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2%대 중반 치솟으면서 국내 수입물가가 1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국제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가 수입 원가 부담을 전면적으로 끌어올린 데 따른 영향이다. 제조업 전반의 원가 부담이 다시 가중되는 가운데 일부 생활밀접 품목에서도 가격 상승이 포착되며 물가 불안 우려가 재점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11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2020년=100, 원화 기준 잠정치)는 141.82로, 전달(138.19) 대비 2.6%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4월(3.8%) 이후 최대 상승 폭으로, 7월부터 5개월 연속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상승의 핵심 배경은 환율이다. 11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57.77원으로 전달(1423.36원)보다 2.4% 급등했다. 국제 유가가 오히려 소폭 하락했음에도 원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원화 환산 수입가격이 일제히 높아진 것이다.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은 10월 65.00달러에서 11월 64.47달러로 0.8% 떨어졌다.
이문희 한국은행 물가통계팀장은 "국제 원자재 가격 움직임보다 환율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했다"며 "원·달러 상승으로 대부분 품목이 전월 대비 상승한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품목별로 보면 농림수산품(3.4%), 광산품(2.4%), 1차 금속(2.9%), 컴퓨터·전자·광학기기(8.0%) 등 주요 수입 항목이 일제히 상승했다. 제조업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원·부자재가 대부분 포함된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세부 품목에서는 △플래시메모리(+23.4%) △제트유(+8.5%) △알루미늄정련품(+5.1%) 등이 두드러졌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 회복 움직임과 금속류 시황 개선이 겹치며 가격이 빠르게 반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생활 품목에서도 상승이 이어졌다. 쇠고기(4.5%), 천연가스(3.8%), 초콜릿(5.6%) 등이 일제히 올랐다. 특히 초콜릿류의 경우 원재료인 코코아 국제가격 급등이 지속되고 있어 유통가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겨울철 난방비 부담 심화와도 연결되는 민감한 변수다.
수출물가도 5개월 연속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수출물가지수는 139.73으로, 전월 대비 3.7% 상승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정유·금속제품 가격이 일제히 뛰며 전체 수출 가격을 끌어올렸다.
품목 중에서는 D램(+11.6%) 상승률이 가장 눈에 띈다. 글로벌 서버·클라우드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이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경유(+7.4%)와 제트유(+8.4%) 등 정유제품 가격도 일제히 상승했다.
수출 가격 상승은 제조업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수입 원가 상승과 맞물릴 경우 내수 기업의 비용 압박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게 업계 평가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98.19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8% 상승했다. 수출 가격이 2.1% 오르는 동안, 수입 가격은 3.4% 떨어진 결과다. 이는 "수출 1단위로 더 많은 수입품을 사들일 수 있다"는 의미로, 외형상으로는 한국의 대외 구매력이 강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소득교역조건지수도 수출물량지수 상승(6.8%)과 순상품교역조건지수 개선이 맞물려 전년 대비 13.0% 올랐다. 수출 물량 증가와 가격 상승이 동시에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경제 전문가들은 "교역조건의 개선이 체감 경기 개선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수입 원가가 높아진 만큼 중소 제조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실제 비용 부담'은 오히려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 수입물가 상승을 이끈 가장 큰 요인은 환율이다. 최근 미국의 금리 정책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원·달러 환율의 추가 변동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경제 연구기관들은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내년 초 생활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에너지·식료품 수입 단가가 오르면 소비자 체감 물가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역시 원자재 가격, 국제 유가, 환율 등 복합 요소들이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난방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천연가스·석유류 수입가 상승은 서민 생활비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
11월 수입·수출물가 동반 상승은 한국 경제가 다시 한번 환율 변동성의 영향권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환율 변동만으로 수입 원가가 빠르게 높아졌다는 점은 향후 물가 흐름에 불확실성을 더한다.
특히 쇠고기·초콜릿·천연가스 등 생활밀접 품목이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소비자 부담 확대 가능성을 시사한다. 제조업체들의 원가 상승이 내년 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일정 수준의 물가 압박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은행과 정부의 정책 대응 속도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실물 경기 흐름이 향후 환율 안정과 물가 흐름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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