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추진하는 사법개혁안에 대한 각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법원이 3일간 추진한 사법개혁 공청회가 지난 11일 종합 토론을 끝으로 마무리 됐다.
이날 토론에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김선수 전 대법관 등 법조계 원로들은 성급한 사법개혁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문 전 대행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내란 사건이 단 1개도 선고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 더더욱 구속기간 계산 변경을 내란 우두머리 사건에서 적용해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며 사법부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도 "분노는 '사법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사법개혁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문형배 "사법개혁은 찬성…민주당 법안이 사법개혁 실현할 수 없어"
박은정 "사법개혁인지 사법통제인지 헷갈려"
김선수 "사법부가 내란 극복 방해하는 행태"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11일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 공청회 마지막 순서로 문형배(사법연수원 18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김선수(17기) 전 대법관,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 각계 권위자가 참석한 100분 토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행은 "'휴먼 에러'(인간의 오류)가 있다면 휴먼을 고쳐야지 시스템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몇 사건처리와 관련한 국민의 분노를 이해한다"면서도 "분노는 '사법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사법개혁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같은 사법부 결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문 전 대행은 "저는 사법개혁에 찬성한다"면서도 "민주당이 제시한 법안이 사법개혁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라며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박은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을 냈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는 사법 독립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 전문가 집단의 선의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고 대체로 사법행정의 협조 내지 소통 하에서 사법개혁이 이뤄졌다"며 "그런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갈등이 고조된 시기에 사법 체계 전반, 법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부분에 대한 압박을 사법부가 받고 있고, 일반인들에게도 이게 사법 개혁인지 사법 통제인지 헷갈리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입법부나 행정부 위에 있을 수 없는 게 당연하듯, 입법부나 행정부가 사법부 위에 있을 수 없다"며 "3부 위에 있는 건 국민이다. 국민의 권리 보호에 만전을 기하기 3부를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조재연(12기)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역시 "개개 판결 결과에 대해 여러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고 특별히 경청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전체 현재 사법부 개편 또는 개혁의 당연한 전제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삼권분립에서 '견제와 균형'을 말할 때 당연한 전제로 다른 권력에 대한 상호존중과 자기 권한에 대한 적절한 절제, 이것이 전제다"라며 "오늘날 세계 각국은 입법과 행정의 동조화 현상을 겪고 있다. 다른 한 축인 사법부의 견제 기능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법과 제도가 제대로 설계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제도 개편에 주저함이 없어야겠지만 너무 성급하게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역효과가 있다"며 사법개혁 속도전도 완곡하게 지적했다.
반면 김선수 전 대법관은 "우리 법원은 침몰하기 직전의 난파선과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거대한 암초를 들이받고 좌초한 상태"라며 "여기에 일부 법관들의 이해할 수 없는 내란 사건 진행, 특검 영장 기각 결정 등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내란 극복을 방해하는 것 같은 행태로 침몰을 독촉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에서 내놓은 사법개혁안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현재 제안된 5대 개혁과제는 12월 중에 입법을 완료해서 1라운드를 마무리하고, 2라운드 체계로 하급심 강화 등 본격적으로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내란전담재판부, 문형배 "예외적 정당성 있어" 박은정 "현 재판부가 국민 안심 시켜야"
이날 토론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나 법왜곡죄 도입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박은정 교수는 "민주당 안이 구체적 시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기보다는 현 재판부에 대한 압박용, 경고성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사건 배당에 외부 인사가 관여하거나 정치권 입김이 들어오는 특정 판사가 담당할 경우 내가 재판 당사자라면 그것에 승복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재판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법 앞의 평등에 따라 정해진 절차에 의해 사법이 이뤄진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박 교수는 "현재 1심 재판부가 이 재판에 집중된 국민적 관심과 우려를 진지하게 여기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행도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내란 사건이 단 1개도 선고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며 "더더욱 구속기간 계산 변경을 내란 우두머리 사건에서 적용해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분적 법률이라고 해서 곧바로 위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예외적 정당성이 있는지가 문제인데, 내란 재판은 예외적 정당성을 긍정하기에 좋은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내란 재판은 신속하게 선고하고 법원이 기타 신뢰성 있는 조치로 분위기를 차분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법원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 제정의 계기를 없애는 게 왕도"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법왜곡죄와 관련해 "입법 취지가 나름대로 있다고 해도 이런 형태의 법조문은 성격상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며 "법의 해석과 적용은 결국 법원에서 하게 될 텐데 결과적으로 법원의 재량을 키워주는 쪽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차병직 변호사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는 법안의 수정이나 보완이 문제가 아니라 설치 자체가 문제"라며 "더 심각한 건 법왜곡죄다. 국가보안법처럼 이상한 구성요건이 하나 추가되는, '정치 형법'이 하나 탄생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대법관 증원론 백가쟁명…"하급심 강화 우선"·"단계적 8∼12명"
문형배 "재판소원은 장기과제로"
사법개혁안의 핵심인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는 토론 참석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문 전 대행은 은 상고심사제 도입을 전제로 8명을 단계적으로 증원하는 안을 제안했다.
그는 "상고심사제와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전제로 총 8명을 단계적으로 증원할 것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개정안 시행 1년 뒤에 대법관 4명을 늘리고, 시행 3년 뒤에 4명을 추가해 소부는 현행 3개에서 4개 체제로 전환하고 연합부 2개, 상고심사부 1개를 두자는 안이다.
문 전 대행은 "3년 뒤면 총선을 한번 거친다"며 "총선을 통해 야당도 사법부 구성에 관여할 기회를 주는 게 제도의 수용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선수 전 대법관은 민주당 TF안인 대법관 12명 증원 방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입장에선 주심 사건 수가 절반으로 감소하므로 지금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심도 있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13명으로 구성되는) 연합부에서도 현재 전합보다 적극적으로 판례 변경 등을 통해 법령 해석의 통일을 기하는 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증원 시기와 관련해서도 향후 3년에 걸쳐 4명씩 증원하는 민주당 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장기간에 걸쳐 증원하면 과도기적 상태 지속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에 대해서는 문 전 대행은 "재판소원을 시행하는 독일에서 인용률이 1% 안팎이다. 독일의 헌법과 대한민국 헌법은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헌재를 유일한 최고법원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헌재의 권한을 키울 것이냐 대법원의 권한을 키울 것이냐 같은 기관 이기주의 관점이 아니라 국민의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제도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판소원 도입은 장기과제로 논의하되,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서는 법원에 재심 사유를 인정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을 건의하기도 했다.
조재연 전 대법관은 현재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헌법적 합의를 거친 것이라면서 "법률 개정 하나로 그걸 바꾸는 게 형식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재는 개별적 구제 절차를 다 거친 다음에 가기 때문에 원하든 그렇지 않든 대법 확정 판결을 거쳐야 한다"며 "그렇다면 상고심 증가, (대법원에서) 만족을 못 하고 헌재로 가면 헌재가 대법원이 겪고 있는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차병직 변호사는 재판소원 도입으로 인한 헌재의 사건 수 폭증을 우려했다. 그는 "상고심이 법률심이라지만 사실상 모든 사건을 법률심화해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게 사실상 법률가들의 비상한 기술"이라며 "헌법적 쟁점에 한해 헌법소원을 허용하더라도 모든 법률가는 모든 사건을 헌법 쟁점화할 수 있고, 결국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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