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롯데백화점 보안요원이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식사를 하는 조합원들에게 ‘노조 조끼’를 벗어달라고 요구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뿌리깊은 노조 혐오 문화의 탓”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12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 등은 지난 10일 오후 7시께 금속노조 조끼를 착용한 채 서울 송파구 소재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식당에서 식사하려다 보안요원의 제지를 받았다. 공공장소에서 노조 조끼가 다른 손님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이들이 입고 있던 조끼에는 현대차 하청기업인 이수기업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요구하며 ‘해고는 살인이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보안요원이 조합원들을 향해 “공공장소에서는 에티켓을 지켜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이김춘택 사무장이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이러고 다닌다”고 답변했다.
보안요원이 “여기는 사유지”라고 받아치자 이김 사무장은 “백화점이 정한 기준이 노동자를 혐오한다는 것”이라고 대응했다.
이어 이김 사무장은 “저도 노동자”라는 보안요원의 말에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본인의 일이니 어쩔 수 없긴 한데 혐오가 아닌지 잘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 게재된 1분 11초 분량의 이 영상은 이날 오후 5시 기준 8800여건의 리트윗(공유)을 받았다. 해당 영상은 SNS 등을 통해 퍼지면서 노동자 혐오 논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롯데백화점 측은 노조에 사과하고 “고객 복장 제한 규정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수기업 해고노동자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등 단체들은 엄연한 혐오라며 반발에 나섰다.
이들은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돼 있으며 노조활동은 헌법에 명시된 권리”라며 “그런데도 이를 공공장소 에티켓, 또는 고객들이 불편해한다는 자의적 판단과 표현을 한 것은 백화점 측의 뿌리깊은 노조 혐오 문화의 탓이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고는 살인이다 온전한 고용승계 이수기업(현대자동차 하청업체) 해고자’라는 내용의 몸자보는 위험한 문구고 혐오스러운 표현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롯데백화점 측이 서둘러 사과에 나섰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이날 이김 사무장을 연대하는시민, 인권단체 등은 롯데백화점 잠실점을 항의 방문했다.
기자회견에서 이수기업 해고자인 안미숙씨는 “이수기업 해고 당사자로서 연대해주는 동지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라며 “몸자보는 저희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남을 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 조끼를 당당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몸자보를 붙인 채 당시 이김 사무장이 머물렀던 식당가를 찾아 음식과 음료를 주문하는 항의 행동을 이어갔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활동가는 한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며 직원을 향해 “제가 입은 몸자보가 불편하냐”고 묻기도 했다. 직원은 “아니다”고 대답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현장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겉으로는 노조 활동을 보장한다고 밝히는 기업들이 실제 현장에서는 ‘고객 눈높이’나 ‘이미지 관리’를 이유로 노조 상징물을 제약하는 관행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장 직원의 판단에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기업 차원의 명확한 기준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은 전날 성명서를 통해 “노조 조끼를 입은 고객은 ‘출입 금지’ 취급을 하면서도 직원들에게 성희롱을 일삼고 공개적으로 고성과 욕설을 퍼붓고 사과와 금전을 강요하는 악성 고객들은 왜 그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나. 롯데백화점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현장의 판매서비스노동자들이 어떤 지침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매뉴얼 공유를 요구했지만 오늘까지도 현장 노동자들에게 그 매뉴얼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은 노동3권에 대한 낮은 인식, 반노동적 태도의 연장선일 뿐이다. 백화점 안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그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운영 방식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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