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우리가 아니면 어디서 사겠어?" 초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태 초기, 쿠팡 내부에 흘렀던 기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압도적인 편의성을 무기로 소비자를 가둬두는 '락인(Lock-in) 효과'를 과신한 탓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쿠팡의 오만이 빚어낸 틈을 타 '유통 명가' 신세계가 치고 들어오면서, 이커머스 시장의 판도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CEONEWS는 쿠팡의 위기가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번지는 과정을 진단하고, 신세계그룹의 반격으로 재편되는 유통 시장의 미래를 심층 분석한다.
■붕괴된 '쿠팡 공화국', 숫자가 증명한 분노
쿠팡 경영진의 가장 큰 오판은 소비자의 '충성심'을 '의존성'으로 착각했다는 점이다. 사태 초기, 외국계 증권사들은 "대안이 없다"며 주가 방어 논리를 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혹했다. 데이터 분석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사고 발생 직후 나흘 만에 쿠팡 앱 일간활성이용자수(DAU)가 181만 명 급감했다. 이는 단순한 이탈이 아니다. 쿠팡의 핵심 경쟁력인 '로켓와우' 멤버십 회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는 신호다. 편리함을 위해 기꺼이 제공했던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공포가 '로켓배송'의 편리함을 압도한 것이다. 초기 대응의 미숙함이 화를 키웠다.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 "법적 의무는 다했다"는 식의 태도가 불매 운동과 '탈퇴 인증 릴레이'에 기름을 부었다. 소비자는 이제 쿠팡을 '혁신 기업'이 아닌 '무책임한 공룡'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트리플 악재'에 갇힌 김범석 의장
이용자 이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쿠팡을 둘러싼 외부 환경의 급변이다. 법적, 정치적, 규제적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가장 치명적인 뇌관은 미국에서의 소송전이다. 국내와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강력한 미국에서 집단소송이 본격화될 경우 배상액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패소 시 쿠팡의 자금줄이 마르는 것은 물론, 뉴욕 증시 상장 폐지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밑 빠진 독' 수준이 아니라 '독이 깨지는' 상황이다. 국회도 압박의 고삐를 죄고 있다. 김범석 의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재호출했다. 과거처럼 대관팀을 통해 적당히 무마할 분위기가 아니다. 특히 대통령실까지 나서 "2차 피해 책임"을 거론하고 대관 조직 실태 조사를 지시한 것은 정권 차원의 강력한 경고다.
사내에서 흘러나오는 "이러다 새벽배송마저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단순한 괴담이 아니다. 노동계와 골목상권 보호론자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쿠팡 사업 모델 자체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의 정체성인 새벽배송이 규제에 묶인다면 존재 가치 자체가 흔들린다.
■신세계의 대반격, "왕좌를 탈환하라"
쿠팡이 휘청이는 사이, 절치부심하던 신세계그룹은 승부수를 던졌다. 정용진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SSG닷컴(쓱닷컴)은 그동안 만지작거리던 '새벽배송 본격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신세계 주가는 26만 원을 찍으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투자자들은 쿠팡의 대안으로 신세계를 지목했다. 오프라인 이마트의 물류 거점(PP센터)을 활용한 배송 시스템이 쿠팡 물류센터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신세계는 이번 마케팅의 핵심을 '보안'과 '신뢰'에 뒀다. "오랜 유통 업력만큼 고객 정보를 소중히 다룹니다"라는 메시지는 불안에 떠는 '쿠팡 난민'들을 흡수하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물건을 빨리 배송하는 것을 넘어 믿을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한 것이다.
■ '속도전'에서 '신뢰전'으로
향후 이커머스 시장은 '속도전'에서 '신뢰전'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전망이다. 쿠팡이 단기간 내 신뢰를 회복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며, 고정비(물류센터 운영비) 부담은 커지는데 매출(이용자)이 줄어드는 '역레버리지' 구간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흑자 전환의 꿈은 다시 멀어졌다. 절대 강자가 사라진 자리에 신세계(SSG), 네이버 등 경쟁자들이 치열하게 파이를 나눠 가질 것이다. 특히 신세계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계한 옴니채널 전략으로 쿠팡이 갖지 못한 '안정감'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는 언제나 '대안'을 찾는다
"대안이 없다"는 말은 기업이 할 말이 아니라 소비자가 느껴야 할 말이다. 쿠팡 사태는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기본적인 '책임'을 방기했을 때 시장이 얼마나 냉혹하게 등을 돌리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쿠팡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김범석 의장이 법정 대리인이 아닌 직접 마이크 앞에 서서 뼈를 깎는 쇄신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로켓은 추락하고 그 자리는 '준비된 2인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쿠팡 천하'가 저물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역사의 변곡점을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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