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글로벌 시장의 문이 저절로 열리는 시대는 지났다. 특히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일본의 제조·로보틱스 시장에서 국내 스타트업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란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없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엔비디아(NVIDIA)와의 협업을 지렛대 삼아 해외 진출의 난관을 돌파한 사례가 있어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3D 생성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엔닷라이트가 국내 최대 스타트업 축제인 '컴업(COMEUP) 2025' 무대에 오른다. 단순히 자사 기술을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다. 엔비디아라는 거대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해 미국과 일본 시장에 안착했는지, 그 구체적인 생존 방정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엔닷라이트는 자체 개발한 3D 생성 AI 엔진을 통해 제조, 로보틱스, 디지털 트윈 등 산업 현장에 필수적인 고정밀 3D 데이터를 자동 생성하는 솔루션 '트리닉스(Trinix)'를 운영하는 딥테크 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화두가 되면서 관련 기술 수요는 폭발했지만, 신생 스타트업이 글로벌 대기업의 신뢰를 얻기에는 진입 장벽이 높았다.
엔닷라이트가 선택한 전략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전 세계 로보틱스와 시뮬레이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옴니버스(Omniverse)' 생태계에 진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엔닷라이트 관계자는 엔비디아와의 연동을 공식화한 시점이 글로벌 확장의 분수령이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일본의 현지 고객사들이 엔닷라이트를 단순한 한국의 스타트업이 아닌, '엔비디아 옴니버스 호환이 검증된 솔루션'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 바이어들의 도입 결정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본 시장에서 감지됐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해외 스타트업, 특히 초기 기업이 레퍼런스 없이 진입하기 가장 까다로운 시장으로 꼽힌다. 신뢰 구축에만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엔비디아와의 협업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영업 사원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 현지 기업들이 먼저 엔닷라이트 측에 기술 도입을 문의해오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빅테크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기술력에 대한 일종의 '보증수표' 역할을 하며 보수적인 일본 기업들의 의구심을 걷어낸 셈이다.
엔닷라이트는 이번 컴업 패널 토크에서 기술적 협업 외에도 현실적인 '현지화'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글로벌 대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계약 주체'의 소재지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공급사 등록이나 본계약 단계에서 해당 국가 내 법인 유무를 중요 심사 기준으로 삼는다.
이를 간파한 엔닷라이트는 올해 초 미국 법인 설립을 발 빠르게 마무리했다. 최근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일본 시장 역시 현지 법인 설립과 담당자 채용을 단계적으로 검토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다 놓치기 쉬운 비즈니스의 '디테일'을 챙긴 결과다.
엔닷라이트 관계자는 "한국에서 출발했지만 세계 제조·로보틱스 기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 발표가 막연하게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동료 스타트업들에게 실질적인 가이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엔닷라이트의 구체적인 글로벌 진출 스토리는 코엑스 B홀에서 열리는 컴업 페스티벌 패널 토크 세션(오전 10시~11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성공담을 넘어, 딥테크 스타트업이 생존을 위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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