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4DX, IMAX, 돌비시네마, SCREENX, MX…. 요즘 극장에서는 '특별관'이라는 이름 아래 각종 현란한 시각적 경험을 입은 영화가 제공됩니다. 보통 2D 영화의 두 배가 넘는 티켓 값을 치르고라도 특수 포맷으로 봐야 할 작품도 많아졌고요. 이 흐름이 보편화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모든 걸 바꾼 건 영화 〈아바타〉의 등장이었습니다.
영화 〈아바타〉
〈아바타〉 시리즈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어비스〉와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을 통해 영화 특수 효과의 새 지평을 연 인물입니다. 2009년 〈아바타〉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속편, 〈아바타: 물의 길〉까지 성공시킨 그가 3년의 각고 끝에 〈아바타: 불과 재〉를 내놓습니다. 개봉을 앞두고 한국 취재진 앞에 선 제임스 카메론은 "그 사이 많은 모멘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든, (영화의) 기술적 진보가 (모든 것을) 아주 높은 퀄리티로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까지 도달했다"라며 〈아바타〉와 함께 한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돌아봤습니다.
〈아바타〉의 거대한 세계관을 "어떤 이야기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캔버스"라고 표현한 그는 "이번 영화에선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뤘다"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대가족 안에서 자랐고, 자신도 대가족을 이룬 제임스 카메론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본 반항심 넘치는 10대 자녀들을 판도라 행성 세계관에 옮겨 놓고 싶었다는데요. 그것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바타: 불과 재〉로 시리즈 특유의 환상적 세계와 더불어 인간적인 마음의 여정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젠 그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글로벌 흥행 기록 보유자입니다. 그렇다고 방심하지는 않습니다. 시리즈의 진일보를 위해 〈아바타: 불과 재〉에 좀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3500개에 달하는 VFX샷을 포함한 "모든 장면"이라고 즉답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다만 그는 이번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망콴 부족과 바람 상인들을 새롭게 추가된 재미로 꼽았습니다. 망콴 부족의 리더 바랑 역을 맡은 찰리 채플린의 외손녀 오나 채플린 연기를 칭찬하면서요.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 불과 재〉를 시리즈 중 가장 '감정적인' 영화라고 말했습니다. 제이크(샘 워싱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 가족이 첫 아들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를 잃은 후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는 지가 작품의 관전포인트입니다. 이들은 내면의 갈등은 물론 외부 적과의 갈등까지 경험하며 여러 슬픔과 충격을 이겨냅니다. 감독은 "첫 〈아바타〉에서는 환상의 세계를 소개하고,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캐릭터들이 사는 세계를 옮겨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아바타: 불과 재〉는 그 완결형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해소되지 않는 지점 없이 이야기가 완결되는 영화를 목표로, 캐릭터들을 다양한 시험에 들게 했다. CGI로 만든 캐릭터가 (의도한 만큼의) 감정적 깊이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아바타: 불과 재〉의 망콴 부족은 제목대로 불, 그 이후의 남는 재의 이미지가 강렬합니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에게 '불'은 어떤 부족을 대표하는 원소가 아니었습니다. 혐오와 증오, 폭력과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요소였죠. 바랑(오나 채플린)과 망콴은 고향이 파괴된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무력감과 고통을 남에게 푸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위협적인 약탈자가 됐죠. 이 집단을 만든 배경에는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는데요. 과거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함께 파푸아뉴기니를 탐험하던 중, 화산 폭발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된 한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제임스 카메론은 강렬한 이미지를 느꼈다고 해요. 그는 "당시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지를 상상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언급했듯, 아날로그와 첨단 기술을 영화라는 포맷에서 융합하는 실력으로 보면 제임스 카메론은 최고 권위자입니다. 하지만 그도 인공지능(AI)을 영화에 도입한 적은 없습니다. AI의 등장 이후,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 세계의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요. 인간의 자리를 AI가 대체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죠. 제임스 카메론은 이를 두고 "생성형 AI가 배우들을 대체해서는 안된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모든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배우를 비롯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바타: 불과 재〉에 단 1초도 AI를 쓰지 않았다"라고 강조합니다. AI는 인간의 생산물 데이터를 학습하는 존재이므로 독창성과 일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를 '예술가들의 협업'이라고 말합니다. 예술가가 만든 캐릭터를 예술가가 연기하고, 다시 예술가가 이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는 거죠. 적당히 만들고 싶다면 AI를 쓸 수 있겠지만, 제임스 카메론의 목표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AI가 일시적으로 배우를 대체할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그게 훌륭하고 뛰어난가?' '아닙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렇게 자문자답했습니다. 그래서 〈아바타〉 시리즈의 캐릭터들은 모두 배우들의 모션 캡처를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감독에게 AI란 모든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AI는 결코 독창성을 생성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생각하는 AI의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현재의 영화 업계에 커다란 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치솟는 VFX 비용과 이전 대비 30% 이상 급감한 극장 수익의 균형입니다. 이 균형이 깨지면 상상력에 기반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영화들은 멸종할지도 모른다고 감독은 주장합니다. 때문에 그는 VFX 작업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대책으로 AI가 효율적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티스트들을 AI로 대체하고 싶지 않다. 단 VFX 작업 과정 내에서 AI 조수를 활용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며 AI를 도구로 활용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성의 필요를 역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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