠올린 이 생각이 시대나 특정 환경(창의 움직임)에 따라 받아들여질 수도, 그렇지 못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사상이나 아이디어가 창 안으로 들어오면 유의미한 정책적, 정치적 토론이 시작될 수 있지만, 창 밖은 주류 대중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디어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예를 들면, 여기 동성애와 관련한 이슈가 있다. 미국의 인종 차별 이슈를 대입해도 좋다. 아마 1900년대부터 1945년 정도까지 이 이슈에 관해 미국의 오버턴 창은 '오른쪽 끝'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정치인들의 희생과 몇몇 중요한 사건들, 그리고 인식의 변화(그것이 경제적 이유든, 사회적 이유든)들이 창을 왼쪽으로 옮기도록 추동했다. 동성애 인권 운동 지도자나 말콤 엑스가 세상을 바꿨다기보다, 그들의 노력이 중첩되면서 창이 점점 이동했고 결국 주류 대중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오버턴 창은 모든 사안을 '주류 대중이 받아들일만 한가'로 환원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툴이다. 윤리적 당위성을 가진 의견이나, 소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다. 하지만 주류 대중 정당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실용적인 차원에서는 유용하다.
현대 정치인들의 경우 이 스펙트럼 어디엔가 자신의 정책, 혹은 정치적 스탠스가 존재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자신의 신념을 '정책'으로 관철하기 위해 지금 '오버턴 창'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게 필요하다. 창을 옮기는 추동력은 '특별한 정치인'의 등장이나, 시대정신, 정치 환경의 변화다. 자연재해나 비상계엄 같은 거대한 사건도 창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들 가진 고집스러운 신념이나, 자신이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소수 그룹들의 '운동'만으로 창을 옮기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2019년 워싱턴포스트는 "오카시오-코르테즈가 열어젖힌 '오버턴 창'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That fresh air is coming from the Overton window Ocasio-Cortez threw open)"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의 89년생 여성 정치인의 등장을 반겼다. 코르테즈 의원의 파격적 아이디어가 미국의 '오버튼 창'을 왼쪽으로 옮겨 왔다는 것이다. 창이 왼쪽으로 옮겨가면, 과거엔 '급진적'이라 평가된 정책도 주류의 토론장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었다. 어쩌면 미국이 트럼프를 통해 오버턴 창을 오른쪽 스펙트럼으로 급변침하는 데 있어 코르테즈 의원 같은 개별 정치인에 대한 실망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코르테즈의 아이디어는 무료 공립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국경 수비대 해체, 급진적인 '기후 정책'으로 주류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내로남불'의 실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물론 반대로, 트럼프와 극우 '마가 세력'이 급격히 옮긴 오버튼 창이, 그 반작용으로 왼쪽으로 옮겨가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을 당선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도 일리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한 칼럼은 "조란 맘다니는 마가(MAGA)의 닥터 프랑켄슈타인이 그의 뒤틀린 사회과학 실험실에서 (일부러) 발명해낸 듯한 전형적인 민주당원인 것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이민자에, 무슬림에, 사회주의자에, 여성 영화감독의 아들이자, 아프리카 출신 탈식민주의학 교수의 아들, 팔레스타인 지지자, 랩 프로듀서. 정확히 MAGA가 싫어하는 모든 걸 담아낸 게 맘다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오버턴 창을 응용해 볼 수 있다. 한국의 '오버턴 창'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충격으로 인해 왼쪽으로 이동해 있는 상황이다. 예전엔 왼쪽 스펙트럼에서 '수용 가능한' 정도에 있었던 이슈들이 현재에는 '정책 실현'의 바늘과 굉장히 가까워졌다. 심지어 '급진적'이라 여겨졌던 아이디어도 지금은 '수용 가능한' 수준이 될 정도로 창이 옮겨갔다. 그 반대로 오른쪽 스펙트럼은 창이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과거라면 '수용 가능한' 수준의 이슈들이 창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버렸다.
과거 오른쪽 스펙트럼에서 '급진적'이라 생각됐던 '계엄 찬성'이나, '탄핵 반대', '윤어게인'을 주장하는 건 주류 대중에게 '생각조차 할 수 없는(unthinkable)'의 단계로 이동해버린 셈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지금 '오버턴 창'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과거 괜찮게 생각한 아이디어(계엄은 나쁘지만 탄핵은 너무 나갔다거나 하는 주장)조차 지금 주류 대중들에게 과격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인데, 여전히 이 당은 윤석열에 온정적인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주류 대중이 세상을 보는 창은 왼쪽으로 심각하게 이동했는데도 말이다.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민심의 위치', 즉 '오버턴 창'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봐야 하는 일이다. 장동혁 대표와 몇몇 '윤어게인'에 휘둘리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집토끼를 먼저 잡자'는 고전적 정략을 외친다고 해서 창이 움직이진 않는다.창을 움직이는 건 '민심'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민심'과 불화하려는 위치를 고수하려 한다. 정치인은 창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가거나, 창의 움직임을 촉발할 수는 있겠지만 창을 옮길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하나다. 국민의힘은 지금 극단적 오른편에 있는 스탠스에서 벗어나 정책, 생각, 주장, 정치 행위 등 모든 걸 왼쪽으로 옮겨와야 한다. 이재명이 대선 때 극단적 왼쪽(창 밖)으로 향하지 않고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오버턴 창'의 궤적을 따라간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핵심은, 사람이나 스펙트럼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창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금 민주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오버턴 창'이 왼쪽으로 이동했다 생각하며 과거라면 '급진적'이라 할만한 정책(이를테면 '법왜곡죄' 등 사법 개혁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검찰개혁을 예로 들어보자. 검찰 개혁은 노무현 때 시작해 윤석열을 겪기까지 거의 20년동안 창 밖에 존재해 왔었다. 지금 검찰 개혁이 가능한 건 '민주당의 20년 노력'의 결실이 맺어진 것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류 대중이 비상계엄을 계기로 창을 왼쪽으로 옮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주류 대중이 사법 시스템을 의심하는 단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급진적 개혁으로 대체하는 것까지 찬성한다고 볼 순 없다. 게다가 이건 '먹고 사는' 문제와도 연관성이 떨어지는 이슈다.
민주당은 '정치 이슈'를 과도하게 확장할 경우 창은이 언제든 반대로 움직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리버럴 급진주의자들이 트럼프를 탄생시켰고, 트럼프가 맘다니를 탄생시킨 사례를 곰곰히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영리한 정치인들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진보적 경제 이슈에 집중해야 할 때임을 알 것이다. 몇몇 '정치적 강경파'에 휘둘려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윤어게인 세력'에 힘을 보태주면서 경제, 사회 개혁의 적기를 구태여 놓칠 필요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보탠다. '조희대 사법부'는 지금 오버턴 창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잘 판단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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