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황토 어싱’에 돈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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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 ‘황토 어싱’에 돈 써야 하나

더리더 2025-12-12 09:12: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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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리더의 생각]맨발 ‘기적’ 없는데도 산책길 조성 바람…대안은 뭘까


행정은 지식융합서비스다. 여러 분야 지식이 요구된다. 해당 사안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두루 정확하게 파악한 뒤 예산을 들여 서비스를 제공할지 판단해야 한다. 주민들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어떤 방식이 최선이나 차선인지 궁리하고 모색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몇 년간 전국 곳곳에 불고 있는 맨발 산책길 조성 바람은 다각도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지난 여름 이후 보도된 맨발 황토 산책길 기사를 검색해봤다. 그중 세 건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강북구는 지난 6월 총 2㎞에 이르는 맨발걷기 산책로 4곳을 새로 조성해 개방했다. 마사토와 황토를 혼합한 건강 보행로를 비롯해 세족장, 황토볼장 등 편의시설을 마련하고, 각종 수목과 꽃을 새로 심어 걷는 즐거움을 더했다.

#2. 영덕군이 지난 6월 선보인 ‘맨발 황톳길’은 약 500m 구간에 조성됐다. 발바닥의 지압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황토와 자연 소재를 활용한 이 길은 건강 회복을 돕는 치유의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황톳길을 맨발로 걸을 경우 발바닥 혈액순환이 촉진되고, 뇌파 안정 및 스트레스 완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대구 수성구는 시민 건강 증진을 위해 수성못 솔숲광장과 범어동 야시골공원에 제올레스트볼을 활용한 ‘맨발 걷기 힐링장’을 새롭게 조성해 개방했다고 19일 밝혔다. 현재 수성구는 이번에 조성한 시설을 포함해 △황토마사토길 7곳 △마사토길 17곳 △황토볼장 3곳 △제올레스트볼장 4곳 등 총 31곳의 맨발 걷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조성한 이들 환경의 키워드는 맨발과 어싱(earthing), 황토다. 그라운딩(grounding)이라고도 불리는 어싱은 접지(接地)를 가리킨다. 이는 원래 가전제품 등의 전기 회로를 구리선 등 도체로 땅과 연결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회로와 땅의 전위를 동일하게 유지함으로써 이상 전압의 발생으로부터 기기와 인체를 보호한다.

◇어싱은 근거 없고 위험한 유사과학
인체의 어싱은 맨발로 맨땅을 접하는 활동을 뜻한다. 어싱이 건강에 좋을뿐더러 암까지 퇴치한다는 믿음을 ‘접지주의’, 그렇게 여기는 사람을 ‘접지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한다. 접지주의자는 맨발로 땅을 밟는 사람은 지구의 자유 전자를 공급받으면서 몸의 정전기를 없앤다고 주장한다. 

신발은 이 과정을 차단함으로써 염증, 자가면역질환, 생체리듬 교란, 호르몬 장애, 코르티솔 이상, 부정맥, 관절염, 헤르페스, 간염, 불면증, 만성 통증, 피로, 스트레스, 불안, 조기 노화 등을 일으킨다고 경고한다.

결론부터 제시하면, 접지주의는 유사과학이다. 과학적 또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 플라시보 효과는 다소 발생할지 모른다. 황토를 깐 길이 다른 소재로 덮은 길보다 건강에 좋다는 믿음에도 근거가 없다. 결국 황토 산책로는 예산 낭비다.

전 세계에 확산된 접지주의 중 영어권에서 나온 책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2010년에 초판이 나온 《어싱: 가장 중요한 건강상 발견 Earthing : The Most Important Health Discovery Ever!》의 저자는 세 사람인데, 케이블TV 업계 출신의 일반인과 심장전문의, 작가다.

이에 대해 ‘과학과 비판적 사고의 촉진’을 모토로 하는 매거진 〈스켑틱〉이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제목은 ‘세도나에서의 맨발: 땅에 발을 접지한다는 엉터리 주장이 의학적인 유사과학을 조장한다 Barefoot In Sedona: Bogus Claims About Grounding Your Feet to Earth Promote Medical Pseudoscience’이다. 필자는 가정의학 전문의 해리엇 홀이고, 온라인판은 2018년 4월 24일 발행됐다.

홀은 접지주의에 대해 “어싱을 지지하는 논거는 틀렸거나 너무 모호해서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대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홀은 대체의학(대체요법)을 비판하는 글을 활발히 썼다.

지난 11월 보도된 ‘지자체서 띄우는 ‘맨발 걷기’, 의사들은 말리는 이유’라는 국내기사에는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김열 교수의 의견이 이렇게 인용됐다. “맨발 걷기로 당뇨병, 암 등 특정 질병 치료 효과를 기대하는 환자가 있다. (그러나) 맨발 걷기만으로는 어떤 질환도 치료될 수 없다.”

◇챗GPT 접지주의는 표본이 작다는 점 등 비판
홀의 성향과 최근 기사의 방향을 고려할 때, 두 의사는 접지주의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도움을 받을 방법이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는 편향도 없고 플라시보도 느끼지 않아, 이런 사안에서 객관성을 지킬 수 있다. 필자는 챗GPT에게 어싱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필자: Earthing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학술 저널의 논문을 찾아서 초록으로 제시해줘.

챗GPT: (중략) 결론적으로 흥미롭고 예비적으로 유망한 결과들이 있으나, 보건의료 권고나 치료법으로 확정하려면 표본이 크고 엄격한 무작위대조 시험과 독립적 재현 연구가 필요합니다.

나는 누구보다 맨발 활동을 실천하며 권해왔다. 2011년 8월 15일부터 신발을 벗고 맨발로 뛰었다. 그해 가을에 마라톤 풀코스를 맨발로 완주했다. 개인 기록 3시간 37분도 맨발로 세웠다. 마라톤은 앞서 2003년에 시작했다.

내가 계속 맨발 달리기를 고집하는 것은 과학에 바탕을 둔 원리와 장점을 믿기 때문이다. 맨발로 뛰면 발과 종아리가 함께 단련되어 발 부상 위험에서 멀어지고, 발과 종아리가 충분히 완충 작용을 하는 덕분에 무릎이 보호되며, 신발을 신고 뛸 때에 비해 혈액 순환이 훨씬 활발해지고, 잠을 푹 자는 효험을 볼 수도 있다. 나는 맨발로 고생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널리 공유하고자 책까지 썼다.

그런 내가 왜 접지주의에는 부정적인가? 내가 체험했고 권하는 맨발 활동은 발가락 신발과 아쿠아슈즈 같은 미니멀 신발을 신고 하는 걷기와 달리기도 포함한다. 미니멀 신발을 신고 산책하거나 뛰어도 맨발 활동과 버금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길 바닥이 황토일 필요는 없다. 황토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황토 산책길은 관리하기 번거롭고 돈도 더 든다.

부정을 넘어 배격해야 한다고 보는 접지주의 주장이 ‘말기암 퇴치’다. 국내에는 맨발로 말기암을 물리쳤다는 사례를 강조하는 접지주의자가 있다. 이는 ‘일화적’일 뿐, ‘임상적’으로 입증된 효과와는 거리가 멀다. 암 환자가 이런 효험을 믿고 맨발 대체의학에 의존할 경우, 현대 의학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더 높은 가능성을 버리게 된다.

◇맨발 산책길 조성할 때 참고할 점들
그럼 지자체는 맨발 또는 미니멀 신발을 신고 산책할 길을 어떻게 조성하고 운영하면 좋을까? 우선 ‘부인 고지’를 산책로마다 해야 한다고 본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을 게시할 수 있다. “이 산책로는 맨발이나 자연주의 신발을 신고 걸음으로써 운동 효과를 키우고 발과 종아리를 건강하게 하도록 조성되었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접지(earthing) 효과는 과학이나 의학으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임을 알려드립니다.”
이 대목에서 챗GPT에게 물어봤다.

필자: 전국 곳곳에 맨발 산책용 황톳길이 조성됐어. 이에 대해 적합성을 평가해줘.

챗GPT는 답변에서 장점으로 촉각 자극과 정서 안정 등을 들었으나 “기본적으로 건강에 해롭지 않고 일부 감각·정서적 이점은 분명하나, 의학적 효과 과장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빗물에 약하고 유지·관리 비용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챗GPT는 “원하면 황토 대신 적합한 대체 소재(모래, 자갈, 고무, 인공토 등)를 비교한 표를 만들어줄게”라고 제안했다. 필자는 이 답변을 살펴본 뒤 “별도 포장 대신 학교 운동장처럼 길을 조성하는 방안에 대해 알아봐줘”라고 주문했다.

챗GPT는 우선 기본 개념을 설명한 뒤, 그 장점으로 발 촉감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비바람에 상대적으로 강할 뿐 아니라 유지·관리 비용이 낮다고 들었다. 아울러 알레르기·미생물 위험이 황토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단점으로는 맨발에는 다소 거칠 수 있고 바람이 불면 먼지가 일고 비가 많이 오면 표면이 파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조성할 때의 기술적 권장안을 제안한 다음 전체 내용을 요약했다. 추가로 운동장식 산책로의 시공 비용, 적합한 토사 조성 방법, 실제 국내 사례를 정리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어싱은 유사과학이더라도, 맨발 산책로를 원하는 주민이 많을 수 있다. 이런 수요를 고려할 때 흙길을 새로 조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황토일 필요는 없다. 운동장 바닥 정도의 노면이면 된다. 황토 어싱의 효과를 강조하는 안내문은 게시하면 안 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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