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가 없던 3년
처음엔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시즌 9부터 11까지 줄곧 시청률이 하락하던 〈쇼미더머니〉(이하 쇼미)가 3년 만에 돌아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식 계정에 티저 영상과 오디션 관련 내용이 올라오면서 〈쇼미〉의 부활은 우리가 곧 마주할 현실이 됐다.
〈쇼미〉가 사라진 3년 동안 힙합 신에 벌어진 레이블의 변화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2023년 초 스윙스가 저스트뮤직, 인디고뮤직, 위더플럭 레코즈를 묶는 AP 알케미를 출범하며 약 50명의 아티스트를 끌어모았지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절반 이상이 빠져나가며 힘을 잃었다. 오히려 독립 레이블이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창모는 10여 년간 몸담았던 앰비션 뮤직을 떠나 개인 레이블을 차렸고, 수퍼비의 영앤리치 레코즈에서 독립한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도 스스로 레이블을 세웠다. 하이어뮤직에서 독립한 식케이와 하온이 설립한 KC도 있다. 딥플로우가 이끌던 비스메이저 역시 레이블에서 크루로 돌아가며 몸집을 줄였다. 이렇게 독립 레이블이 많아진다는 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실험적인 시도에 도전하는 래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음악 트렌드의 변화도 눈에 띈다. 새로운 사운드가 적극적으로 도입됐다. 그동안 〈쇼미〉로만 힙합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쇼미12〉를 보며 ‘이게 뭐야?’ 싶을 수도 있겠다. 기존에 붐뱁과 트랩, 그리고 드릴 정도만 들어봤다면, 곧 ‘레이지’라는 장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레이지는 트랩 리듬을 기반으로 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루프를 내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식케이와 릴 모쉬핏의 〈K-FLIP〉 앨범을 들으면 레이지가 어떤 느낌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이퍼팝과 힙합을 엮으려는 시도도 자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샤라웃을 받는 래퍼 ‘에피’가 하이퍼팝과 힙합을 맛깔나게 섞는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하이퍼팝은 일부러 음을 과하게 부풀리거나 전혀 생뚱맞은 사운드를 섞어 의도적인 이질감을 유도하는 음악 스타일로 주로 ‘과잉 왜곡’이라는 단어로 번역되곤 한다.
붐뱁과 트랩, 그리고 드릴 정도만 들어봤다면, 곧 ‘레이지’라는 장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레이지는 트랩 리듬을 기반으로 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루프를 내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식케이의 〈K-FLIP〉 앨범을 들으면 레이지가 어떤 느낌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음악 장르 외적으로 가장 달라진 건 SNS의 파급력이다. 등용문 같던 〈쇼미〉가 사라지자 인지도에 목마른 래퍼들은 바이럴 마케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중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래퍼를 꼽자면 ‘몰리얌’이 대표적이다. 그는 ‘Burning slow’ 바이럴 숏폼 영상 시리즈에서 검은색 립을 칠하고 등장해 시작부터 후킹한 벌스를 내뱉었고 해당 영상은 공개 직후 입소문(또는 알고리즘)을 타 합계 1000만 이상의 조회수를 달성했다. 이를 계기로 몰리얌은 식케이, 키드밀리, 스윙스, 로꼬와 같은 유명 래퍼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몸값을 빠르게 올렸다. 또한 더콰이엇이 직접 기획하는 공연 〈RAP HOUSE VOL.42〉와 비수도권 최대 힙합 페스티벌인 ‘대구힙합페스티벌’의 무대에까지 오르며 온라인에서의 유명세를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폴로다레드 또한 ‘Seoul to Osaka’ 댄스 챌린지, ‘WTF’ 챌린지 등 바이럴 마케팅에 힘을 주면서 틱톡 바이럴 차트에 오르는 등 SNS를 통해 인기를 얻는 뮤지션이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3년 사이 돌아온 얼굴들도 반갑다. 무려 7년 만에 빈지노가 새 앨범 〈NOWITZKI〉로 군 복무와 결혼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한국대중음악상의 ‘올해의 음반’과 한국 힙합 어워즈의 ‘올해의 힙합 앨범’을 수상하며 기염을 토했고, 약 3년 동안 SNS를 끊고 아무런 소식이 없던 염따는 새 앨범 〈살아숨셔 4〉로 지난 6월 깜짝 컴백했다. 머쉬베놈은 수년간 예고했던 앨범 〈얼〉을 발표하며, 거북이·코요태·신빠람 이박사 등의 참여로 화제를 모았고, 〈엠카운트다운〉과 〈뮤직뱅크〉 등 음악방송에서도 특별한 무대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양홍원과 이센스도 역시 신곡으로 돌아오며 힙합 신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쓰고 보니 이 시점에 〈쇼미〉가 돌아온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시즌 기대되는 래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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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NASTY KIDZ 팀으로 활동하던 래퍼가 홀로 〈쇼미더머니〉에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이 본선에 올라가면 자기 팀원을 무대로 부르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99’ 네스티 키즈를 시즌 12에서 보고 싶은 이유다. 드레인케이와 히피쿤다로 구성된 99' 네스티 키즈는 한 명이 온전히 한 벌스를 소화하는 경우가 더 적을 정도로 서로 한 마디씩, 때론 한 단어씩 랩을 주고받으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두 사람의 ‘랩 티키타카’는 〈쇼미〉로만 힙합을 접하는 사람에겐 분명 신선하게 느껴질 법한 포인트다.
이번 시즌 기대되는 래퍼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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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IMYOUNG 〈쇼미더머니〉에서는 늘 새로운 트렌드가 빠르게 떠올랐다. 지코가 ‘요즘것들’을 통해 그라임을 소개하거나, 플리키뱅이 UK 드릴을 선보인 것만 봐도 그렇다. 나우아임영은 트렌드를 영리하게 가지고 노는 신인 중 하나다. 하이퍼팝 등 신생 장르 중심의 디스코그래피, 여전히 이어지는 복고 트렌드를 반영한 비주얼까지, 앨범을 통해 1980년대 트렌드의 성지였던 압구정을 자신과 연결하려는 시도마저 흥미롭다. 이 정도로 트렌드를 영리하게 이용하는 래퍼라면 심사위원들도 탐내지 않을까?
추천하는 역대 〈쇼미〉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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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2 '영순위' 12년 전 소울 다이브의 ‘영순위’ 무대는 “뛰어난 래퍼는 사람을 움직인다”는 말을 증명했다. 지토와 디테오의 퍼포먼스가 끝난 뒤, 올라오라는 넋업샨의 말에 관객들은 홀린 듯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갔고, 소울 다이브는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됐다. 그리고 넋업샨은 군중의 우두머리처럼 걸어 나오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파격적인 발상으로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덕에 소울 다이브는 강적 스윙스를 꺾고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who’s the writer
서성훈은 음반 리뷰, 큐레이션 등 음악과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한다. 현재 한국 힙합 매거진 〈Haus of Matters〉의 필진이자, R&B/소울 매거진 〈NUGS〉의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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