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왕 권혁의 침몰:' 3938억 원 체납 1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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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왕 권혁의 침몰:' 3938억 원 체납 1위' 스토리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13 05:27: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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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한때 '극동의 선박왕' '한국의 오나시스'로 불리며 세계 해운업계에서 조용히 거탑을 세웠던 권혁(75) 시도그룹 회장.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화려했던 수식어들은 이제 대한민국 최고액 개인 체납자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 앞에 무색해졌다. 국세청이 공개한 2023년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에 그의 체납액은 3,938억 원으로 기재됐다. 이는 역대 개인 체납액 중 가장 큰 규모다. 

은둔형 사업가의 탄생: 1억 원으로 시작한 해운 신화

 1950년 출생한 권혁 회장은 경북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고려해운에서 경력을 쌓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의 사업적 야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1년 일본으로 건너가 시도물산을 설립하면서부터다.

권혁 회장은 당시 상대적으로 적은 사업비인 1억 원으로 공격적인 선대 확보 전략을 구사했다. 그의 성공 기반은 전통적인 화물 운송업보다는 고도화된 '선박금융(Ship Finance)' 기법을 활용한 데 있었다. 그는 초기 자본 대비 막대한 레버리지를 활용해 고가의 상선들을 대량 확보했고, 18년 만에 290여 척의 선박을 거느리는 거대 해운 그룹의 수장이 됐다.

그가 이끈 시도상선은 일반인에게는 낯설었지만, 그 규모는 실로 압도적이었다. 탈세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회사 측이 밝힌 재화중량톤수(DWT) 기준 시도상선의 규모는 1,085만여 톤에 달했는데, 이는 현존선과 발주선을 모두 합한 수치다. 이는 당시 국내 컨테이너선 해운업계 '빅3'였던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의 규모를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세계 해운사 중 약 13위에 해당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해운사 중 DWT가 1,000만 톤이 넘는 회사를 소유한 것은 권혁 회장이 유일했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국내 규제와 세금 시스템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사업 구조를 설계했다. 시도상선이 보유한 170여 척의 상선 중 60%가량은 직접 화물 운송 대신 선박을 빌려주는 대선(貸船)을 주력으로 삼았다. 이러한 사업 방식과 철저히 언론 노출을 피하는 ‘은둔형 사업가’ 전략 덕분에, 그는 세금 추징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거의 ‘유령 인물’처럼 통했다.

위기 속의 자산 이동: 역외 구조의 치명적인 양날의 검

 권혁 회장이 ‘선박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은 국제적인 선박금융 활용 능력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그의 몰락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 그는 홍콩, 케이맨제도, 파나마 등 주요 조세피난처에 시도홀딩(Sido Holding), 시도탱커홀딩(Sido Tanker Holding) 등 페이퍼컴퍼니(SPC)를 설립해 선박을 소유하고 운영했다.

세무당국은 권혁 회장이 이들 역외 법인을 통해 약 1조 원에 가까운 소득을 은닉했으며, 이로 인해 3,000억 원대 세금이 탈루된 것으로 판단했다. 세무당국은 고정된 사업장이 없는 이 페이퍼컴퍼니들의 역외 유보 소득이 실질적으로 한국인 주주인 권혁 회장에게 배당된 것으로 간주하고 과세 처분을 내렸다.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가 닥치자 그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대 개편 작업을 단행했다. 최대 290여 척에 이르렀던 선박을 절반 이상 처분하는 등 대규모 매각을 진행하며 자산 구조를 축소했다.

 이런 상황 속에 2011년, 국세청은 역외 탈세 엄단을 기조로 권혁 회장에게 4,101억 원의 세금을 추징하고 그를 탈세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그가 국내에 거주하며 사업의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했음에도, 탈세를 위해 조세 회피처에서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했다고 보고 그를 2,300억 원대 탈세 혐의로 기소했다.

법적 분쟁의 괴리: 수천억 원의 책임과 2억 원의 고의

권혁 회장의 법적 대응 전략은 자신은 일본 거주자이므로 한국의 소득세법상 납세 의무자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만약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수천억 원대의 세금 부과는 모두 취소될 수 있었다.  그는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사실상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과세기간(2006년에서 2010년)에 권혁 회장이 국내에서 시도그룹 전체 업무를 통제하고 사업상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과, "2004년 4월 이후 일본에서 가족과 생계를 같이 하지 않고 국내에서 생활한 점 등"을 근거로 그의 국내 ‘거주자성’을 인정했다.

 법원은 한국에 과세권이 성립한다고 판단하고,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시도홀딩, 시도탱커홀딩 등이 고정된 사업장이 없는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므로, 이 회사들의 역외 유보 소득을 권혁 회장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과세한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조선소 등으로부터 받은 선박 중개 수수료인 '어드레스 커미션' 약 988억 원에 대한 과세 처분은 개인의 소득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취소했다.

 이 판결로 권혁 회장은 수천억 원대의 종합소득세 납세 의무가 최종적으로 확정됐고, 이 금액에 가산세 등이 붙어 오늘날 3,938억 원의 체납액이 된 근간을 이뤘다.

형사소송: ‘범죄 의도’ 입증의 난항

행정 법원에서 납세 의무가 확정된 것과 달리, 형사 소송의 결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검찰은 권혁 회장을 2,300억 원대 탈세 혐의로 기소했고, 1심에서는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 원을 선고했지만 , 2심과 대법원은 이를 대폭 수정했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종합소득세 2억 4,400만 원에 대해서만 탈세 유죄를 확정했다. 최종 형량 역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현격히 낮아졌다.

 이 결과는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복잡한 역외 조세 회피 구조를 이용한 행위를 '납세 의무 위반'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행위 전체를 '고의적인 범죄'로 입증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음을 보여준다. 수천억 원의 세금을 내야 할 책임은 확정됐으나, 그 책임을 회피한 행위가 형사 처벌 대상인 고의적인 탈세로 인정된 금액은 극히 미미했던 것이다.

최근 근황: 체납 꼬리표와 45억 원대 횡령 혐의

권혁 회장은 법적으로 확정된 3,938억 원의 체납액을 1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하고 최고액 체납자 명단에 남아 있다. 국세청은 조세 정의 실현을 위해 재산 은닉 또는 강제 징수 회피 혐의에 대해 실거주지 수색, 소송 제기 등 엄정한 재산 추적 조사를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체납 문제와 별개로, 2024년 5월에는 권혁 회장이 시도그룹과 관련하여 별도의 45억 원대 횡령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미 그룹의 자산이 압류되고 매각되는 구조조정 국면에서 추가적인 횡령 혐의가 불거지면서, 권혁 회장 개인의 도덕적 해이와 잔존 자산 관리에 대한 의혹은 더욱 심화했다.

 한마디로 권혁 회장 사태는 국제 자본 이동성이 극도로 높은 시대에 한국의 조세 행정 시스템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법원이 그의 '국내 거주자성'을 인정해 국가의 과세권을 확립했다는 점은 큰 진전이지만, 실제 수천억 원의 체납액을 강제 징수하고 형사상의 처벌을 집행하는 과정은 여전히 복잡하고 험난한 숙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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