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에 새로운 여성운동이 등장했다. 이는 페미니즘에 정면으로 반응하는 움직임으로, 이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주로 이렇게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결혼이 불행의 탈출구입니다.”
인플루언서 엘리 베스 스터키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 중에서도 급진적인 쪽에 속한다. 그의 팟캐스트는 보수적이고 기독교적 성향을 띠며,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성경에 대한 심층 분석과 ‘성경적 여성상’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특히 낙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2024년 6월, ‘젊은 여성 리더십 서밋’(트럼프 지지 단체인 ‘터닝포인트USA’가 주최하는 보수 성향의 연례 콘퍼런스)에서는 2500여 명의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문제는 혼전 및 혼외 성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 현장에는 스터키의 동료이자 팟캐스터인 알렉스 클라크도 있었다. 그는 ‘터닝포인트USA’의 후원을 받는 팟캐스트 〈Culture Apothecary(문화 약방)〉를 진행한다. 〈Culture Apothecary〉는 사회의 병든 문화를 신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치유한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클라크의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들은 주로 25~35세 사이의 여성들인데,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클라크는 “건강과 웰니스에 관련된 콘텐츠를 올리니 청취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라며 “웰니스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기 좋은 소재예요. 저는 이런 콘텐츠들을 만들 때 제가 보수주의자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죠. 청취자들도 처음엔 저의 성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보수주의라는 게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네’, ‘클라크 정도면 내가 친구 할 수 있는 평범한 여자 같아’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거예요. 옛날부터 보수 성향의 여자들은 무섭고, 자기 견해도 없다는 식의 이미지만 강조돼왔죠. 그래서 저는 공격적이지 않으면서도 ‘모두의 구미에 맞는 방식’으로 보수주의를 소개하려고 해요.” ‘모두의 구미에 맞는 방식’이라는 말이 기괴하게 들린다. 스터키와 클라크는 모두 전통적 성 역할을 옹호하고, 낙태에 반대하며, 호르몬 피임법을 비판하면서, 일부 전통적 아내의 모습을 표방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는 도덕적 실체가 결여됐다고 비난한다.
런던의 킹스 칼리지 연구원인 애니 켈리 박사는 전통적 아내상과 안티페미니즘 커뮤니티를 연구해왔다. 그는 “어느 정도 인생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완전한 복종을 이상화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전통적 아내상의 일상을 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다수는 겉보기에 개방적인 모습을 내세우지만, 그 밑바닥엔 여전히 고루한 구시대적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켈리 박사는 “그들은 전통적 생활 방식에 지적 근거를 부여하며 이를 점차 유연하고 매력 있게 포장한다”라고 덧붙였다. 클라크 본인도 인정하듯 건강과 웰니스 콘텐츠를 이용한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클라크의 〈Culture Apothecary〉는 주류 의학에 반대되는 담론을 전파하는 플랫폼이다. 이 팟캐스트의 게스트로는 ‘대체 백신 일정’을 주장하는 백신 회의론자 소아과 의사 밥 시어스 박사와 인플루언서이자 전도사인 폴 살라디노 박사 등이 있다. 살라디노는 “나는 향수를 뿌리거나 호르몬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은 데이트 상대에서 제외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건강과 웰빙이라는 포장 아래 흐르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호르몬 피임법은 여성의 건강을 해치며, 우리는 모두 전통적인 가족 개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클라크는 “여성들도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남성들이 그렇게 변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Tradwife(전통적 아내상) 콘텐츠는 영국에서도 꾸준히 성장 중이다. ‘Tradwife’와 관련된 일부 SNS 계정은 이미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다.
모두의 구미에 맞는 페미니즘?
런던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루이스 페리는 팟캐스트 〈Mother Maiden Matriarch(어머니이자 딸이자 지도자인 여자들)〉의 진행자이자 〈The Case Against the Sexual Revolution(성 혁명에 대한 반론)〉의 저자로, 이 책에서 그는 섹스 긍정주의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결합해 만든 ‘훅업 문화(가벼운 성적 만남)’, ‘포르노’, ‘킹크 긍정주의’(비전통적 성적 행위나 취향을 존중하자는 철학)가 오히려 여성들을 공허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페리는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포르노를 끊고, ‘좋은 아빠가 될 만한 남자’와만 성관계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가 이러한 ‘반페미니즘’ 사상에 이르게 된 계기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그는 남녀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며, 전통적 결혼과 핵가족이 여성에게 지지적 구조를 제공한다고 여긴다.
한편 24세의 프레이야 인디아는 현대 여성이 겪는 현실적인 불만과 고민을 대변하는 또 한 명의 영국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인기 팟캐스트 〈Modern Wisdom〉의 진행자다. 인디아의 서브스택 플랫폼인 ‘걸스’는 4만 구독자를 보유 중이며, 주로 온라인상에서 오늘날 젊은 여성의 삶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지난해 발표한 에세이 〈You Don’t Need To Document Everything(모든 것을 기록할 필요는 없다)〉는 SNS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는데, 강박적으로 외모에 집착하는 현상, SNS 필터가 조장하는 독성적인 미의 기준과 신체 왜곡 인식 등 Z세대 여성들이 특히 공감할 만한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인디아는 이렇게 주장한다. “성관계가 너무 대중화되고 일상화돼 젊은 여성들이 섹스를 강요당하고 페미니즘과 진보, 기술 중독에 빠진 우리 사회에서 길을 잃었어요.” 자유주의적 사고를 가진 여성들이 스터키나 클라크의 노골적인 보수적 입장을 비판하기는 쉽겠지만, 페리나 인디아 같은 이들의 주장은 반페미니즘의 목소리라도 결을 달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마찬가지로 모든 페미니스트가 미래에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각자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더 보수적이고 조심스러운 성향을 지녔거나, 종교적 신념을 가진다고 해서 반드시 안티페미니스트나 극우주의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성 역할에 대한 견해가 정치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여성의 자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이쯤에서 클라크가 말한 ‘모두의 구미에 맞는’ 태도에 대한 논점으로 되돌아가보자. 페리가 언급하는 여성들의 ‘훅업 문화’나 ‘포르노’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을 언급할 때 그 저변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가 혼전 순결과 전통적 결혼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맞는 방식이라고 믿고 있다는 게 분명해진다. 페리가 제기하는, 여성들이 종종 원치 않는 성관계나 폭력적인 포르노 서사에 압박을 느낀다는 견해는 공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정상적으로 살자”라고 제시하는 페리의 해결책은 욕망을 형성하는 다양한 요인이나 성적 자유를 확장하는 방법에 대한 섬세한 논의라 할 수 없다. 인디아와 페리 모두 결혼을 ‘보호적’ 제도로 묘사하지만, 실제로 성폭력의 대부분은 현재 또는 과거의 파트너에 의해 자행되고, 매년 수백 명의 여성이 배우자에 의해 살해되고 있다. 두 사람은 많은 보수주의자들처럼 이혼이 가볍게 여겨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디아는 “요즘엔 이혼이 또 다른 자기 개발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라고 말했고, 페리는 ‘무책 이혼 제도’에 대해 “은행 대출보다 이혼이 더 쉽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과 여성 인권 운동가들은 ‘무책 이혼 제도’가 가정폭력과 트라우마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폭력적이거나 불행한 결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페미니즘의 미래
우리는 지쳤다. 영국에서 18~24세는 번아웃을 겪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연령이며,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정신 건강 문제에 특히 취약하다. 주거비 상승, 정체된 임금, 불확실한 삶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체념. 이 모든 것이 ‘남편이 보호해주는 삶’이라는 환상을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러프버러 대학교의 페미니즘 연구자 질리 케이 박사는 현재의 안티페미니스트 인플루언서들은 현대 여성의 좌절감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동시에 과거를 낭만화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잊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여성들이 얼마나 오랜 싸움 끝에 이 권리를 얻게 됐는지다. 그리고 그 권리는 여성들을 폭력적이거나 불행한 관계로부터 해방시켰고, 이전 세대는 꿈꾸기만 했던 기회의 장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 ‘페미니즘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여성이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선택 중 하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결혼의 40% 이상이 이혼으로 끝나고 이혼 이후 여성의 소득은 평균 33% 감소하는 데 비해 남성은 18% 감소에 그친다. 진짜 해결책은 독립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지탱할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저렴한 보육 서비스와 강력한 노동권 보호, 더 나은 의료 서비스 그리고 남녀에게 공평한 육아휴직 제도 등. 결국 해답은 ‘정치적 정책’에 있다. 그런데 이 인플루언서들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제에 앞장서는 데는 주저한다. 한편 페리는 모순된 입장을 능숙하게 넘나든다. 그는 반낙태 성향의 팟캐스트에 출연하면서도, 동시에 영국 내 낙태권이 철회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프로 라이프(생명존중론자) 진영에서 내게 지지를 표명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전 항상 거절해왔어요.” 페리는 자신을 정치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의 목표는 주류 문화와 여성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페리는 최근 자신의 저서 〈The Case Against the Sexual Revolution〉을 10대 소녀들을 위한 핸드북으로 각색했는데, 여기서 그는 데이트 앱을 삭제하고 성관계를 보류하며 남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이런 성이나 연애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견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본인이 선택하면 그만이지만, 그의 사회적 입장은 훨씬 더 보수적이다. 트랜스젠더 운동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가 하면, 여성이 전투경찰 직무를 맡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이렇다. 소위 ‘문화적 논평’은 어디서 끝나고 ‘정치적 선언’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페리와 같은 인플루언서는 페미니즘 담론 사이에 극보수적 발언을 섞어내고, 주류와 비주류 플랫폼 모두에 존재감을 유지함으로써 여성의 기본권을 무너뜨리는 정책에 은근히 힘을 싣는다. 일례로 영국 개혁당 나이절 패라지의 극우 정당 ‘리폼UK’에 대한 지지 확대를 주목해보자. 이들은 2024년 영국 총선에서 400만 표(전체의 약 14.3%)를 얻었으며, 5월 지방선거에서는 1600석 중 677석을 차지했다. 물론 통계상 젊은 여성층이 ‘리폼UK’를 지지할 가능성이 가장 낮다(이번 지지 확산은 안타깝게도 주로 Z세대 남성들로부터 비롯됐다). 케이 박사는 이를 단정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새로운 세대의 안티페미니스트 여성 인플루언서와 논평가들이 ‘매노스피어’(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가 극우적 투표 성향을 부추겼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거나 안티페미니스트 성향의 여성들은 현대 페미니즘이 모성을 폄하하고 여성을 끝없는 경쟁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핵심 권리를 후퇴시키려 하는 점, 그리고 개인의 욕망과 선택을 넘어 모든 여성을 위해 사회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를 잊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보육 지원 확대와 유연 근무 제도의 강화, 새로운 피임법 개발을 위한 의학 연구 투자, 폭력에서 자유롭고 성적 자유를 보장하는 건강한 성문화를 요구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반페미니즘 담론과 안티페미니스트 인플루언서가 던지는 메시지에 공감하는 여성들을 배제하지 않고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언제나 우리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스스로 무엇이 최선인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한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이래야 한다”고 지시하는 게 아니라,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다. SNS가 끊임없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콘텐츠로 우리를 자극해도 그에 선동되기보다 여유를 가지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우리의 분노와 관심이 결국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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