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전영선 기자] 대기업 집단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시스템통합(SI) 계열사 내부거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타깃은 공격적 M&A로 재계의 신흥 강자로 부상한 KG그룹의 IT 계열사 'KG ICT'다. KG모빌리티(구 쌍용차) 인수로 그룹 외형이 급팽창하면서 KG ICT의 매출도 덩달아 치솟았다.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는 '내부거래'라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5년 SI업체와 총수 2세 지분 회사에 대한 집중 감시를 예고한 가운데, KG ICT는 규제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을까.
■2년 만에 '몸집 2배', 캡티브 마켓의 힘
KG ICT의 최근 실적 그래프는 가파르다. 2022년 이후 불과 2년 만에 매출이 2배 가까이 뛰며 폭풍 성장을 이뤄냈다. 2024년 기준 매출액은 약 854억 원. 이 중 계열사로부터 거둬들인 내부거래액만 383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44%에 달한다. 급성장의 일등 공신은 단연 KG모빌리티다. KG그룹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스마트 팩토리 전환, 커넥티드 카 서비스, 사내 전산망 통합 등 막대한 IT 수요가 발생했고, 이 물량이 고스란히 KG ICT로 흘러들어갔다. SI 업계 특성상 그룹사의 보안 유지와 시스템 효율성을 위해 내부거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른바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 효과다. KG ICT 입장에서 KG모빌리티라는 거대 고객사 확보는 기업 가치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성장 엔진이 된 셈이다.
■성장의 과실은 누구에게... 오너 2세 '승계 자금줄' 의혹
문제는 지배구조다. 효율성이라는 명분 뒤에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 의혹이 짙게 깔려 있다. KG ICT는 곽재선 KG그룹 회장의 장녀 곽혜은 부사장이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는 회사로 분류된다. 전형적인 '오너 2세 회사'다. 재계에서는 "계열사 물량으로 회사를 키운 뒤 배당이나 지분 매각을 통해 승계 자금을 마련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거래 비중 44%는 가벼운 수치가 아니다. 경쟁 입찰 없이 수의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내부거래는 시장 가격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축적된 현금이 그룹 지주사 지분 확보를 위한 실탄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KG ICT의 성장이 단순한 실적 호조를 넘어 '편법 승계의 우회로'로 의심받는 이유다.
■공정위 경고장, "SI업체·2세 회사 현미경 검증"
KG ICT의 행보는 공정위의 2025년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발표하며, 총수 2세 지분율이 높은 회사일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경향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감시 초점은 SI 업종이다. 보안을 핑계로 수의 계약이 빈번하고 일감 몰아주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 2세가 지분을 가진 SI 계열사의 높은 내부거래 비중은 승계와 연관될 개연성이 크다"며 "부당 지원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 지분이 높은 회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주거나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KG ICT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수혜자가 오너 2세라는 점에서 공정위 조사 대상 1순위에 오를 리스크를 안고 있다. 부당 지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과징금은 물론 검찰 고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내수용' 꼬리표 떼고 실력 증명해야
KG ICT의 내부거래는 양날의 검이다. 그룹 차원 IT 통합과 효율성 제고라는 명분이 존재하지만, 공정 경쟁 저해와 편법 승계 의혹이라는 그림자 또한 뚜렷하다. 공정위의 칼날이 예리해지는 2025년을 맞아 KG그룹이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우선 내부거래 가격의 투명성 확보가 급선무다. 계열사 간 거래 가격이 시장 가격과 괴리가 없는지 제3자 검증 시스템을 도입하고, 보안을 명분으로 한 무분별한 수의 계약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근본적 해법은 외부 매출 확대다. KG ICT가 KG모빌리티라는 온실을 벗어나 AI, 클라우드 등 신기술 분야에서 독자적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일감 몰아주기 수혜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 곽혜은 부사장 등 오너 일가 역시 KG ICT를 통해 확보한 자금이 정당한 경영 활동의 대가임을 시장에 납득시켜야 한다.
대기업 집단의 내부거래는 효율성을 위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익 편취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독이 된다. KG ICT의 퀀텀 점프가 진정한 혁신의 결과인지, 불공정의 산물인지 시장은 냉철하게 지켜보고 있다. 곽재선 회장과 KG그룹은 이제 숫자가 아닌 공정으로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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