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기술 번역가 박인균 대표 “AI 시대 번역? 여전히 사람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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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기술 번역가 박인균 대표 “AI 시대 번역? 여전히 사람이 한다”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13 04:31:04 신고

3줄요약

 번역은 기계가 빠르게 따라잡는 분야처럼 보인다. 그러나 25년 넘게 기술번역의 한복판에서 일해 온 박인균 대표는 기계가 번역을 잘하는 시대일수록 인간 번역가의 기준과 감각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출판번역으로 시작해 글로벌 IT 기업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다시 번역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세우기까지. 박 대표의 커리어는 질문으로 방향을 찾았고, 흔들림 속에서 길을 익히며,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왔다.

LPT아카데미 박인균 대표. (사진제공=LPT아카데미)
LPT아카데미 박인균 대표. (사진제공=LPT아카데미)

Q. 번역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번역가가 되려던 건 아니었어요. 영어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문학과에 갔고, 졸업 후 영어로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번역회사에 입사한 거죠. 막상 번역을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Q. 출판번역, 기술번역, 교육까지 커리어가 확장돼 왔습니다. LPT 아카데미 설립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5년 동안 번역회사에서 일하면서 내 번역이 어디에 쓰이는지 말할 수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어요. 그런데 출판번역은 이름을 걸 수 있고 번역서 자체가 경력과 정체성이 되죠. 출판번역을 배우려고 찾아보니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언젠가는 내가 만들겠다는 생각이 싹텄어요. 지금처럼 개인이 온라인으로 지식을 파는 시대가 아니었거든요. 더욱 필요성이 커 보였죠.

Q. 프리랜서 시절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무엇인가요?

뭐든 하면 된다는 태도요. 20대에 회사를 나온 건 큰 결심이었지만 그 선택 덕분에 지금의 삶이 있게 됐어요. 중간에 수강생이 없어 아카데미를 접을까 고민한 적도 많았어요. 그래도 버티니 길이 열리더라고요. 그리고 교육을 통해 번역가 지망생이 '지망생' 딱지를 떼고 실제로 데뷔하는 모습을 볼 때의 성취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Q. AI 시대가 되면서 번역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사람이 처음부터 번역하는 일은 확실히 줄었습니다. 지금 제가 받는 일의 90% 이상이 MTPE(Machine Translation Post Editing)예요. 기계 번역을 사람이 다듬는 작업이죠. 일이 줄었다기보다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또 하나는 데이터 라벨링 수요가 급증했다는 점이에요. 기계 번역 품질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일들이죠. 결국 사람의 판단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Q. 앞으로 번역가가 반드시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판별력입니다. 기계 번역 문장이 정확한지 아닌지, 자연스러운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해요. 둘째는 언어 능력입니다. 기술문서도 결국 고객에게 말을 거는 글이거든요. 천편일률적이고 딱딱한 AI 문장만으로는 마케팅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문장력이 좋은 번역가가 살아남습니다.

Q. 초보 번역가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오해는 무엇일까요?

프라이밍 효과예요. 번역기를 먼저 돌려보고 내가 고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기계가 만든 문장에 노출되는 순간 판단 기준이 흔들립니다. 번역 과제를 첨삭하다 보면 기계 번역 티가 나는 문장들이 정말 많아요. 변별력이 사라지는 건데요. 기준이 없을수록 AI에 의존하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자기 힘으로 번역해봐야 좋은 번역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Q. 기술번역이 지금 시대 번역가에게 주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기술을 늘 가장 먼저 접한다는 점이에요. AI, 메타버스, 신제품, 신규 서비스… 문과 출신이었다면 관심조차 갖기 어려웠을 분야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됩니다. 또 글로벌 에이전시와 협업하면서 세계 각지의 PM과 현지 팀과 일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어요. 처음 글로벌 서버 구조를 봤을 때 시야가 확 넓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Q. MTPE 확대로 실제 작업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생산성은 확실히 높아졌습니다. 예전엔 1시간에 300단어 번역했다면 MTPE는 600~1,000단어까지 가능해요. 15년간 이어온 장기 프로젝트는 콘텐츠가 익숙해지면서 속도도 훨씬 빨라졌고요. 1만 단어 분량을 하루 만에 끝낸 적도 있습니다. 다만 MTPE는 그만큼 단가가 낮아요. 그래서 깊게 들여다볼 문서와 훑어보고 끝낼 문서를 구분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Q. 앞으로 5년, 가장 빠르게 성장할 분야는 어디일까요?

품질관리(QA)입니다. 기계 번역이 늘어날수록 기계 번역을 어떻게 사용할지, 어디까지 수정할지, 무엇이 좋은 번역인지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 필요해요. 기계 번역을 사람 번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각각의 번역을 목적에 따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 이게 앞으로 번역가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일 겁니다.

Q. LPT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조하는 번역 습관은 무엇인가요?

우리말 문장을 많이 읽고 많이 써보라는 점입니다. 인풋이 좋지 않으면 아웃풋도 좋아질 수 없어요. 기술번역 수업을 들으러 오는 분들 중에 의외로 한국어 문장이 엉성한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한국어를 잘 못하면 외국어를 잘할 수 없습니다.

Q. 초보 번역가가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영어식 문장이 나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영어를 한국어 관점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양질의 피드백이 필요하고요. 번역은 결국 내가 쓴 문장을 통해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업이라,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을수록 성장 속도가 빠릅니다. 피드백을 불편함이 아니라 학습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번역 실력은 훨씬 단단해져요.

Q. 번역가가 될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뻔하지만, 될 때까지 하는 사람입니다. 영어 기초도 부족했던 분이 3년 동안 꾸준히 공부해 지금은 에이전시 샘플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 분은 아마 합격하실 거예요. 성실함 덕이죠. 끝까지 밀고 가는 태도가 결국 결과를 만듭니다.

Q. ‘안티프래질 커리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흔들리지 않는 커리어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먼저 흔들려봐야 합니다. 흔들려본 사람만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알게 돼요.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 옮기는 건 삶이 크게 흔들리는 경험이죠. 이런 변화를 몇 번 겪어봐야 커리어의 중심이 단단해진다고 생각합니다.

Q. 대표님께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번역을 가르치고, 서비스를 만들고, 실패도 하고 성취도 맛보면서 내가 이런 것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 하는 순간들이 생기죠. 일이 있었기에 제 삶은 훨씬 풍성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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