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자주 청계산을 트래킹합니다.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 곳이지만 오늘따라 동창회, 향우회 등 어른들의 단체팀이 많이 보입니다. 젊어 보여 좋습니다. 이분들을 보며 청춘하면 누구나 아는 시가 자동적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글을 쓸 때는 이런 시를 인용하여 시작하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의 재앙에 가깝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더 깊게 생각하고 글을 써야 새로운 통찰도 얻고 인용한 시도 그 의미가 깊어집니다.
우선 <젊다>가 동사가 아닌 형용사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동사와 형용사의 구분부터 볼까요. 동사는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고, 형용사는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 중 강력한 것은 '~는(ㄴ)'을 넣어 보면 됩니다.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있으니까요.
· 먹다...먹는다...동사 · 늙다...늙는다...동사
· 젊다...젊는다. 말이 안되니 형용사입니다.
'늙다'의 반대말인 '젊다'가 형용사라는 것이 매우 놀랍습니다. 늙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익어갑니다. 거부할 수 없지요. 하지만 젊음은 스스로 젊다고 느끼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제 유대계 미국 시인인 사무엘 울만이 노래한 <청춘>을 봅시다. 젊음이 상태(형용사)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젊음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한국말 대사전에서 청춘에 대한 정의라 해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음 즉 청춘’은 나이로 정의되는 게 아닙니다. 열정을 쏟는 모든 순간이 청춘입니다. 또한 우리 말은 사물에 ‘낡다’를 쓰고 사람엔 ‘늙다’라고 표현합니다. 늙는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의미를 말함이지 낡아지는 게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문장이 머리를 스칩니다.
'우리는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로슈푸코)
왜? 십 년이 더 지난 문장인데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걸까요. 내려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우리는 내려가고 있습니다. 모두 꿈 속의 꿈이건만, 젊은 사람들을 좀더 너그넙게 보아주길 바랄 뿐이지요. 청계산에서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떻게 나이 먹어 가고 싶은가?"
인생은 마라톤, 인생에는 완성이 없다던 선인들의 말을 곱씹으며 하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만에 미국영화 한편을 골랐습니다. 요즈음 공부모임과 약속, 그리고 강의준비 등으로 영화를 한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영화들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작들은 정서나 스토리 전개가 자꾸 거슬려 오늘도 10년이 더 지난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초반이 지루했지만 나는 어디까지 이야기를 전개하나, 하면서 꾹 참고 보던 중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손자 친구를 영 못 미더워 하면서 스펠링 테스트를 합니다. 미국인들끼리도 미시시피란 단어를 묻더군요. 미시시피 Mississippi 중첩이 많아 신경쓰지 않으면 미국인들도 꽤 틀리나 봅니다. 하긴 단음으로 처리하여 Misisipi라 쓴다면 뭐가 다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구 담수의 20%가 있는 오대호 주변에 있는 주들 중에는 미시시피처럼 '미 Mi'가 들어간 지명이 많습니다. 이것이 내 궁금증을 자극합니다. 조사해보니 인디언 말로 물이라는 뜻입니다.
·미시시피 Mississippi 큰 물(강) / 미시간 Michigan 맑은 물
미주리 Missouri 구름 낀 색의 물 / 미네소타 Minesota 하늘빛 물
재미있는 것은 고구려어도 물이 미라는 사실입니다.
· 고구려어로 매 >미 ...수원水原의 옛 명칭이 <매홀>로 매가 물로 쓰였다.
· 신라·백제어는 믈>물 이다...경남 사천泗川의 옛 지명은 <사물>후에 신라 경덕왕 때 한자화하여 <사수>泗水가 되었습니다. 두 지역의 치열한 경쟁 결과 水는 <물>로 통합되었습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은 정치, 경제를 비롯하여 언어의 중심지 또한 신라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미는 물로 쓰이는 예는 꽤 있습니다.
·미꾸라지 : 미 는 물을 나타냄 / 미더덕 : 미는 물,바다를 뜻한다.
미역, 미나리에서 미 는 물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어는 어떨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어에서 물은 '미'즈みず, 바다는 우'미'うみ, 비는 아'메'あめ로 ... 물(水)이 미(메)임을 뚜렷이 보여줍니다. 전문가들은 고구려어에서 넘어간 단어들이라고 합니다. 일본어는 크고 중요하면 어두모음을 붙였습니다.
▪ 우+소=うし우시(牛) / 우+말=うま우마(馬) / 우+매=우미(海)
현대의 <오>お 용법과 같습니다.
종합하면, 아메리카대륙에 사람이 살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만 2천여년 전으로 당시 동아시아인이 빙하기로 드러난 베링해협의 길을 따라 아메리카대륙으로 넘어갔습니다. 결국 고대 북방어(고구려어 등)가 북미의 인디언까지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점들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좁은 한반도에서조차 갈등과 분열로 국가의 성장동력마저 끌어내리는 요즘 시대에 우리가 연결되었음을 상기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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